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이곳 대만에서도 ‘한반도 전쟁 발생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라는 내용의 뉴스가 연일 보도되더니, 선거가 끝난 후에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한반도 긴장 이야기가 뉴스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선거 이틀 전인 5월 31일만 해도 대만 정부는 한반도에서 대만인들이 속히 철수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공군 운송기를 24시간 대기시켜 놓고 있다고 발표를 했었는데, 아직도 운송기를 24시간 대기시켜 놓고 있는지는 소식이 없습니다. 너무도 분명하고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것처럼 보이던 모든 초긴급 정황들이 어떻게 이렇게 순식간에 아무 일 없이 사라진 것처럼 행동할 수 있는지, 너무 어처구니가 없고,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튼 한반도 긴장이 한 고비를 넘기고 전쟁 운운하는 이야기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게 되어 다행입니다. 그리고 이곳의 모든 생활을 접고 귀국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도 털어버리게 되어 다행입니다. 부디 국제 사회에서 한국 사회가 더 이상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러나 남북이 평화롭게 통일되지 않는 한, 한 민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도 오랫동안 극력하게 서로를 비방하며 대치하고 있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조롱의 꼬리표는 떼어버릴 수 없을 것입니다.
대만의 상황도 늘 불안정합니다. 여당은 경제 활성화와 대만의 평화를 위해 중국과의 양안경제협력구조협정(ECFA: Economic Cooperation Framework Agreement. 兩岸經濟合作架構協議) 체결에 온 힘을 쏟고 있지만, 야당에서는 국민투표를 주장하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마 총통은 ECFA를 체결할 경우 대만에서 미사일을 철수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중국도 미사일을 철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야당에서는 마 총통의 순진한 생각이 대만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대만은 독도 문제를 놓고 한국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는 일본과도 일종의 영토 분쟁 문제에 휘말려 있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동경 123도를 일본과 대만의 방공식별구역으로 설정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1972년 오키나와 섬을 일본에 반환함으로써 동경 123도는 일본 상공 관할 구역의 서쪽 경계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최근 123도 너머까지 방공식별구역을 확장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요나구니 섬(與那國島)입니다. 요나구니 섬은 오키나와가 포함되어 있는 류큐 열도의 서쪽 끝에 있는 섬으로, 대만에서 120킬로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이 섬은 오랫동안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한 류큐 왕국의 영토였는데, 메이지 시절에 대만과 함께 일본에 병합되었다가 2차 대전 후 미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1972년 오키나와의 여러 섬들과 함께 일본에 귀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섬은 동경 123도에 걸쳐 있어서 섬 서쪽 상공은 대만이, 동쪽 상공은 일본이 관할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동경 123도의 경계를 넘어 이 섬 전체의 상공에 대한 관할권을 가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대만으로서는 대만과 긴밀한 교류를 가지고 있는 이 섬에 대한 영향력과 상공 관할권의 상실을 원하지 않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이렇게 대만은 서쪽으로는 중국, 동쪽으로는 일본으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대만의 최근 주요 뉴스 가운데 하나는 중국에 있는 대만 공장 노동자들의 연이은 투신자살 사건이었습니다. 사건은 지난 1월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1월 23일 중국 광둥 성 선전(深圳)에 있는 대만 기업 팍스콘(富士康)의 공장에서 노동자가 투신 자살한 이후로 지난 5월 말까지 13명이 투신하거나 자살을 기도해서 11명이 사망한 것입니다. 팍스콘은 대만의 최대 재벌인 훙하이 그룹(鴻海科技集團)의 자회사로,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팟, 델 컴퓨터, 노키아 휴대전화, 휴렛 패커드, 소니 등 세계의 쟁쟁한 IT 회사들의 부품을 생산하고, OEM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거대한 기업입니다. 팍스콘은 중국 내에 여러 공장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선전 공장은 근로자 수만도 40여만 명에 달하는 최대의 공장이라고 합니다.
1월부터 발생한 근로자들의 자살 사태가 중단되지 않자 훙하이의 궈타이밍(郭台銘) 회장이 5월 26일 선전 공장을 방문해서 대책을 논의했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임금 개선을 제안했는데, 처음에는 20퍼센트 선을 제시했지만 근로자들이 받아들이지를 않고, 회장 방문 직후에도 자살자가 발생하자 30퍼센트 선으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지 않자 다시 최근에는 약간의 조건을 달아서 최고 122퍼센트까지 인상하는 안을 제안을 했습니다. 참고로 5월말 현재 팍스콘 선전 공장 근로자들의 평균 월급은 900위안(16만 원정도)으로 다른 해외 기업들이 세운 공장들의 수준보다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5월 들어서야 이 사건이 대만에 집중적으로 보도되기 시작했는데, 처음 방송에서는 선전 공장에서는 무로로 좋은 기숙사 시설과 식사를 제공하고 있으며, 수영장 같은 여가 시설도 있고 급여 수준도 중국에서는 좋은 편에 속해서 자살이 공장 근로에 대한 불만은 아닌 것으로 분석하면서, 연속적인 자살은 개인적인 일이며 모방에 의한 일종의 정신병적 현상일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중국을 방문한 이후에도 궈 회장은 그 많은 근로자들 가운데 그 정도의 자살자가 생긴 것은 정상적인 수치에 해당한다고 말하기도 했고, 사망자에 대한 위로금이 너무 높아 자살 사건이 계속 발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언론들은 사태의 원인을 좀 더 진지하게 캐내려고 하기보다는 이런 사건으로 인해서 애플이나 휴렛패커드 같은 회사들의 제품 생산에 큰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말들만 했습니다.
그러다 조금 시간이 더 지나면서 팍스콘 공장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24시간 가동되는 공장에서 묵묵히 장시간에 걸쳐 기계처럼 일해야 하는 현실, 짧은 식사 시간에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철저하게 통제해야 하는 작업 환경, 마치 70년대 한국에 들어왔던 자유무역 공단 내 외국 기업들의 작업 환경을 연상케 하는 여러 조건들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7초마다 하나씩 자기가 맡은 부품을 끼워 넣어서 10시간 동안 4만개 이상의 제품에 대한 작업을 마쳐야 하는 작업 환경, 거기에 잦은 연장 근로, 많은 감시와 군대처럼 엄격한 규율...
대만자살방지학회는 이번 선전 공장의 자살 사례를 분석한 결과 자살 원인과 업무 내용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보이지 않는다고 발표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방문 조사 기간도 짧고 조사 방법에 대한 자료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조사 결과의 신빙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과학의 이름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학문이 거짓의 손을 들어주는 데 이용되는 경우들이 적지 않은 현실 속에서 이 역시 그런 사례의 하나가 아닌지 우려됩니다. 어떤 사람이 이야기한 것처럼 자살하는 근로자들은 모두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젊은이들로 1가구 1자녀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이라 비록 가난해도 귀염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힘든 환경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부족해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발생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단지 개인의 인내력의 부족만으로 이런 일련의 사건이 발생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열악한 근로 환경이 연이은 자살의 원인이 아니라면 처우를 파격적으로 개선한 후에도 근로자들의 자살은 중국 사회의 평균 자살률만큼 계속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결과는 더 지켜보아야 할 일입니다.
이번 사태를 놓고 중국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측에서는 대만이 경제적으로 너무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한국에 밀리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면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지나친 중국 의존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난 5일에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제가 맡은 강의의 절반은 4학년 학생들 과정이라 강의 절반은 종강을 했습니다. 강의를 할수록 자심감이 생기기보다는 좋은 교사가 된다는 게 힘들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됩니다.
2010년 6월 8일, 대만에서 구창완 **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