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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대선의 결과 앞에서" 서남동 목사님께 드리는 편지

행복나무 Glücksbaum 2007. 12. 23. 20:03

                                        

서 남동 목사님께:

 

오늘 저는 참담한 마음으로 목사님께 편지를 드립니다. 2007년 12월 19일 제 17대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압승했습니다. 신문 마다 통계를 내 놓고 한국 정치사상 최대의 득표를 말하고 이른바 민주개혁 세력의 득표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대승했다고 난리들입니다.

 

신문 마다 대선의 결과를 놓고 논객들을 내 세워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한결같이 민주개혁 평화세력의 참패라고 말하면서 보수세력의 승리라고 판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보다는 먹고 사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국민들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거의 모든 논객들은 국민들이 한나라당을 좋아 해서라기보다는 노무현 정권에 실망해서, 노 정권 라인에서는 후보에게는 절대 표를 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난 12월 13일 자 신문에 정동영 후보의 선거용 광고를 읽고 저는 착잡한 마음과 함께 일말의 희망을 가졌었습니다. 그 광고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지난 5년간 평화, 인권, 민주주의는 발전시켰지만 민생경제는 발전시키지 못했습니다. 세금 고통, 취업고통, 사교육비 고통 등—민생 고통에 위로조차 못했습니다.

반성 합니다. 대통령 꿈을 가진 정치인로서 국민들의 아우성을 제대로 위로하지 못했습니다. 대통령에게 맞서 용기 있게 발언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죄를 구합니다.“

 

이 글을 보면서 여권 후보가 스스로 이번 대선의 패배 원인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민주화를 내걸고 민주주의라는 이념만으로는 여권이 계속 집권해야 한다는 것에 설득력을 잃었다는 것을 여권 대선 주자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국민들은 미주주의 위에 더 잘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 더 나아가서 민주주의만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정 동영 후보가 누구 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민주주의를 해야만 잘 살수 있다는 이야기로 국민을 설득할 수 없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정동영 후보의 정치적인 뿌리는 노무현 정권인데도 노무현 정권과는 차별화되는 정치공학을 일삼았습니다. 노무현 정당으로부터 이탈하여 다시 모인 이른바 “신당”으로 대선에 임했으나, 결국 국민들은 노 정권의 실정을 정동영의 책임으로 판단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노 정권의 실정은 민주화 세력과 민주주의 이념에 그 책임을 물었던 것입니다.

 

목사님,

저의 참담한 마음은 우리 국민들이 우경화 했고 민주주의보다는 더 잘 살아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만이 아닙니다. 이 명박 후보의 수많은 심각한 비리와 의혹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표를 던졌다는 것은 참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노 정권의 실정은 너그럽게 봐 줄 수 없지만, 부정직한 이 명박 대통령은 용서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실용주의입니까? 정의보다는 배부르게 먹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해석해야 할 것인가요? 우리는 “배고픈 시인보다는 배부른 돼지”가 되겠다는 것인가요? 목사님 살아생전에 우리 모여앉아서 “물론 우리는 배부른 시인이 되고 싶은 거지..” 그렇게 말하며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선비의 나라, 청렴한 정치인, 도덕성을 갖춘 지도자를 원하는 국민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돈을 최고의 가치로 떠받드는 나라가 되고 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참담합니다.

 

요사이 우리 가운데 “시대정신”을 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사님과 함께 민중 신학을 논하던 1970년대의 시대정신은 민주주의였고 반 독재였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군부독재 박 정희 일당은 당대의 시대정신을 “잘 살아 보세”라는 노래에 담긴 새마을 정신이라고 강변할 것입니다. 저는 1945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우리의 시대정신은 민주주의의 갈망, 자유에 대한 갈망, 그리고 분단 극복과 전쟁 없는 평화에 대한 갈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저의 심정이 참담한 것은 이제 우리의 시대정신의 실종을 보는 것 같아서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 사라질 것입니다. 새 대통령이 우리가 그동안 이룩하여 놓은 절차적 민주주의”나마 무시하고 역행하고 탄압해도 국민들은 또 용서하고 따라갈 것이 눈에 보입니다.

자유를 말할 때도 신자유주의의 틀 안에서 시장의 논리에 따른 자유만을 논할 것입니다. 개인의 자유, 저항의 자유, 언론과 집회의 자유는 후퇴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군사독재 시대를 동경하는 사람들이 득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법의 질서를 무시해 온 사람들이 자기네 편리하게 법의 질서를 내세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님,

한심한 것이 “이제 위장 취업도, 위장 전입도 해도 되고 세금 내는 것 속여 가며 조금만 내면 되겠네…” “아니 그 뿐인가? 거짓 말 해놓고 그건 홍보용으로 좀 과장한 것뿐이야… 해도 되겠네.” 우리는 이정도로 도덕성을 잃어 버려가고 있습니다. 도덕적 냉소주의가 팽배할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하기에 낯부끄럽게 되었습니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우리의 평화주의는 위기를 맞게 될 것 같습니다. 제가 12월 5일 개성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관계하는 재단에서 북의 수해 복구 지원의 일환으로 중고차 400대와 트럭 100대를 가지고 간 일이 있었습니다. 북쪽의 환영 만찬 자리에 젊은 엘리트 몇 사람과 마주 앉아 점심을 먹는데, 그중 한사람이 하는 말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면 남북관계는 많이 달라지겠지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1 제2의 남북 정상회담과 6자 회담에서 진전된 남북 화해와 협력과 공동 번영의 로드 맵을 싹 걷어치우고 북 핵을 내세우고 호상 교류를 내세우는 나아가서 호전적인 냉전시대로 돌아갈 것이 우려됩니다.

 

목사님,

우리는 전태일이 민주주의와 노동 인권의 불기둥으로 분신한 날 YMCA 호텔 구석 방에 모여 앉아 “민중”을 논하고 “민중 신학”을 내놓았지요. 그러면서 목사님은 일제하 한국민족 전체를 “민중”으로 정리하셨지요. 그리고 분단된 한 반도에 사는 우리 모두를 민중으로 인식하셨습니다. 분단의 “한”을 말씀하시면서 분단의 극복을 민중 신학의 과제로 제시하셨습니다.

힘겹게 연결해놓은 남북 철도, 남과 북을 통하는 자동차 길, 금강산 관광, 백두산 관광길, 개성 공단, 개성 관광의 길이 다시 막힐 것인가? 북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하면, 새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 짜고 전쟁을 불사한다고 나올 것인가? 목사님, 이게 우리의 새로운 두려움이 되었습니다.

 

착잡하고 참담한 마음, 두려움과 공포심을 가라 앉히고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생각을 해 봅니다.

왜 “정권교체”의 구호가 먹혀들어 갔는가? 덮어놓고 이 정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명박과 이 회창을 지지한 60%가 넘는 국민들의 생각입니다. 이런 인심을 앞에 놓고 인심을 탓하기 전에 먼저 무릎을 꿇고 반성하고 참회해야 하겠습니다.

군사개발독재정권이 경제성장에 성공한 것에 대해서 “한강의 기적”이니 해 가며 자랑하고 인권을 무시하고 국민들 위에 군림하는 실수를 저질렀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한마디로 군사개발독재정권은 오만에 빠졌던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이른바 민주개혁 정권은 민주주의를 성취했다는 오만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국민을 무시했습니다. “왜 민주주의가 싫으냐?”고 윽박질렀습니다. 어떤 정치인은 “국민들이 노망에 빠진 게 아닌가.” 하는 실언까지 했으니, 우리의 오만을 대변하는 격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옛날 러시아의 사상가, 목사님이 놓아 하시던, 베르쟈예프가 말한 것 처럼 “우리는 우리 투쟁의 대상을 닮는다.”는 것입니다. 소위 우리 민주개혁세력이라고 하는 사람들, 70년대 군부독재정권과 투쟁하고 항거한 세력들이 집권한 뒤, 수구세력들과 다른 태도, 다른 정치, 그야말로 차별화된 정치를 했는가 반성해야 합니다. 다른 것이 있었다면, 민주주의를 말로 만 내세운 것입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민주주의를 내세워서 비효율적인 정치를 해왔습니다. 우리는 우파 정치세력의 부패와 비리를 내 세우고 비판하지만, 소위 민주개혁세력의 비리와 부패는 말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민주화 세력의 부패상은 권력에 굶주렸던 사람들이 권력을 잡으면서 정신없이 부패해나간 것이 아닌가 반성해봅니다. 영국의 정치사상가 액튼 경이 한 말 “권력은 부패한다. 그리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말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은 유교의 정치윤리와 기독교의 청교도 정치윤리를 망각한 집권 세력에 대한 냉엄한 교훈입니다.

 

이제 패배한 민주개혁 평화 정당이 참회하는 마음과 행동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민주주의 제단 앞에 모여서 “패배해서 분하다, 억울하다”는 소리를 억제하고 “죄송합니다. 반성합니다.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잘난 척하고 권력에 집착하고 권력의 달콤한 맛에 도취해 버려서 국민들의 말, 국민들의 고통의 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이제 다시 일어나겠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4월의 총선에서 야당이 된 민주개혁 정당이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고 다수당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명박 당선자의 BBK 특검에 매달리지 말고, 도덕 정치가 통하고, 민주주의와 평화 통일의 깃발을 높이 들고 나서는 선명한 이념 정책 정당으로 나서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정치적 잔재주, “정치 공학”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도덕 정치”와 “민주정치”로 이번에 실패한 “범여권”이 함께 모여앉아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로 뭉치는 자리가 필요합니다. 건전하고 믿음직 한 야당으로 탄생하는 길 만이 이 땅에 민주주의와 평화를 실현하게 하는 비전과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

그 동안 민주주의 물결을 타고 우리는 시민 사회운동을 많이 했습니다. 독재 정권 아래서는 나름대로 힘이 있었고 대안도 꽤 내어놓았다고 자부하고 싶습니다. 목사님도 살아계셨더라면, 아마 그 많은 사회운동 단체의 이사장이다 원로다 하면서 많은 활동을 하셨으리라 짐작됩니다. 물론 그리 하셨어야지요. 목사님이 하셨더라면 신민사회단체의 오만과 부패를 막을 수 있었을까요?

우리의 현실은 시민단체들의 힘이 생기면서 역시 부패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민들의 편에 서서 발언하지 못한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낼까하는 생각으로 빠져들어 가면서 정부의 부속기관으로 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사이비 시민단체”가 된 셈입니다.

 

앞으로 우리 시민사회 운동체들 역시 위기의식을 실감하고 환골 탈퇴하는 심정으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민중 편에 서서 발언하고 민중의 아픔을 알아내고 민중을 대변하는 참된 시민 단체, 수구 보수 세력이 빠지기 쉬운 반민주 반 평화 반민중 정책과 정치에 대해서 항거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참된 의미의 시민운동을 전개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목사님의 이름을 따서 “죽재 서남동 기념사업회” 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오늘 그 첫 번째 사업으로 내어놓은 월례 모임의 첫 번째 모임으로 모였습니다. 우리 사업회는 목사님과 동료들이 시작한 민중 신학을 이어 받아 오늘의 상황에서 계속 발전시키자는 뜻으로 시작한 신학자들과 목사님의 뜻을 따르는 목회자, 평신도들의 모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교회 현실을 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다수 한국 교인들과 교회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기독교인 대통령, 장로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고 교회 안팎에서 서슴없이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승리했고, “하느님의 뜻”이라고 강변합니다.

 

목사님과 저희들이 70년대 민중 신학을 하면서 독재 정권에 항거할 때 한국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른바 “정교 분리” 원칙을 내 세우면서 교회는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강변하고 저희들을 “이단”이라고 규탄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네들은 독재 장군들을 모시고 “국가 조찬 기도회”에서 정통성 없는 군사정권을 “축복”하고 교회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정당화시키면서 스스로 정교분리의 원칙을 위반했던 것입니다. 이제 “장로 대통령”이 태어났으니, 우리나라 교회는 얼마나 오만에 빠지고 정치권력에 가까워지고 덕을 보려고 할 것인가 생각 만 해도 암담해집니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 교회들의 행태는 반민주적이고, 반공, 친미, 반 평화 세력으로 결집해 왔는데, 앞으로는 더 노골적으로 반민주 반평화 세력으로 정치권력화 할 것이 눈에 보입니다.

 

그러나 목사님,

우리 민중 신학을 한다는 사람들,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사람들도 앞장서서 참회와 반성의 대열에 참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설 자리가 권력과는 거리를 두고 “친여적 제사장”의 자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선지자의 자리여야 한다는 것을 망각해왔습니다. 우리는 성직자가 권력의 자리에 앉아서 실제 정치에 참여하고 한자리해도 되는가 하는 질문을 놓고 고민하기도 전에 그런 자리에 연연했습니다. “민주화를 위해서 그만큼 희생했으니, 그만한 댓가는 받아야지…”하면서 권력의 자리를 찾아 헤맸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도덕성을 되찾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너무 커졌고, 너무 오만해 졌고, 그리스도의 참 모습을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천민 자본주의화는 기독교의 위기를 불러 왔습니다. 특히 우리 에큐메니칼 운동권, 기독학생 운동권은 다시 새롭게 태어나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윤리적 독선주의와 허황된 낭만적 민주주의를 반성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민중 신학을 하던 초심으로 돌아 가야 하겠습니다. 권력을 뺏긴 자리에서, 힘없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한국사회와 한국교회를 다시 보고 다시 발언해야 하겠습니다.

 

민중 신학의 새로운 탄생—반민중적 정권이 민중의 이름으로 등장한 이 마당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목사님,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저의 심정을 가누기 힘들어, 이렇게 목사님께 편지를 보내드립니다. 하느님나라에서 편히 쉬시는 목사님도 마음이 괴로우실 것 같아 괴로운 말씀으로 이 글을 보냅니다. 저희들과 함께 하시고 저희들에게 용기와 지혜를 주십시오.

 

 

 

2007년 12월 21일 (대선 선거 이틀 후에)

 

 

목사님의 제자, 서 광 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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