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이민 자 없이는 못산다." 국적법 손질 서둘러 유럽 국가들은 향후 몇 십 년 이내에 노령인구 확산과 극심한 노동력 부족으로 자국 내로 이민 온 제3세계 노동자들에게 얹혀살게 될 것이라고 워싱턴 포스트 지가 8일 현지 소식통들을 인용, 보도했다. 유럽의 노화(老化) 가 가시화 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올해(2000년)부터 국적법을 바꿨다. 1913년 제국법령 때부터 유지하던 혈통주의를 포기하고 속지주의(屬地主義)를 채택했다. 이에 따라 외국인도 독일에서 8년 이상 거주하다 아이를 낳으면 그 자녀들은 이중국적을 가질 수 있게 됐다. 23세가 되는 해에 독일 국적을 가질지, 부모의 국적을 따를지를 결정하면 된다. 하지만 최근까지 외국 노동자들을 노골적으로 차별하던 독일에서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은 단순히 '개방사회로의 전환' 이란 고상한 명분 때문이 아니라는 게 외신들의 보도다. 실상은 독일의 인구구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 독일인 다섯 명 중 한 명은 은퇴 연령이 넘은 사람들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50년 이내에 독일 인구의 절반은 은퇴한 나머지 절반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해야 한다. 유엔 리포트는 8천 2백만 명의 독일국민이 현재 생활수준을 유지하려면 앞으로 25년간 해마다 50만 명의 해외 노동력을 수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고민은 독일만이 아니다. 유엔 리포트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가장 노령인구가 많고 출산율이 극히 낮은 이탈리아의 경우 향후 25년간 해마다 30만 명의 해외 노동력을 받아들여야 한다.
유럽연합(EU)에 속한 15개 국가들 전체로 보면 현재의 직업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복지수준을 맞추려면 2025년까지 적어도 1억 5천만 명의 해외 노동력이 들어와 세금을 내줘야 한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유럽인들 사이에선 무더기로 쏟아져 들어오는 제3세계 노동력에 대한 반감이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외신들에 따르면 유럽 국가들은 두 가지 전략을 쓰고 있다. 무작정 이민을 오려는 제3세계 노동력은 강력히 제한하되 이미 국내에 들어와 자리잡은 외국인들은 최대한 빨리 동화시켜 자기 나라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독일이 자국내 2백만 터키인들에게 사용하는 전략이 대표적이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독일의 필요에 의해 유입된 터키인들은 그 동안 극심한 차별대우를 받아왔다. 최근 독일은 국적법을 바꾸며 이들을 동화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터키인들 사이에서 이를 거부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경제계는 인력 부족을 호소하며 이민규정을 완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야당인 기민당은 외국인 유입에 대해 더욱 엄격한 통제를 가할 것을 주장하고 있어 논란을 빚고 있다.
기민당은 2000년 2월 6일 열린 지도부 회의에서 독일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독일 문화에 적응시키기 위해 독일어와 독일 역사, 독일 관습 등을 의무적으로 익히도록 해야 한다는 소위 `주도 문화(Leitkultur)' 개념을 승인했다. 즉 독일에 살기를 원하는 외국인들은 "독일 사회가 요구하는 문화와 법질서(주도 문화)"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 같은 원칙을 국가가 강제한다는 것이다. 당내 신진 그룹의 선두주자인 프리드리히 메르츠 원내의장에 의해 촉발된 `주도문화' 논쟁은 당내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당론으로 결정됨에 따라 독일의 향후 외국인 정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독일의 사민당-녹색당 연립정부는 기민당의 `주도 문화' 논쟁에 대해 시대착오적인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기민당의 `주도 문화' 개념에 대해 "매우 기괴하고 촌스러운 발상" 이라고 폄하하고 기민당에 대해 소모적인 논쟁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녹색당의 좌파 정치인들은 기민당의 `주도 문화'에 대항하는 `다양성의 문화'를 주창하며 기민당이 국수주의적인 발상으로 세계적인 조류에 역행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심지어 독일의 지식인들은 `주도 문화' 개념이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던 나치 독일 당시의 외국인 정책과 유사한 느낌을 주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기민당이 이 같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주도 문화' 개념을 주창하고 있는 것은 오는 2002년 총선에서 외국인 정책을 부각시키려는 전략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기민당은 98년 총선 패배 후 99년 2월에 처음 실시된 헤센 주 주의회 선거에서 `적-녹 연정'의 외국인의 독일국적 취득요건을 완화하는 국적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운동을 통해 선거를 승리로 이끈 경험이 있다. 기민당의 `주도 문화' 논쟁에는 다음총선에서 외국인에 적대적인 독일인들의 정서를 십분 활용한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기민당의 이 같은 태도에 대해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귄터 그라스는 극우파의 외국인에 대한 테러 행위의 근본적인 원인은 과거 집권당이었던 기민당의 외국인에 대한 비우호적인 정책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라스는 또 독일 정치인들이 정권 획득을 위해 외국인 문제를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독일 정치권이 외국인 정책을 둘러싸고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경제계는 인력부족을 타개하는 방법은 외국의 우수한 인력을 유치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독일산업연맹(BDI)은 외국인이 독일에서 취업하고 정착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독일 경제계 뿐 아니라 대학들도 외국의 우수한 학생들은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벌이고 있으나 독일의 외국인 담당 관청들은 까다로운 비자발급 규정을 고수하고 있어 손발이 맞지 않고 있다.
독일 정부는 정보통신 인력난을 타개하기 위해 외국 전문인력 2만 명에게 그린카드(취업비자)를 내주기로 결정했으나 독일의 까다로운 이민규정으로 인해 외국인력이 독일 취업을 기피하고 있어 전문인력 충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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