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한국에도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고, 태풍도 접근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대만에서 8월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이곳은 물론 지난 7월부터 최저기온이 30도를 맴돌며 더위가 계속되었습니다만, 7월 말경부터 제가 사는 남부지역에서는 거의 매일 한 차례씩 비가 내려서 최저기온을 30도 아래로 떨어뜨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선풍기에 의지해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아내는 소리에 민감한 편이라 에어컨을 켜면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 때문에 잠을 못자겠다고 하기 때문에(집 주인이 싸구려 에어컨을 달아놓아서 소리가 크다고 아내는 불평합니다만, 제 생각으로는 침실은 방이 크지 않기 때문에 고급 에어컨을 달아도 그 정도는 소리가 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잘 때 에어컨을 켤 생각은 거의 못합니다. 아내는 선풍기 바람도 싫어하기 때문에 선풍기를 틀고 잘 때도 15분 켜면 15분 끄는 식으로 시간 조절기에 선풍기를 연결해서 틀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름에는 땀을 흘리는 게 건강에 좋다고 스스로를 달래며 잠을 잘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도 7월 말 이후로는 비 덕분에 최저 기온이 27,8도 수준까지 떨어져서 아예 선풍기를 틀지 않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만으로 잠을 자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 온도면 열대야라 하겠지만, 이곳 온도에 적응이 된 탓인지 밤 기온 28도면 선선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아무튼 한 동안은 매일 번개가 요란스럽게 치며 한 차례씩 많은 비가 내려서 큰 수해가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만, 아직 그런 사태가 발생하지는 않았고, 금년 들어서는 아직 태풍도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방학이 시작된 후로 오전 근무가 끝나면 집에 돌아가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아내와 함께 시원한 학교 도서관에 와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저녁에 잠깐만 에어컨을 틀어도 하루를 넘길 수 있습니다. 피서 겸 에너지와 전기비 절약 전략이라고나 할까요.
어제(8일)는 작년 모라꼿 태풍이 대만 중, 남부에 50년 이래 최악이라는 큰 피해를 남긴 88수재-이곳에서는 태풍으로 인한 재난이라 해서 88펑자이(風災)라 부르고 있습니다.-가 있은 지 1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피해가 특별히 심했던 지역에서는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행사들이 있었고, 여러 정치인들이 피해를 입은 지역들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수재가 있은 지 1년이 지났습니다만, 아직도 새 거처가 완성되지 않아 임시 주거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고, 파손된 도로들 가운데 많은 부분이 여전히 제대로 복구되지 않은 상태에 있습니다. 왜 이렇게 복구가 더딜까 하고 생각해 보았는데, 정부에 돈이 없다는 게 한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만은 소위 아시아의 네 마리 용 가운데 하나로, 경제 수준이 한국과 비슷한 나라입니다. 홍콩이나 싱가포르는 도시이기 때문에 사실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기가 곤란한 편이어서, 네 마리 용 가운데는 한국과 대만이 상호 비교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은 대만이 한국보다 앞서 있었습니다만, 최근 들어 한국에 조금 밀리는 추세에 있어 대만 경제인들이 분발을 외치고 있습니다.
2009년도 국민총생산(GDP) 규모는 한국이 1조3,641억 달러로 유럽연합(EU)을 제외하고 세계 12위, 대만이 7,360억 달러로 19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구매능력 기준, IMF 자료). 1인당 명목 GDP는 EU 국가들을 포함해서 한국이 17,074달러로 세계 37위, 대만이 16,392달러로 세계 38위에 랭크되어 있고, 물가를 감안한 1인당 실질 GDP는 한국이 27,978달러로 세계 30위, 대만이 31,834달러로 세계 24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이런 수치들이 말해주고 있듯이 경제 규모나 소득 면에서 볼 때 한국과 대만은 비슷한 수준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 예산 규모를 보면 2009년 기준으로 한국이 2,322억 달러이고 대만은 509억 달러입니다. 국민총생산량과 비교해볼 때, 한국 정부의 1년 예산 규모가 국민총생산의 17% 수준인데 비해 대만 정부의 1년 예산 규모는 국민총생산의 7% 수준입니다. 이는 대만 정부가 한국 정부보다 세금을 적게 걷는다는 뜻이고, 대만은 한국에 비해 작은 정부를 추구하고 있다는 뜻도 됩니다. 세금을 적게 걷으니 물가도 한국보다 조금은 싼 것이 당연하고, 그래서 개인의 명목 소득은 한국이 높지만(37위 대 38위), 실질소득이 대만이 한국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납니다(30위 대 24위). 그러나 작은 정부라는 말은 힘이 적은 정부라는 말도 되겠고, 그 결과 공공투자 부문에서 정부가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도 세금을 많이 걷는 나라는 아닙니다. GDP 대비 정부의 1년 지출예산 규모를 보니 미국은 25%, 일본 39% 정도인데, 두 나라 모두 지출예산만큼 세금을 걷지 못해서 적자 규모가 크고,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노르웨이는 50% 이상, 스웨덴은 60% 이상이 되지만, 걷는 세금이 많아서 흑자를 내고 있습니다. 이런 선진국들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세금을 많이 걷는 편은 아닙니다. 그런데 비슷한 경제 수준에 있는 대만의 정부 예산 규모가 우리보다 훨씬 적으니 정부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요구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세금을 얼마나 걷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걷은 세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우리나라의 정부 예산은 규모 면에서뿐만 아니라 지출 구조, 특히 복지나 사회정의 차원에서 선진국에 훨씬 뒤떨어져 있다는 점이 여러 부분에서 제기되어 왔습니다.
빈번한 자연재해로 곳곳에서 도로가 유실되고 많은 사람들이 가옥과 전답을 잃는 피해를 입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제대로 복구, 지원하지 못하는 것도 정부가 힘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다시 말해서 돈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평상시 세금을 적게 내니 살기 좋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정부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니 폐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정부가 좁은 땅을 온통 뒤집어엎으려고 할 만큼 토목 공사에 너무 힘을 쏟아서 문제입니다만, 이곳의 경우는 마땅히 손을 대야 할 곳도 제 때에 손을 대지 못할 만큼 정부가 힘을 쓰지 못해서 문제입니다.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란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명암이 있게 마련인 듯싶습니다. 돌아다니다 보면 ‘아니 여기는 몇 달 전에도 저 모양이더니 여태도 그대로네. 복구되기 전에 다시 피해를 입게 생겼군’ 하고 말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특히 재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은 산악 도로들은 복구되기 전에 다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합니다.
아무튼 복구가 다 되기 전에 또 다시 홍수나 태풍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금년은 무사히 여름이 지나갔으면 하는 게 대만인들을 위한 제 기도 제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기도가 절실한 것은, 자연재해가 있으면 피해를 입는 것은 대부분 가난한 기층 민중이기 때문입니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힘없는 기층 민중이기 때문인 것도 정부가 복구를 서두르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긴 것 같은 방학 기간도 벌써 절반을 넘어섰고, 학교에서는 새 학년도 강의 계획서를 빨리 제출하라고 재촉하고 있습니다. 방학이 시작되기 전에는 이번 방학에는 정말 중국어 공부에 집중해서 실력을 올려놓으리라 맘먹었지만, 이래저래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고, 방학 절반이 지나간 지금 전혀 진보한 구석이 없어 마음이 초조해 집니다. 첫 번째 임기는 적응과 준비 기간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준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준비라 할 수 있는 언어 준비가 여전히 답보 상태에 있어 마음이 답답합니다. 저를 위해 기도하실 때 무엇보다도 언어 습득에 발전이 있도록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국내에도 주위에 관심을 기울이고 도움의 손길을 베풀어야 할 곳들이 널려 있지만, 그래도 더 널리 이곳 대만에까지 관심을 기울여 주시고, 이곳에 와 있는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부디 날로 더워지고 길어지는 여름 날씨에 건강을 잘 지켜 나가실 수 있기를 바라며,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2010년 8월 9일,
대만에서 구 창 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