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이 땅 모든 사람들에게 참 평화를 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일을 기념하고 묵상하는 대림절과 성탄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11월 한 달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가 얼마나 취약하고 위태로운 것인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하고, 우리가 평화에 대해 얼마나 안일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는가를 절실히 느끼게 해주는 한 달이었습니다. 첫 경고의 신호는 11월 중반 이곳 대만에서 나타났습니다. 말 못하는 것 빼고는 그런대로 대만 생활에 적응을 했다고 생각을 하고,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대만 사람이 됐다고 봐도 되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을 즈음 느닷없이 반한운동이 벌어진 것입니다.
아시는 대로 문제는 11월 17일에 벌어진 아시안 게임 태권도 여자 49kg급 예선에서 불거졌습니다. 대만 사람들이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던 양수쥔(楊淑君) 선수가 베트남 선수와의 예선전에서 경기 종료 12초를 남기고 실격패하여 탈락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실격패 이유는 양 선수가 불법 센서를 부착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날 양 선수는 경기 전 검사에서는 부착되어 있지 않던 센서를 발뒤꿈치에 부착하고 경기에 임했습니다. 경기가 시작되고도 심판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는데, 경기가 조금 진행된 후 본부석에서 그걸 발견하고 경기를 중단시켰습니다. 최종적인 실격 판정을 내릴 때까지 경기를 계속 중단시켰더라면 문제가 커지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진행부에서는 양 선수가 불법 부착된 센서를 제거하고 나오자 다시 경기를 진행시켰고, 경기는 9대 0으로 대만 선수가 크게 앞선 가운데 종료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기 종료 12초전에 본부석에서 임원이 나와 다시 경기를 중단시키고 실격패를 선언한 것입니다. 이때 경기를 종료시킨 임원은 홍성천이라는 분으로, 그는 아시아태권도연맹 부회장이었습니다.
그때 대만에서는 마치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예견하고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곧바로 한국과 중국이 짜고서 의도적으로 대만 선수를 탈락시켰다는 음모론을 내세웠습니다. 설령 음모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 최종적인 수혜자는 그 체급에서 금메달을 딴 중국이고, 따라서 음모가 시작되었다면 그 시발점은 중국이라고 봐야 할 텐데, 중국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없이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 반대운동이 벌어졌습니다. 곧바로 한국 라면을 짓밟으며 분노를 터뜨리는 한 청년의 동영상이 한 시간에도 몇 번씩 모든 텔레비전 채널에서 방영되었고, 얼마 후에는 태극기를 불태우는 장면도 방영되었습니다. 한국인에게는 물건을 팔지 않는다는 글을 써 붙인 상점이 소개되고, 한국산 모니터를 때려 부수는 장면도 방영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다음 날 18일 대만 체육위 부위원장 천셴중(陳顯宗) 씨가 다소 억울한 판정이 있더라도 가만히 있는 게 체육계의 관례라는 식의 말을 했다가 맹공격을 받아 사과를 하는 사태도 빚어졌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에는 타이베이의 한국학교에 누군가 계란을 던지는 사건도 발생을 했습니다. 정말 사태가 어떻게 악화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태권도는 대만에서 아주 인기 있는 스포츠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것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대만에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선사한 종목이 바로 태권도였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때 여자 49kg급에서 천스신(陳詩欣) 선수가 금메달 획득하여 태권도 붐이 일었고 “열혈청춘(熱血靑春)”이라는 제목의 태권도 드라마가 제작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도 태권도는 대만이 금메달을 노리는 주요 종목 가운데 하나였는데, 초반에 이런 사태가 빚어지니 사람들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민족 문제로 비화시킨 것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대만 사람들이 이렇게 신속하게 반한운동을 벌인 데는 그 동안 수차례 국제 태권도 대회에서 한국 때문에 대만이 불공정한 판결을 받아 메달을 놓친 사례들이 있다는 생각이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입니다. 그 점에서 한국은 결백하다고 말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태권도가 국제 스포츠가 되기는 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종주국으로서의 세계 태권도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만 체육위 부위원장의 말처럼 용인될 수 있는 정도의 텃세라고 생각합니다. 설령 현저한 부당행위가 있었다 하더라도 스포츠 계의 일을 국가나 민족 차원의 일로 비화시키는 것은 국제적 고립의 위기에 있는 대만에게 결코 현명한 행동은 아닙니다.
사태를 악화시킨 데에는 대만 언론의 책임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텔레비전 방송들이 주관을 가지고 논평을 하고 여론을 주도하는 자세로 사태를 보도하기보다 인터넷에 올라온 소수 사람의 극단적 행동을 매 시간 방영하면서 일부 사람들의 거친 감정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만의 텔레비전 방송은 한국에 비해 유독 재방송이 많습니다. 뉴스야 원래 재방송이 많을 수밖에 없긴 하지만, 교양 프로그램 가운데는 몇 년 동안 계속 되풀이해서 방송되는 것이 있고, 드라마는 물론 쇼 프로그램까지도 십 년은 족히 지나 보이는 옛것들을 재방송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뉴스의 경우 자체적으로 취재하고 제작하는 소위 ‘독점(獨家)’ 내용보다 뉴스 공급원들이 제공하는 소재를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아 채널들의 특성이 살아나지 않고, 2,30분 정도 분량의 뉴스가 하루에 몇 번씩이고 재방송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객관적인 논평도 없이 반한운동 동영상을 계속 내보내니, 마치 대만 전체가 반한 물결에 휩쓸린 것 같은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을 보는 시청자들도 자신도 모르게 자극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기다 11월 27일에 있을 5대 직할시 시장 선거를 앞두고, 야당에서는 정부의 유약한 대 중국정책과 외교정책이 이런 일을 불러왔다며 여당 공격 소재로 이 사건을 이용하고, 여당에서는 표를 잃지 않으려고 국민들의 정서에 영합하느라 반한 감정에 편승을 하고, 이래저래 태권도 판정 사건은 정치적 이용거리가 되어 반한 감정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비록 뒤늦게 실격패가 선언되기는 했지만, 검사를 거치지 않은 불법 부착물을 붙이고 나온 사실만으로 얼마든지 실격패가 선언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이 없었고, 대만 선수들 가운데 왜 유독 그 선수만 예전 장비를 착용하고 경기에 임했는지에 대한 질문이나 설명도 한 마디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로지 경기를 중단시킨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사실만 들어 한국인을 전체적으로 비난했습니다.
사태가 너무 험악해지는 경향이 있자 며칠이 지난 후 정부에서는 국민들이 냉정하게 행동할 것을 당부하는 발언을 했지만 분위기는 가라않지 않았습니다. 분위기가 다소 거칠어보이자 정부에서는 한국인 보호에도 신경을 썼는데, 제가 살고 있는 시골에도 경찰서에서 사람이 와서 무슨 일이 없는지 살피고, 만약 좋지 않은 일이 생기거든 곧 연락을 하라며 명함을 주고 가기도 했습니다. 학교에서도 강의 시간에 별 일 없었는지 물어왔고, 교목실 식구들도 나를 안심시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물론 교목실 식구들이 말한 대로 대만 사람들이 그렇게 거친 사람들이 아닌 것은 사실이지만, 마음속으로는 어떤 편견이나 오해를 품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조별 발표를 시키는 순서가 있는데, 지난주는 마침 ‘대만이 직면한 문제들’라는 주제를 다루는 순서였습니다. 매주 두 조가 발표를 하는데, 그 중 한 조가 대만이 국제사회에서 당하고 있는 억울한 일들의 사례로 이번 태권도 판정시비 사건을 언급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그 사건이 그 주제에 대한 적절한 사례가 될 수 없는 이유들을 설명하고, 현저한 차별과 박해의 사례로 다른 사건 하나를 이야기해주었습니다만, 학생들이 과연 그 설명을 정서적으로 수용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번에 돌출된 반한운동은 그 동안 자신들보다는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한국이 자신들을 앞질러 나가고 있는데서 비롯된 경쟁심이나 질투심의 발로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름이 훌쩍 지나도록 일방적으로 반한운동 여론에 편승했던 텔레비전 방송에서 어제 처음으로 현실적으로 한국은 우리가 무시할 수 있는 국가가 아니므로 냉정하게 사태에 대처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는 걸 들었습니다.
아무튼 이 일을 겪으며 나는 역시 이방인이구나 하는 걸 절감하게 되었고, 민족을 뛰어넘어 보편적 인류애를 나눈다고 하는 것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든 일인가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만에서 이렇게 반한운동으로 인해 불편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국내에서는 연평도 사건으로 인해 어수선한 소식들이 들려왔습니다. 당연히 이곳에서도 매일 주요 국제뉴스의 하나로 소개되었습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한국에 전쟁이 날 것 같은데 귀국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어왔습니다.
늘 그렇습니다만, 국내에서보다는 국외에서 듣는 소식이 늘 더 긴박하게 들립니다. 이번 사태는 물론 이전의 도발사태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만, 해외에 보도되는 뉴스는 언론의 선정주의와 상업주의 때문에 조금은 더 과장되어 보도되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우리가 너무 전쟁 불감증, 위험 불감증에 걸려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한반도에서 절대로 전쟁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고 스스로 자기 최면을 걸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무튼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은 어디까지나 우리 자신의 감정일 뿐, 우리의 감정이나 기대가 현실의 안전을 지켜주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전쟁이 일어날 수 없는 객관적 조건이라는 것이 과연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우리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 많은 전쟁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던 사실에 감사해야 할 것이고, 우리가 바라는 대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되지 않도록 절대자의 도움을 빌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 11월 27일, 대만에서는 시와 현을 묶어서 직할시로 만들고 그 시장을 뽑는 선거가 다섯 곳에서 치러졌습니다. 그 결과 여당에서 세 곳, 야당에서 두 곳에서 시장 직을 차지했습니다. 두 당 모두 더 큰 승리를 외쳤었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예상된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전체 득표수에서는 야당이 여당을 앞질러 다소 의외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북쪽의 두 곳은 워낙 여당이 우세한 곳이고, 남쪽의 두 곳은 야당의 표밭이라 할 수 있는 곳이긴 하지만, 북쪽에서 야당이 의외로 많은 표를 얻었고, 중부의 한 곳에서 접전을 벌여 전체 득표에서는 야당이 여당을 앞지른 것입니다. 이는 2년 후에 있을 대통령(총통) 선거에서 여당이 고전할 수 있다는 예상을 낳고 있습니다. 이런 여야의 백중세는 활발한 토론과 경쟁을 통해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어느 한 쪽도 자신의 철학과 논리를 제대로 펴보지 못함으로써 사회를 대립과 대결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과연 무엇이 좋은 일인지 우리 인생이 알 수 있는 건 너무도 없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각자 자기의 지식과 판단과 소신과 신념대로 행동할 뿐이고, 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의 판단과 신념을 절대화하는데 있습니다.
오늘의 현실을 볼 때, 이번 대림절은 평화의 임금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 그 어느 해보다 간절히 마음 모아 평화를 간구해야 할 때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평화를 간구하며 예수 그리스도께 기도드릴 때 우리는 그분에게서 무슨 교훈과 메시지를 들어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과연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 들으려고 하는 것이긴 한 걸까요? 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데 있고, 해답은 우리 가까이에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 가운데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보려 하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을 뿐입니다.
이 대림절에 예수께서 우리 모두의 마음과 눈과 귀를 열어주시길 기도드립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함께 평화를 누릴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새해에는 서로 평화의 소식을 나눌 수 있기를 기도드리며,
지난 한 해 동안 베풀어 주신 사랑과 지원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2010년 대림 절기에
대만에서 구창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