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ne Welt/타이완 이야기

11-03-02

행복나무 Glücksbaum 2011. 3. 2. 22:54

샬롬!

 

 

 지난 번 소식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2월 3일은 설날이었고, 대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일주일 혹은 그 이상 설 연휴(春節)를 보냈습니다. 설 연휴를 앞두고 대만을 찾은 특별한 중국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천 광뱌오(陳光標). 1968년 생으로 소개되어 있는 젊은 사업가입니다. 현재 한 자원재생 회사(江蘇黃埔再生資源利用公司)의 이사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자수성가한 기업인으로, 그가 특별히 주목을 끄는 것은 그가 중국에서 가장 많은 돈을 자선사업에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30세가 되던 1998년부터 자선사업을 시작해서 큰 재난이 있을 때마다 어김없이 헌금을 해서 2010년 현재 모두 14억 위안(2,300억 원)을 기부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중국의 기부 왕이 금년에는 대만을 방문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준 것입니다. 그는 1월 26일 대만에 도착해서 27일 고궁박물관을 참관하고, 오후에 신주에 내려가서 구제 활동을 하고, 28일에는 사업차 타이중 생물과학기술회사를 방문했습니다. 29일에는 난토우에서 구제활동을 한 후, 다시 북상해서 타이베이에서 빈민 6백 명을 특급 호텔인 위안샨 호텔에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하고, 30일에는 화롄으로 가서 구제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31일에는 꽃 박람회와 101층 빌딩 상가를 둘러본 후 2월 1일 대만을 떠났습니다. 구제 활동에서 그는 빈민 한 가구당 1만 대만 달러(40만원)를, 극빈 가구에게는 5만 대만 달러를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모두 5억 대만 달러(200억 원)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문제는 그의 구제 활동 방식이었습니다. 그는 50여 명의 기업인들을 이끌고 와서 사람들에게 직접 돈 봉투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는 여러 도시 당국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타이베이 현과 타오위안 현은 치안 문제를 이유로 협조 요청을 거절했고, 신주와 난토우, 그리고 나중에 화롄 현에서 협조를 약속해서 그 지역에서만 돈 봉투를 나누어줄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많은 빈민들이 돈 봉투를 받기 위해 몰려들었고, 받지 못한 사람들은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일부 도시는 치안 상의 문제를 이유로 들었지만, 가난한 사람이 더 많은 중국에서 사람이 와서 대만에서 공개적으로 돈 봉투를 나누어 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임에 분명합니다.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그렇게 사람들이 몰려들게 해서 공개적으로 돈 봉투를 나누어 주는 모습은 꼭 저런 식으로 구제 활동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자기를 환영하러 나와 음악을 연주해 준 원주민 학생들에게는 즉석에서 주머니에서 현금을 꺼내서 주기도 했는데, 결코 좋은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만의 기업인 가운데도 일 년에 수 억 대만 달러를 기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식으로 기부하지는 않습니다. 구제는 물론 중요하지만, 그 방법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1월 말에는 대통령이 전 국민에게 사과 성명을 발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15년 전에 발생한 한 사형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15년 전인 1996년 9월 12일 타이베이 시의 공군 작전사령부 안에서 한 여자 어린이가 성 침해를 당하고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즉시 수사팀이 구성되었고, 쟝 궈칭(江國慶) 일병이 용의자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어릴 적 심한 병을 앓고 교통사고를 당한 탓에 지능이 떨어지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경찰은 그로부터 혐의를 완벽하게 인정받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36시간 계속된 심문을 통해 얻어낸 자백과 몇 가지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증거물을 토대로 그는 기소되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었지만 1997년 6월 17일 그는 유죄로 인정되어 사형이 선고되고, 1997년 8월 13일 총살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런데 금년 1월 28일 진범이 잡혔습니다. 그는 15년 전 쟝 일병과 함께 근무했던 쉬 롱조우(許榮洲)라는 사람으로 1997년 5월 타이중에서 발생한 일련의 여아 강간 살해 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되어 수감생활을 하고 2010년 9월 출감한 사람이었습니다. 정신감정 결과 그는 아동 성도착증을 가진 사람으로 판정을 받았고, 재범의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것으로 판정되어 전자 족쇄를 차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범죄 수법에 주목한 검찰이 쟝 일병 사건 기록을 다시 검토한 결과 쉬 씨의 지문과 일치하는 지문이 범죄 현장에 있었던 것을 발견하고 쉬 씨를 다시 심문한 결과 자백을 받아낸 것입니다.

 

이 사건은 사형 제도의 폐해를 보여주는 구체적 사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판의 잘못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드는 사형 제도의 분명한 사례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형제도 폐지 논의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도 사형제도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리지 못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작년 12월 27일 필리핀, 대만, 중국의 경찰은 마닐라에서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전화사기를 친 일당을 체포했습니다. 사기 액수는 1억 4천만 위안으로 상당히 큰 금액이었습니다. 체포된 사람은 모두 24명으로, 그 가운데 14명은 대만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필리핀 당국은 2월 2일 체포된 사람 24명을 모두 중국으로 보냈습니다. 이에 대만 정부는 필리핀 정부에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필리핀 정부는 필리핀의 국가 이익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결정을 했기 때문에 사과할 수 없다고 대응했습니다. 이유인즉, 필리핀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하나의 중국’은 대륙의 중국을 가리킨다는 것이고, 사건의 피해가 중국에서 일어났기 때문 중국에서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야당에서는 여당이 대 중국 문제에서 저자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식으로 대만을 대하는 것이라고 분노했고, 대통령도 필리핀의 행동에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하긴 했지만, 필리핀은 끝내 이 사건에 대한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대만 정부는 필리핀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감독과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국제 사회에서의 대만의 불안한 지위는 해소되기 어려워 보입니다. 대만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적 지위를 부여받는 것조차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이런 현실 속에서 최근 대통령은 앞으로 공식적으로 중국이라는 용어는 대만 자국을 지칭할 때만 사용하고, 본토의 중국은 지칭할 때는 ‘다루(대륙)’라 부르도록 지시를 했습니다. 그러나 진짜 중국은 대만이라는 국민당의 주장에 과연 어느 나라가 귀 기울여 줄 것인지, 현실의 문제인 정치를 너무 비현실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학기에도 영어 성경 강독 강좌는 끝내 개설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통역자까지 준비를 하고 기다렸지만, 영어 강의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혹은 기독교라는 종교에 대해 관심이 없기 때문인지, 신청을 한 학생 수가 기준에 미달해서 결국 폐강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래도 학교 당국과 상의를 해서 필수과목에 준하는 강제성을 띤 과목이 되도록 대책을 강구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북한의 불안한 정국이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요인이 되기보다

평화를 가져오는 새로운 전기가 되기를 기도드리며,

보여주신 사랑과 지원에 감사를 드리며

  

 

 

2011년 3월 2일

 

 

대만에서 구 ㅊ ㅇ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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