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우리를 위해 고난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문안을 드립니다.
지난 3월 9일 2011년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 일본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문에 금년도 사순절은 전 세계가 일본 대지진에 대한 소식과 그 여파, 특히 원자력 방사선 피해에 대한 염려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일본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온 방사선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한국에서도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들려왔습니다. 우리가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단지 경제나 국제정치 면에서뿐만 아니라 재난 속에서도 확인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지금 원자력 발전소는 전 세계에 분포해 있습니다. 엄청난 위험요소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칠 줄 모르는 에너지에 대한 욕구 때문에 모든 나라들은 그래도 핵에너지가 현재 취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한 에너지원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원자력 발전소를 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진으로부터는 비교적 안전한 지역이긴 하지만, 세계에서 원자력 발전소 밀집도가 가장 높은 나라라고 하니, 만약의 사태가 발생한다면 그 피해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지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민족의 생존 자체가 좌우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발해가 백두산 폭발 때문에 하루아침에 망하게 되었다는 가설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일본의 지진과 해일, 그리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이야기는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피해 규모도 아직 나오지 않고 있고, 방사능 피해 상황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모든 사태는 이제 장기전으로 들어가는 것 같고, 피해를 입은 보통 사람들의 고통은 길어질 듯합니다.
이곳 대만은 나라 전체가 지진대와 상관이 있기 때문에 사실 일본 이야기를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닙니다. 금년에도 지난 20일에 금년 들어 가장 강한 강도 5.9의 지진이 동부 해안에서 발생해서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도 건물이 흔들리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건설 중인 것을 포함해서 대만에는 모두 4개의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데, 모두 단층 지대에 지어져 있다고 합니다. 처음 두 개는 그런 줄 모르고 건설했고, 세 번째 것은 알면서도 무시하고 지었고, 네 번째 것은 비활성단층 지역이기 때문에 신경 안 쓰고 짓고 있다고 합니다. 비활성단층을 피해가려면 대만에는 원자력 발전소를 지을 장소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나라들이 불나방처럼 에너지에 대한 욕구 때문에 에너지의 불 속으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모두들 최대한 안전문제를 고려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번 지진을 통해서도 보게 되었듯이 인간은 과연 스스로 어느 정도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일까요?
무한정으로 에너지를 사용하려고 하는 자신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는 조금도 변화를 가져오려고 하지 않고, 나라들마다 경제성장을 이유로 에너지 사용 경쟁을 벌이고, 에너지 확보를 위해 침략과 전쟁까지 마다하지 않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최후의 심판이 불의 심판이 된다면, 그것은 인간 스스로 자초한 것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래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해 묵상하고, 특히 마지막 주간인 고난주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 묵상하는 절기입니다만, 지진으로 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금년 사순절에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고난이라는 주제를 더 생각하게 됩니다.
일본에 대지진이 발생한 건 우상숭배 때문이라는 한 교계 원로의 발언은 한 개인의 발언이라기보다 고난의 문제를 대하는 한국 기독교인들의 태도와 수준을 대변해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한국 개신교회 강단에서는 예수를 안 믿는 나라들은 모두 가난하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발설되어 왔습니다. 적지 않은 신자들이 그 말에 ‘아멘’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들도 그런 말을 전도용 구호의 하나로 퍼뜨리고 있습니다. 사실 우상숭배 때문에 일본에 대지진이 발생했다는 말도 같은 맥락 위에 있습니다.
‘모든 고난은 개별적인 죄 때문에 오는 것인가’ 라는 신학적인 질문은 차치하고라도, 과연 예수를 안 믿는 나라들은 다 가난한가, 예수를 믿는다는 나라들은 과연 다 제대로 예수를 믿고 있는 나라인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재난 속에서도 늘 예외가 되는가, 예수 믿어서 부유한 나라 사람들은 예수 안 믿어 가난한 나라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있고 하느님의 피조 세계를 하느님의 뜻에 맞게 잘 관리하고 있는가 등등 객관적인 사실 여부를 따져 보아야 할 질문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한국 개신교인들이 성실한 검토나 진지한 고찰 없이 고통을 개별적인 죄의 결과로 보고 정죄하는 의견에 동조하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사람을 보고 대뜸 그게 누구 죄 때문에 일어난 일이냐부터 따졌던 제자들의 태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요9:2). 그러나 예수님의 그들의 논리에 동조하지 않으시고 전혀 다른 태도로 사태에 접근하셨습니다. 그리고 소경을 치유하시는 일에 집중하셨습니다. 욥기가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고난에는 많은 원인과 동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고난에는 하느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고난당한 사람을 단순히 죄인으로 정죄하는 것은 옳지 못하고, 고난을 단순히 저주와 불행으로만 간주하는 것도 신앙적으로 바른 해석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신앙은 가난과 부유, 건강과 장애, 평안과 수고, 이 모든 차원을 뛰어넘는 영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은 종종 물질적, 육체적, 세속적 차원에 갇혀 있곤 합니다.
물론 그 발언을 했던 분이 나중에 해명한 것처럼 그 의도는 순수하고 좋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분 발언대로 고난을 통해 사람들이 하느님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런 발언을 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또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은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마음이요 소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먼저 알고 믿게 되었다고 해서 아직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을 그렇게 함부로 대하고 몰아세워도 좋은 것일까요?
한국사회가 전체적으로 그렇듯이, 한국 기독교인들도 조금은 거칠고 오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는 말씀이 경제적으로 혹은 교회적으로 남다른 고속 성장을 이룩했다고 자부하는 우리를 향한 말씀은 아닐까요?
4월 4일은 대만의 어린이 날(공식명칭은 婦幼節로, 3월 8일 부녀절과 4월 4일 어린이날을 합친 것입니다)이고, 4월 5일은 청명절로 공휴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한식날에 성묘를 하듯이 이곳에서는 청명절에 성묘를 합니다. 그래서 주말부터 5일간 연휴가 됩니다. 이번 학기에는 새 학기가 시작되고 마음의 여유가 없이 지냈습니다. 일이 더 많아진 것도 아닌데 왠지 분주했습니다. 그래서 컴퓨터 안 들여다보고 쉬는 시간을 가질까 합니다. 지난겨울은 40년 이래로 가장 긴 겨울이었다고 하는데, 이제 막 더워지려고 합니다. 더워지기 전에 좋은 계절의 끝자락을 조금 즐겨볼 생각입니다.
대지진의 피해가 더 확산되지 않기를 바라고,
이 일을 계기로 사람들이 삶의 방식에 조금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를 기도드리며,
2011년 4월 2일
대만에서 구 * *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