히브리사람들은 팔레스틴(가나안)에 나라를 세우며 ‘이스라엘’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들이 세운 왕국은 500년도 못 가서 아시리아와 바빌론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지만 그들은 절망하지 않았다. 그들은 늘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희망을 향한 그들의 집념을 마사다에서 다시 꽃피우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집트의 국경을 넘어 쿰란과 마사다가 있는 이스라엘로 갔다. 예루살렘에서 사해를 향해한 시간 정도 길을 달리면 이곳에 도착한다.
쿰란이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한 곳이라면 마사다는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려 한 곳이다. 사해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해저산맥이 융기되어 만들어낸 기괴한 절벽과 계곡이 펼쳐진다. 소금 동굴이 있는가 하면 계곡 사이에는 폭포가 흘러내린다. 넋을 읽을 만큼 아름답기도 하고 때론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사방이 절벽인 바위산의 꼭대기에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헤롯이 지은 요새 겸 궁전인 마사다가 있다. 이스라엘의 최후의 저항지로 더 유명한 마사다의 절벽은 아찔했다. 절벽 아래로 펼쳐지는 사해의 수려한 풍광마저도 비장하게 느껴진다. 사해가 내려다보이는 동쪽 절벽에는 상궁, 중궁, 하궁 으로 나뉘어진 헤롯의 화려한 여름궁전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그것보다 더욱 우리의 눈길을 그는 것은 서쪽 절벽 아래에 남아 있는 로마군의 주둔지와 마사다를 공격하기 위해 그들이 쌓아 올렸던 경사로 등과 같은 전쟁의 흔적 일 것이다. 유적들의 사이사이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로마 귀족들의 술 주정 소리가 아니라 도리어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숨져간 이스라엘의 기도소리와 울음소리일 것이다. 여하튼 그들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 것이 생명을 잃는 것보다 더욱 가슴 아픈 일이었다.
이스라엘은 마사다를 기억한다. 마사다를 통해 오래도록 이어져 내려온 자신들의 정체성을 발견하며 또한 그렇게 구별되기를 소망한다. 히브리의 자유, 그것은 자신이 히브리 사람임을 잃지 않을 때에만 누리 수 있는 야훼의 선물임을 그들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소유가 없기에 자유스러웠고 야훼의 뜻을 따르기에 그의 백성이 되었던 히브리인들. 그들에게 죽음은 숨이 끊기는 순간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가’를 잊는 순간이다.
1)마사다 요새
마사다 요새는 이스라엘 저항정신이 살아있는 땅이다. 마사다는 사방이 절벽인 천혜의 요새였기 때문에 아무리 막강한 로마 군이라고 해도 그들을 공격하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당신 로마군의 병력은 15,000명이었고, 저항군은 여자와 아이를 포함하여 967명뿐이었다.
로마군은 마사다를 포위하여 기아와 갈증으로 스스로 무너질 것을 기다리는 한편, 반란군이 보는 앞에서 동족인 유대인 포로들을 동원하여 마사다에 이르는 인공경사로를 만들어갔다. 서기 72년 죽음에 대한 공포가 서서히 밀려오던 어느 날, 반란군은 자결을 결심하고 제비뽑기를 통해 순번을 정하여 서로를 죽임으로 로마의 손에 죽기 전에 스스로 영광스러운 죽음을 선택하였다. 로마의 종이 되어 비굴한 삶을 살아가기보다 야훼의 백성으로 영원히 남기를 소망했던 것이다.
마사다 공원 게시판에는 이런 글귀가 서 있다. “세대가 바뀌었지만 마사다는 남아있다.”
헤롯이 자신을 위해서 엄청난 요새로 궁전을 지었고 로마군과 반란군이 저항과 살육의 드라마를 만든 이곳…, 이스라엘은 이 땅에서 자유와 신앙의 이름으로 숭고한 저항정신을 일구었다.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우리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여행을 통해 기독교가 형성되기 전의 역사와 신앙의 단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여정을 통해 나에게 의미를 주었던 것은 그들이 던졌던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과 그것을 지키려 했던 그들의 정신 때문이다. 그들의 질문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던져지는 도전이며, 요구이어야 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향한 예리한 질문의 검을 곧추세워 현재의 내가 누구인가를 발견하고, 자신의 존재이유를 찾아가는 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순례여행을 통해서 우리의 노력은 나의 존재이유를 묻는 구도의 길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고자 했던 질문의 실타래를 풀어가며 자기 자신의 삶과 신앙 속에 중요한 지표를 세워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여행이 끝난 후에도 나의 삶이 존재의 근원을 찾는 기나긴 여정임을 잊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초대 및 중세 기독교의 역사와 정신을 알기 위해 유럽의 로마가톨릭의 역사도 더듬어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또한 각기 나라와 민족의 특성에 따라 발전한 정교회의 특성도 살펴보는 것은, 나의 신앙의 폭과 질을 높이는데 귀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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