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고향 다소와 함께 그 생애와 깊은 관련이 있는 곳은 안디옥이다. 바울을 소아시아 지역으로 파송했던 안디옥교회가 있었던 곳이다. 안디옥 교회는 초대교회 중에서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제일 먼저 인식했다. 그래서 바울을 선교사로 선발하여 파송하였고, 그의 해외선교 거점이 되었다.
안디옥 교회를 찾아 다시 길을 떠났다. 왔던 길을 되돌아 아다나를 지나서 계속 동편으로 향해 달려갔다. 다소를 출발, 꼭 240km를 달린 끝에 안타키아(Antakya)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이곳이 바로 안디옥이다. 한때는 로마,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로마제국의 3대 도시 중의 하나로 손꼽히던 대도시였다. 또한 이곳은 아름다운 도시로도 유명해서 ‘동양의 여왕’이라 별명이 붙은 곳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소아시아지역에 있는 비시디아 안디옥과 구별하기 위해 수리아의 안디옥이라 불린다.
안디옥은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직후인 주전 300년에 건설되었다. 실피우스 산과 스타우린 산기슭에 위치한 이 도시는 수로를 통해 디프네에서 물을 끌어왔다. 다프네는 안디옥에서 서쪽으로 6km 떨어진 산기슭에 위치한 휴양지로서, 아폴로 신전과 함께 도덕이 문란한 곳으로 유명했다. 주전 64년 폼페이우스에게 정복당한 이 도시는 로마의 상인들이 이주하여 상업중심지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그 뒤로도 여러 황제들이 이곳에 신전, 극장, 경기장, 공중목욕탕, 수로들을 건설하고 방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성벽을 확장했다.
헤롯 대왕은 이 도시에 길이 약 3,2km, 너비 30m의 대로를 건설했다. 로마로 연결되는 군사도로 아피아 가도이다. 가이샤라 디베료 때는 웅장한 기둥과 성문 및 석상이 세워졌다.
1) 안디옥의 피난처 - 동굴교회
안디옥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던 곳은 의외로 실피우스 산 중턱에 있는 동굴 교회였다. 안디옥 도시의 동편에 있는 실피우스 산은 나무가 거의 자라지 않는 돌산으로, 크고 작은 동굴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안디옥의 그리스도인들은 그 동굴의 한 곳에 모여 예배를 드린 것 같다. 놀랍게도 동굴의 안쪽 한편 구석에는 허리를 굽히고 들어갈 수 있는 통로 입구가 있었다. 예배 도중 교회를 핍박하는 적들이 나타나면 몸을 숨겨 탈출하는 비밀통로이다. 길이 4km나 되는 이 비밀통로는 중간에 여러 갈래로 갈라져서 산 반대편으로 나가게 되어 있다고 한다. 환난과 핍박으로 점철되었던 초대교회의 생생한 현장이다. 바위동굴 속에서 예배드리며 선교활동을 도왔던 안디옥의 그리스도인들의 위대함을 여기서 발견한다.
2) 안디옥 교회
사도행전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생겨나던 때의 일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돌아가신 얼마 후의 일이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로 인하여 예루살렘에 교회가 생겨나고 교인들이 많아지자 사두개인과 바리세인과 유대인들은 교회를 핍박하기 시작했다. 교인들은 누구든지 체포되기만 하면 감옥으로 끌려갔다. 마침내 예루살렘교회의 첫 집사이던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순교를 당했다. 그러자 예루살렘에 있던 교인들은 흩어지기 시작했다. 예루살렘에서 북쪽인 페니키아와 안디옥으로 그리고 섬나라인 키프러스로 흩어져 갔다. 예루살렘에서 핍박을 받으며 살기보다는 다른 곳에 가서 자유롭게 믿음으로 살려고 했다. 특별히 안디옥은 그때 로마 제국에서 세 번 째가는 크고 중요한 도시였다. 로마와 알렉산드라아 다음가는 도시였고 주민의 대부분은 유대인이 아닌 수리아 사람이요, 큰 유대인 부락도 있었다. 상업과 무역의 요충지였던 이곳은 유흥도시이기도 했다. 경마와 도박이 성행했었고, “다브네”라는 여신을 섬기기도 했다. 그런데 이곳에 예루살렘에서 핍박을 피하여 온 교인들이 수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교회가 생겨났다. 그것이 안디옥교회였다. 역사상 유대인이 아닌 첫 이방인교회였다.
안디옥에 이방인교회인 이 안디옥교회가 생겨 난 것은 장차 교회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갈 것을 예시한 기독교 역사에서 참으로 중요한 사건이었다.
핍박 중에 있던 예루살렘교회가 이 소식을 들었다. 그것은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예루살렘교회는 핍박과 박해를 받고 있는데 유대나라가 아닌 안디옥에서 교회가 생겨나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오고 있다는 소식은 어두운 밤에 한 줄기 빛과 같은 희망이었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는 바나바라는 사람을 안디옥 교회로 파송했다. 바나바는 예루살렘교회가 생겨 날 때 자신의 모든 재산을 팔아서 교회에 헌납하던 열심이 있는 교인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사도들에게 전적인 신뢰를 받았고 참으로 훌륭한 초대교회의 지도자였다. 이와 같이 안디옥교회는 ‘피난민’ 교회로 시작되었다.
예루살렘에서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는 등, 교회의 핍박이 심했을 때 많은 기독교인들이 500km떨어진 안디옥으로 피신하였다. 그래서 이곳에 초대교회가 형성되었다.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파괴되자 안디옥은 기독교의 제 2의 중심지요, 동서를 잇는 선교의 거점이 되었다. 이곳의 교인들이 교회 역사상 최초로 ‘크리스천’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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