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대만에서의 세 번째 여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대만의 계절 변화는 한국처럼 뚜렷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4계절이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대만에는 아주 더운 여름과 조금 덜 더운 여름의 두 계절이 있을 뿐이라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면, 학생들은 별로 동의하지 않는 눈치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계절이 있다고 보는 거겠지요.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도 대만에는 네 계절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계절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봄은 기온이 몇 도부터 몇 도까지인 계절을 말하고, 여름은 몇 도부터 몇 도까지인 계절을 말한다는 식으로 어떤 절대적인 수치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계절의 변화란 절대적인 것이라기보다 상대적인 것인 듯합니다. 평균 기온이 40도이던 날씨에서 평균 기온이 20도인 날씨로 바뀌었다면 계절이 여름에서 겨울로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사람은 꼭 영하의 날씨에서만 얼어 죽는 게 아니라 영상 10도의 기온에서도 동사를 할 수 있다고 하니, 계절의 변화는 역시 상대적인 개념인 듯합니다.
아무튼 세 번째 여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만, 제가 대만에서 겪은 세 번의 여름은 제각각이었습니다. 첫 해에는 추운 지방에서 온 사람에게 더운 맛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여름이 길고 덥더니, 지난해에는 유난히 태풍이 많이 지나가면서 태풍의 위력을 과시했습니다. 그러더니 마침내 50년 만에 온 강한 태풍이라는 모라꼿이 제대로 태풍의 맛을 보여주고 지나갔습니다. 태풍이 불 때면 강한 바람 때문에 이중 창문이 아닌 경우 굳게 닫은 창문 틈으로도 방 안으로 빗물이 새 들어와 자다 말고 일어나 비닐로 창틈 사이사이를 틀어막으며 비바람과 씨름을 하곤 했는데, 금년에도 태풍 때문에 고생을 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더니, 금년에는 아직까지 대만 섬을 직통하고 지나가는 태풍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금년에는 오히려 태풍의 진원지에서는 멀리 떨어진 한국이 태풍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대신 금년에는 거의 매일 한 차례씩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덕분에 비교적 선선하게 여름을 지낼 수 있었습니다. 오전에는 해가 쨍하고 떴다가 오후가 되면 열대 지방에 스콜이 내리듯이 비가 내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거의 매번 요란한 천둥과 번개와 함께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비가 내렸습니다. 정말 천둥소리와 번개 치는 모습을 질리도록 듣고 본 여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왜 이렇게 해마다 여름의 모습이 다를까, 혹시 이것도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의 불안정에서 비롯된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정말 그렇다면 이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구 온난화 현상이 지속된다면 60년 후 한반도에서 순천의 해안 늪지와 제주의 용머리 해안과 같은 여러 절경들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될 것이라는 한 주간지의 보도도 있었습니다만,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지는 것들이 있는 것도 서글픈 일이지만, 환경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은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변화의 과정 속에서 기상과 환경이 점점 더 예측 불가능하게 된다면 우리는 대처 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그로 인해 피해는 더 심각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격이 괴팍한 사람을 대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조변석개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을 대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성질이 고약해도 일정하게 고약하다면 개성이려니 하고 참아줄 수도 있고 거기에 대처하는 방안도 찾아볼 수 있지만, 이랬다저랬다 하는 성격은 참아내기도 힘들고 대처할 방안도 찾기가 어렵습니다. 우유부단한 성격이 다른 사람을 제일 짜증나는 하는 성격 가운데 하나이고, 조울증에 걸린 사람의 장단을 맞춰 주는 게 다른 사람의 장단을 맞추는 일 가운데 제일 어려운 일의 하나이듯이, 해마다 날씨가 변한다면 우리는 심각한 혼란과 고통에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되면, 우리 기독교인들이 조금은 상투적으로 하는 말대로, 기도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게 될 지도 모릅니다. 조금은 종말론적인 표현이 되겠지만,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아직 시간이 있는 동안 우리는 뭔가 중대한 변화를 가져와야 할 것입니다. 자연에 일정한 법칙이 필요하듯이, 일관성은 정치인들에게뿐 아니라 신앙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새 학년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어 강의에는 두 반에 70명 가까운 학생들이 등록을 했습니다. 몇 명이 끝까지 남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 동안 한국어 능력시험은 타이베이에서만 치러졌는데, 이번 가을부터는 응시자들의 편의를 위해 남쪽 가오슝에서도 시험을 치르기로 했습니다. 두 곳에서 시험을 실시해도 될 만큼 응시자들의 수가 늘었기 때문입니다.
대만에서의 한국에 대한 인식 제고의 일등 공신은 삼성의 휴대폰이나 LG의 텔레비전 수상기나 현대의 자동차도 아니고 한국 드라마들입니다. (가요계의 경우에도 슈퍼주니어나 원더걸스 등의 그룹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긴 있지만, 드라마 분야의 활약에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닙니다.)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했어도 한족의 문화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중국이 여전히 한족(漢族)의 나라로 남아 있는 데서 볼 수 있듯이, 문화의 힘은 무력이나 기술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도 서양 여러 나라들로부터 문화적으로 점령을 당하지 않도록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문화적 폐쇄성을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문화라는 소프드웨어의 중요성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여러 나라와 민족들의 문화를 살펴보면서 느끼는 점입니다만, 교과서에서 한민족의 특징은 ‘은근과 끈기’라고 배웠던 것처럼, 한국의 문화는 크고 화려하거나 강렬하기보다는 작고 소박하고 조용한 편입니다. 그래서 더 소중하고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 본질과 가치를 지켜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입생 필수과목인 창롱정신 강의는 두 학과 신입생들을 통합해서 120여명의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로서는 처음 해보는 큰 강의실 강의라 걱정입니다. 그것도 통역을 두고 영어로 진행하는 강의라 얼마나 효율적으로 학생들을 통솔하며 내용을 전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됩니다. 이전의 경험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필수 과목이라 어쩔 수 없이 듣는 강의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참여 열의는 높을 수가 없습니다. 거기다 잘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 강의이니 학생들이 느낄 고충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일종의 도전을 주는 의미에서라도 영어 강의는 필요하고 의미가 있다고 말하지만, 제가 그 악역을 맡게 되었다는 게 그리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그렇지만 중국어를 배워오지 못한 죄로 그 악역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저 자신이 원래 재미있게 말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 인기 강사가 되는 건 애초부터 꿈도 꾸지 않았지만, 학생들의 불평과 불만을 사는 강사는 되지 말아야 할 터인데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학생들이 잘 감내하며 따라 주기를 기도드릴 뿐입니다.
이번 학기부터 교목실이 관리하는 네 개의 학생 동아리 모임 가운데 하나인 영어 동아리의 지도 교사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이름은 영어 동아리(英文團契. English Fellowship)지만, 거의 대부분 중국어로 진행하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을 한 적이 있는데, 이번 학기부터 제가 지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거의 대부분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어서 지도 교사가 할 일이 많지는 않지만, 기독교 신앙 고취라는 공동의 목표 외에 영어 동아리 고유의 목적인 영어 능력 고양을 위해 부단히 격려하는 게 제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답답한 일들이 말끔히 사라지는 추석이 되기를 기도드리며,
2010년 9월 13일,
대만에서 구창완 인사를 드립니다.
* 전통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컨팅 청소년활동센터 건물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