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유럽공동체 EC의 회원국 확대
1969년 드골이 사임하자 영국은 본격적으로 가입을 위한 활동에 들어갔니다. 영국의 가입에 대한 결정적 열쇠는 여전히 프랑스가 쥐고 있었다. 새로운 대통령 퐁피두는 아직도 영국의 가입을 달갑게 여기지 않고 있었으나, 공동농업정책을 위한 새로운 재정 충원 제도에 대한 다른 EC국가들의 동의를 받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또, 프랑스나 서독 모두 영국을 상대방에 대한 세력균형의 카드로 고려하게 됐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영국은 1972년 1월, 브뤼셀에서 회원 가입 조약에 서명을 하고, 1년 영국은 10여 년간의 인내 끝에 정식으로 EC의 회원국이 됐다. 이와 동시에 아일랜드와 덴마크가 가입하여 EC회원국은 9개국이 됐습니다. 노르웨이는 심각한 국내 정치 분열만 남긴 채 가입을 거부했다.
EC 확대에 따라 EC와 EFTA간에도 특별관계협약이 맺어졌다. 1972년 6월 EC와 EFTA의 16개국은 자유무역지대를 설정하는데 합의를 보았다.
이 협약은 철저한 호혜주의에 입각한 무역협정이었다. 이러한 조약은 195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서유럽내의 EC와 EFTA 간의 반목을 종식시키는 것이었고, 서유럽에서 구심점은 EC가 된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울러 그들은 장래의 EC 확대를 위한 확고한 기반을 구축했고, 핀란드와 협정을 제외한 모든 협정들은 상업분야에서 뿐만이 아니라, 여타 분야에서도 긴밀한 협력이 가능하다는 해석의 여지를 남겨놓았다.
두 번째 확대는 1981년에 그리스의 가입으로 이루어졌다. 그리스는 이미 1962년에 준회원국으로 가입한 상태였으나, 군사정권 기간 동안 그 협정은 중지됐습니다. 1974년 11월 새로운 민간정부가 들어서자 그리스는 정식 회원국으로서 1975년 6월에 EC가입을 신청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집행위원회는 그리스의 가입신청에 신중해했다. 그리스가 가입함으로써 야기될 경제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집행위원회의 신중함에 대해 각료이사회는 협상의 조속한 재개를 결정했다. 그리스의 가입신청과, 포르투갈, 스페인의 가입신청은 EC에 남북 유럽 간 경제적 균형문제를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켜주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스의 가입신청은 매우 순조로운 편이었는데, 갓 태어난 그리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그리스행정부가 매우 열광적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EC도 동의했습니다. 이것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됐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가입에 대해서는 영국과 프랑스가 대립했다. 영국은 EC를 12개국으로 확대하면서 시장도 넓히고 프랑스의 주도권 약화를 노렸고, 프랑스는 공동체의 첫 번째 확장을 마무리부터 짓자고 주장했다.
그것은 1982년에 시행된 개정 예산 체계를 도입하기 위해 1980년 5월에 체결된 협약과 영국의 EC예산 기여에 대한 영국 및 여타 EC 회원국들 사이의 격렬한 논쟁이 조속히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EC 확장으로 인해 프랑스 농업에 야기될 문제점에 대한 걱정이 지스카르 데스텡의 담화문 뒤에 숨어있었다. 그러나 그리스의 예처럼, 스페인과 포르투갈도 막 태어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프랑스도 그들의 가입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985년,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EC 가입조약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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