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어제는 대만의 '어머니 날(母親節)'이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날짜를 고정하지 않고 5월 둘째 일요일을 '어머니 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버지들의 거센 항의로 '어머니 날'이 '어버이 날'로 바뀌었습니다만, 이곳에서는 아직 '어머니 날'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출석하는 대만 교회에서도 모든 교인들이 가슴에 카네이션 꽃을 달고 예배를 드렸고, 예배 시간에 어머니들에게 작은 카네이션 꽃다발과 선물을 나누어 드리는 순서도 가졌습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살 물건도 있던 터라 점심을 먹을 겸 한 마트에 들렀더니 전에는 휴일이라도 다른 마트보다는 사람이 적어 한산한 편이었는데 어제는 사람들이 북적거렸습니다. 편의점이나 빵 가게 등에서도 한 달 전부터 '어머니 날' 케이크를 주문한다고 광고했었습니다. 아마도 분위기 있는 식당마다 부모님을 모시고 나와 식사하는 가족들로 붐비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감사나 사랑의 마음이 식어들고 있는 세태 속에서 '어머니 날'이 특별한 날로 지켜지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만은 계속되는 자연재해로 재해에 대한 염려가 그치질 않고 있습니다. 지난 해 여름에 발생한 88수재로 피해를 입은 지역에서는 새 여름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까지도 복구가 다 안 되어 새로운 피해를 걱정하고 있었는데, 강도 7이 넘는 지진이 일어나서 지진 걱정가지 더하고 있던 터에 산사태가 나서 흙이 고속도로를 덮치는 바람에 사람이 죽는 사태가 일어나 이번에는 전국적으로 산사태 걱정에 휘말렸습니다.
사건은 일요일인 4월 25일 오후 2시 반 경에 일어났습니다. 대만의 제3 고속도로 북부 끝에 있는 도시인 지룽(基隆)으로 가는 길목에서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해 흙더미가 고속도로 왕복 8차선 도로를 덮친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 도로를 주행하던 자동차들이 순식간에 매몰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차량 다섯 대가 매몰된 것으로 추정했는데, 주야로 발굴 작업을 계속한 결과 3일 후 차량 3대가 매몰되고 그 차에 타고 있던 네 사람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사망자 가운데는 대만장로교회 지룽 종산 교회의 목회자인 라이 더칭(賴德卿) 목사의 남편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제가 일하는 창롱대 교목실에도 서로 아는 분들이 있어 이번 사고 소식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사진으로 봐서는 대단해 보이지 않는 산사태인데도, 흙더미는 길이 약 200미터, 폭 60미터로 내려 앉아 면적은 축구장 3배 크기의 규모이고, 무게는 총 22만 톤이 된다고 했습니다. 연일 중장비를 집중 투입해서 일주일 정도만에 길은 터놓았지만, 도로 위에 내려앉은 흙을 다 치워서 통행을 정상화하는 데는 두 달 이상 걸릴 거라고 했습니다.
이번 산사태는 지진도 없었고 비도 내리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어서 더욱 자연 재해를 염려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진을 보더라도 무너져 내릴 만한 이유가 별로 없어 보이는데 산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지질학적으로 노령기에 들어서서 안정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토양과는 달리 대만은 아직 생성된 역사가 오래지 않은 청장년기의 지형이라 지표 역시 아직 불안정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뜻하지 않은 지표 이동이 발생합니다. 이 사고로 인해 산의 경사면에 있는 주택들의 안전에 대한 염려가 높아졌고, 그런 지역에 있는 주택들의 가격이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평지가 적은 북부 지역은 수도인 타이베이를 중심으로 많은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데, 이로 인해 이 지역에는 산 경사면에 자리 잡은 주택들이 많아 염려를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별로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산사태에도 이렇게 사람들이 죽는 사태가 발생하는데, 아무리 안전조치를 취하고 대비를 한들 사람이 어찌 자연의 힘에 맞설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보다 안전한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도 없는 일이고, 아무쪼록 이런 재난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사람들이 흩어져 살기를 거부하고 한 곳에 모여 도시를 만들고 마천루를 세우는 것을 하나님께서 못마땅하게 여기시고, 이를 막기 위해 언어를 혼잡하게 하기까지 하셨다는 창세기 11장에 있는 기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창롱대학교에서는 지난 8일(토요일)에 특별한 행사가 있었습니다. 벌써 13년째 하고 있는 행사이긴 합니다만, 의미 있는 행사여서 소개를 하려고 합니다. 행사의 이름은 '加冠暨派遣典禮'입니다. 관의 씌워주고 파견을 하는 예식이라는 뜻이겠습니다. 이는 간호학과에서 주최하는 행사로, 입학 후 1년간 공부를 마친 1학년 학생들에게 간호사들이 쓰는 흰 모자를 씌워주고, 졸업을 앞둔 학생들을 사회로 파송하는 예식입니다. 그런 취지를 반영하듯 금년도 예식의 표어는 '치청 치청(起乘, 啓程. '오르라, 출발하라')'였습니다.
간호학과는 창롱대학교에서는 비교적 초창기에 설립된 학과로, 이웃 사랑과 섬김의 기독교 정신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분야여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과입니다. 1년간 공부를 한 학생들을 위해서는 좀 더 분명한 소명의식과 목적의식을 가지고 공부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차원에서 모자를 씌워주는 의식을 거행하고, 이제 사회로 나가서 일하게 될 학생들을 위해서는 자신들의 사명과 책임을 잊지 않고 좋은 간호사로 일할 수 있도록 선서를 하는 의식을 거행합니다. 지난 1년을 돌아보는 영상물에서 학생들은 내가 간호학과를 선택한 게 과연 잘한 일인지 확신이 없어 방황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는 걸 확신한다는 고백을 하고 있었고, 졸업생들을 위한 영상물에서는 학과의 모든 교수들이 진지하게 격려하고 복을 빌어주는 말들을 해주었습니다. 진지한 예식이었지만, 진행자들이 표범 의상을 입고 나와 진행을 하고, 재학생들이 노래와 춤 등 축하 공연도 준비해서 지루하지 않게 진행되었습니다. (축하 순서 가운데는 한국 원더걸스의 ‘Nobody’ 춤을 따라 추는 춤 공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교목실의 다른 목회자들과 함께 졸업생 대표들에게 축도를 하며 안수를 해주는 순서에 참여했습니다.
이전에는 여자들의 독무대였던 간호사 영역에서 이제는 남자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창롱대 간호학과의 경우도 거의 초창기부터 남학생 입학을 허용했다고 합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이번 졸업생의 경우 50명 가운데 3분의 1이 남학생이었고, 1학년의 경우는 절반이 남학생이었습니다. 모자를 씌우는 예식에서 남학생들의 경우는 모자를 씌우는 대신 가슴에 배지를 달아주었습니다. 졸업생들의 선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총장님과 회중 앞에서 삼가 진실하게 선서합니다. 일평생 ‘경건, 근면, 영예, 봉사, 관심’을 지표로 삼아 간호 업무를 수행하며, 절대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으며, 해가 되는 약을 복용하거나 사용하지 않으며, 환자와 그 가족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며, 간호 업무의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하며, 의료 전문요원들과 협조 협력하여 환자의 복리를 도모하겠습니다. 선서인 ○○○”
전 세계 의료인의 윤리적 틀이 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선서라고 생각합니다만, 그 선서가 죽은 문서가 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다짐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죽어 있는 좋은 법과 규정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가운데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도 들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세상의 혼란과 어둠은 가르침이 부족하거나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 가르침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실천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해답은 늘 우리 가까이 눈에 잘 띄는 데 있음을 우리는 망각하고 삽니다.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이 세상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길 기대하며,
2010년 5월 10일,
대만에서 구창완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