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인도네시아에서 쓰나미에 이어 화산 폭발이 발생해 많은 희생자와 재산 손실을 낳고 있다는 소식이 최근 며칠간 계속 국제 뉴스를 통해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세계 곳곳에서 자연 재해의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왔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이곳 대만은 지진, 태풍, 화산폭발 등 종합적인 자연재해 위험지역입니다. 나이가 젊은 섬이라 토양이 안정되어 있지 않고, 태풍 발생지 가까이에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50년만의 가장 큰 태풍 피해라던 ‘88수재’를 입었던 탓이라 금년은 일찍부터 긴장을 했는데, 8월이 지나도록 태풍이 지나가질 않아 올 한 해는 무사히 넘기려는가보다 했는데, ‘혹시’ 하는 기대는 ‘역시’ 하는 실망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9월초에 발생한 11호 태풍 파나피(Fanapi. 凡那比. 미크로네시아에서 제출한 이름으로 섬 이름이라 합니다)이 19일 대만 남부지역을 강타하고 지나가면서 큰 피해를 입힌 것입니다. 작년에도 남부 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는데, 금년에도 남부지역이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특히 대만 제2의 도시인 가오슝에 19일 하루 동안 400밀리 이상의 내려 시내 여러 곳이 침수되었습니다. 대만으로서는 아주 큰 비라고 말할 수 없지만, 200밀리 비에 광화문 일대가 물에 잠겼다는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엄청난 양의 비가 내렸습니다. 그러니 시내 곳곳이 침수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한국 연평균 강수량에 육박하는 1천 밀리의 비가 내린 주변에 있는 현들보다는 적은 양의 비였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내려 금년에도 ‘919수재’라는 신조어를 남겼습니다.
현재 대만은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모두 다섯 지역에서 시와 주변의 현을 합쳐서 우리나라의 특별시 같은 대규모 행정단위를 만드는데, 새로운 행정단위의 장을 뽑는 선거가 11월 27일에 있습니다. 가오슝 시와 현을 합쳐서 만드는 대(大) 가오슝 시의 시장으로는 야당인 민진당 출신 여성인 현 가오슝 시장 천 쥐(陳菊) 씨가 여론조사에서 단연 앞장을 서고 있었는데, 919 수재로 불만을 품은 시민들이 생겨 지지도가 많이 하락을 했습니다. 당락에 영향을 미칠 수준은 아니지만, 그만큼 가오슝 시의 수해 피해는 작지 않았습니다.
919수재로 금년 비 피해는 끝났으면 했습니다만, 10월 들어 또 한 차례 비 피해를 입고 말았습니다. 주범은 제13호 태풍 메기(Megi. 梅姬. 한국에서 제출한 이름입니다)였습니다. 메기는 파나피보다 훨씬 강한 태풍이었지만, 다행히 대만을 관통하지 않고 남쪽 해안을 거쳐 중국으로 넘어갔습니다. 관통하지는 않았지만 인근 남부 지역에 또 많은 비가 내리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뜻밖에도 이번에는 훨씬 더 멀리 떨어진 북부와 북동부 지역에 많은 비를 뿌리고 지나갔습니다. 북동부 지역에 있는 이란 현에는 10월 20일 전후로 1천 밀리가 넘는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동부 해안은 높은 산들이 바다 가까이에 있어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이로 인해 급류에 토사가 쓸려내려 여러 마을이 매몰되었습니다. 특히 뉴스거리가 된 것은 중국에서 온 관광객들을 태운 버스가 급류에 휩쓸려 낭떠러지로 떨어져 20여명의 사람들이 실종된 사건이었습니다.
동부 해안에는 화롄(花蓮)이라고 하는 유명한 관광지로부터 수아오(蘇澳)라는 곳까지 이어지는 소위 ‘수화 공로(蘇花公路)’가 있습니다. 낭떠러지 아래로 동쪽의 태평양이 시원스레 내려다보이는 도로여서 경관이 좋기로 유명한 도로인데, 문제는 낭떠러지에 건설된 도로라 폭이 좁고 위험하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태풍이 이 지역을 지나가던 21일에도 관광객들을 태운 버스들이 이곳을 지나갔습니다. 그러다 한 곳에서 산으로부터 쏟아져내려온 토사에 길이 무너지면서 마침 그곳을 지나던 관광버스 한 대가 토사와 함께 바다 쪽으로 추락한 것입니다. 하필이면 그 버스는 중국에서 온 관광객 20여 명을 태운 버스였습니다.
사고가 난 후로도 날씨가 계속 좋지 않았고, 워낙 경사가 가파른 곳이어서 실종된 사람들을 찾는데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보도를 보면 실종된 사람들의 유품이 발견된 이야기만 나오고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중국에서 날아온 실종자 가족들의 DNA를 확인하고 있다는 보도로 미루어 보건대, 시간도 많이 지났고 사건 현장의 상황도 나빠서 발견된 시신들의 상태가 아주 열악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대만에서 생활하면서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입니다만, 한국은 정말 자연적으로 복 받은 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중국, 일본, 대만에서는 여러 차례 큰 지진들이 있었지만 가운데 있는 한국은 그 동안 조용했습니다. 태풍도 대체로 한국을 사이에 두고 중국이나 일본으로 꺾어져서 한국은 가장 태풍 피해가 적은 편입니다. 연 강수량이 세계 평균을 넘어서서 물이 부족하지 않은 편이고(그러나 개인별 강수량은 세계 평균을 훨씬 밑돌아서 물 문제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절대 방심할 수 없는 처지라고 합니다), 비록 여름에 집중적으로 비가 내리긴 하지만 크게 피해를 입을 정도는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분명한 네 계절의 맛과 멋을 누리며 살 수 있는 나라도 흔치 않습니다. 겨울이 있어 한 동안 벌레들을 잠재워주기 때문에 곤충들의 시달림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지낼 수 있고, 겨울이 전염병 확산의 맥을 끊어주기 때문에 전염병이 돌아도 치명적인 피해를 피할 수 있습니다. 이래저래 정말 복 받은 땅에서 살아왔고 또 지금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방심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한국도 자연재해에서 안전지대가 아니다. 백두산이 곧 폭발할지 모른다. 폭발한다면 그 위력은 금년 4월 유럽 전역에 항공 대란을 가져왔던 아이슬랜드의 화산폭발보다 훨씬 클 수 있다’는 기사가 최근 심심찮게 인터넷에 올라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아직까지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최근 한국이 세계무대에서 조금씩 이름을 내면서 한국인들이 목을 곧게 세우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이만큼 은혜를 입고 지내면서 이 정도의 발전밖에 이루지 못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목을 곧게 세우기보다는 조금은 부끄러워하고, 겸손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정치가 책임을 져야 할 부분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대만의 또 다른 문제는 주권 문제입니다. 중국이 끈질기게 대만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0월 23일 개막한 도쿄국제영화제(TIFF)에서는 일본 측이 대만 대표단의 명칭을 '대만(台灣. Taiwan)'으로 했다 해서 중국대표단이 영화제 불참을 선언하며 개막식에서 집단 퇴장하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중국 대표단은 대만 대표단의 명칭을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반영해서 '중국 대만(中國台灣. Chinese Taiwan)'으로 해 줄 것을 요구했는데,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앞으로는 도쿄국제영화제에 참가하지 않겠다며 퇴장을 했다는 것입니다.
대만 대표단은 지금껏 ‘대만’이라는 명칭으로 영화제에 참여했다고 하는데, 중국은 이제 비정치적 영역에서까지 대만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비록 독도 문제 때문에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기는 하지만, 힘이 커진 중국이 다른 강대국들의 본을 따라 제국주의적인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해서 최근 일본과 중국 사이에 댜오위다오(酌魚島) 섬을 놓고 분쟁이 벌어졌을 때 중국만을 응원하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이렇게 중국에 위협당하고 있는 대만에 있다 보니 중국에 대해 더 경계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미국이 대만에 무기도 팔면서 아직은 대만과 연결된 끈을 붙잡고 있긴 하지만, 그게 무슨 의리나 정에 근거한 게 아니기 때문에 언제라도 놓아버릴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대만은 대만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중국에 합병되고 말 것입니다. 학생들과 이야기해 보아도 대만인들은 아직 공산당이 독재를 하고 있고, 전체적 생활수준에서 대만에 훨씬 뒤떨어지는 중국의 일부가 되는 걸 원하지 않는 정서입니다.
그러나 선교사의 눈으로 볼 때 대만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도교의 다신교 숭배입니다. 도교의 교조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간주되는 노자의 도가 사상은 가르쳐지지도 않고, 옥황상제니 현천상제(북극성)이니 하는 신들과 관우, 마조 등 죽은 사람들의 혼령에 대한 숭배만 난무하는 대만 도교를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도가의 무위 사상은 찾아보기 힘들고, 오로지 현실적 욕구 충족을 위해 매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노자가 살아서 본다면 분명히 도교 교조 이름에서 자기 이름을 빼 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불교도 마찬가지고 기독교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교회는 과연 예수 그리스도 보시기에 당신의 가르침을 제대로 보여주고 실천하는 교회일까요?)
아무튼 전국에 걸쳐 수천 개에 달하는 궁(도교 사원), 그래서 한국에서 눈만 들면 보이는 게 십자가이듯 대만에서는 눈만 들면 보이게는 궁인 상황에서, 궁들이 연중 쉬지 않고 여러 가지 구실로 아침 6시부터 밤 11시까지, 때로는 그 이후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동네를 돌며 요란스럽게 터뜨리는 폭죽 소리를 들을 때면 한편으로는 다수자 종교의 횡포에 짜증이 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헛된 것을 섬기는데 그토록 열정을 쏟고 있는 모습들이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수면을 방해하며 소음을 내도 항의하기 어렵습니다. 좋은 의도에서 악귀를 쫓아주려고 그러는데 왜 항의를 하느냐고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다수자 종교를 자부하는 한국 교회도 한국 사회에서 그런 횡포자의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지는 않은지 조심스런 반성을 해보게 됩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몇몇 기독교 신자들이 봉은사 내에서 ‘땅 밟기’를 해서 불교계의 분노를 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땅 밟기’가 신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겠다는 열정이 순수하고 바른 것이라 하더라도,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 앞에서, 그것도 그들이 신성하게 생각하는 장소에서 ‘한 판 붙어보자’는 듯 도전적인 자세로 ‘땅 밟기’를 하는 것은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지혜로운 행동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전투적인 행동은 분노와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자칫 다른 사람이 그리스도에게로 인도되는 길을 막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건 ‘작은 자 하나를 실족하게 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제국주의 시대에 서구의 교회는 힘으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토속종교와 혼합된 변형된 기독교를 낳았고, 제국주의의 강압이 사라진 지금 기독교 신앙은 주변으로 밀려나고 사람들은 다시 토속신앙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그것이 라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 현실입니다. 그런 곳에서 기독교는 더 이상 신선한 매력도 호소력도 없는 종교일 뿐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나중 형편이 처음 형편보다 못한’ 상황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욕심이 뒤섞인 열정으로 일을 이루려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를 거스르는 행동이고, 그 결과는 분명 좋지 않습니다.
염려했던 창롱정신 강의는 의외로 순조로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학생 수가 많은 것을 감안해서 학교에서 조교도 붙여주었고, 번역과 대학원생들도 성실하게 통역을 준비해서 강의를 돕고 있습니다. 학생들도 다른 학기보다 잘 따라와 주고 있는 편입니다. 한국어 강의는 한 반에 30명 정도씩 모두 60여 명이 수강하고 있는데, 한국어는 정말 가르치기 힘들고 배우기 힘든 언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한국에 대한 관심 때문에 수강신청을 한 학생들임에도 힘들어 합니다. 제 강의 실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자책을 자꾸 하게 됩니다. 영어 동아리 모임 학생들과도 이제는 많이 가까워졌습니다. 영어를 되도록 더 많이 사용하도록 새 프로그램도 도입하고, 격려도 하고 있고 있습니다. 회원들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인 많은 분들의 기도 덕분임을 기억하고, 그 모든 사랑에 감사를 드리며,
2010년 11월 2일
대만에서 구 * *
어제는 영어 동아리에서
아프리카 말라위 출신 신학과 교수인 어거스틴 목사를 초대해 강의를 들었습니다.
동아리 부회장을 맡고 있는 학생이 번역과 통역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