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ne Welt/타이완 이야기

2012/07/03

행복나무 Glücksbaum 2012. 7. 3. 06:31

샬롬!

 

한국에서는 지난 달 가뭄이 계속되어 사람들이 걱정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같은 때 이곳에서는 많은 비가 내려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걱정을 했습니다. 장마 비가 7일부터 내리기 시작해서 21일까지 보름간이나 계속 내렸는데, 강우량도 많아서 여러 곳에서 산사태가 나는 등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역사상 세 번째로 큰 장비미였다고 합니다. 특히 12일에 집중적으로 많은 비가 내려서 6.12 폭우라고 이름을 붙일 정도였습니다. 수도인 타이베이에서는 100년만의 6월 하루 최고 강수량을 기록했다고 했고, 조금 남쪽의 타오위안에서는 200년만의 최고 강수량을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6.12 폭우로 여러 사람이 사망을 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장마 비를 이곳에서는 ‘매화 비(梅雨)’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장마 비의 원래 명칭은 ‘곰팡이 비(霉雨)’였다고 합니다. 장마 때면 옷이나 이불 등에 곰팡이가 많기 피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곰팡이 비’라고 하면 어감이 안 좋으니까 발음(메이위)이 같은 ‘매화 비(梅雨)’로 이름을 바꾼 것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이번 장마의 경우 초기에는 북쪽 지역이 피해를 입었지만, 그 후 이어진 장마 비는 거의 해마다 수해를 입는 남부 지역에 집중되었습니다. 1991년 대지진이 난 후로 토양이 불안정해져서 비가 올 때마다 토석류가 흘러내려 도로가 끊기고 집들이 매몰되는 사태가 일어나곤 하는데, 금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폭우가 내리게 되면 지역마다 상황에 따라 임시 휴교나 휴근 조치를 취하게 됩니다만, 금년의 경우 장마 비가 이렇게 많이 내릴지 몰라서 휴교령을 조금 늦게 내렸다가 시민들의 원성을 샀습니다. 휴교령을 오전 6시에 내렸는데, 적지 않은 학생들이 이미 학교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놓고 집에 돌아와 방송을 들은 부모들이 다시 비를 뚫고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에 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지방 행정기구들은 앞으로 임시 휴교령을 내릴 경우 오전 5시 반 이전에 내리겠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장마 비에 더해서 태풍들도 몰려왔습니다. 18일에는 4호 태풍 구촐(谷起)이 동해안 통과했고, 20일에는 5호 탈림(泰利)이 서해안을 지나갔습니다. 다행히도 본토를 직접 통과하지 않고 멀리 지나가서 태풍으로 인한 비 피해는 크지 않았습니다만, 대단히 긴장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비록 가뭄 때문에 한 동안 걱정을 하긴 했지만, 이곳에서 여름철을 지내노라면 한국이 정말 복 받은 땅이라는 생각을 거듭 하게 됩니다. 태풍이 필리핀, 대만, 중국, 일본을 휩쓸고 지나가지만, 한국은 왼쪽 오른쪽으로 비껴가서 한국을 직접 통과하는 태풍은 별로 없고, 지나가더라도 발생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대부분 위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만, 일본, 중국 등지에서는 지진도 자주 일어나는데, 한국은 주변에 있는 나라들보다 지진으로부터 안전합니다. 최근에는 한국도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것만은 아니라는 말도 나오고 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지진을 염려하며 살아오지는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계절이 분명해서 다양한 기후를 즐기며 심심하지 않게 지낼 수 있고, 계절의 변화에 대처하며 부지런히 살게 되니 그 역시 삶에 적절한 긴장과 활기를 주어서 좋습니다. 인구에 비해 땅이 좀 좁고 지하자원이 풍성하지 않아서 생존경쟁이 좀 치열하기는 합니다만, 전체적으로 볼 때 살기 좋은 땅임에 분명하고,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복 받은 사람들임에 분명합니다. 거기에 분단을 제거하고 약자들을 배려하는 사회와 국가를 건설하기만 한다면 금상첨화이겠습니다만, 불행히도 너무 아옹다옹하며 살고 있는 게 안타깝습니다. 성실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사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만, 여유는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게 없다면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더운 여름철이 시작되었습니다만, 한번 화끈한 맛을 보여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즐거운 마음으로 여름을 지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훨씬 무더운 날씨 속에서 일 년 내내 사는 사람들도 지구상에는 많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감사한 마음이 조금은 더 생기지 않을까 합니다. 아열대 지역에 불과하지만, 이곳도 장마가 끝나자마자 낮 최고 기온이 금방 33도를 넘어 35도까지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최저 기온이 30도 아래로 유지되고 있어서 그런대로 지낼 만합니다. 오랜 장마 덕분에 대지가 아직 덜 달궈진 탓이겠지요.

 

지난 번 소식에서 6월 2일에 있었던 졸업식 이야기를 다 전하지 못했습니다. 졸업식에 많이 참석해보지 못해서 다른 학교들의 경우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창롱대학의 경우 나름대로 특색이 있다고 생각해서 소개를 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졸업식이 열리는 체육관 앞의 장식이 말해주듯이 졸업식 분위기는 엄숙하다기보다는 밝고 경쾌한 편입니다. 그리고 원주민 학생들의 축하 공연으로 시작합니다.

이어서 기도와 성경봉독, 권면(설교)가 이어지는데, 금년에는 제가 기도 순서를 맡았습니다.

다음은 창롱대학 졸업식의 가장 특별한 순서라고 할 수 있는 세족례입니다. 법적으로는 학교에서 특정 종교나 신앙을 전파하는 게 금지되어 있지만 기독교 정신을 토대로 세운 학교임을 많이 강조하는 창롱대학에서는 졸업식 순서에서도 기독교적인 분위기를 많이 드러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의 하나가 세족례 순서입니다. 예수께서 최후의 가르침으로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뜻을 되새기는 이 세족의 순서에서는 학교의 교육 정신인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가르침 가운데 하나인 섬김의 정신을 나타내기 위해 이사장, 총장, 학장 등 학교의 주요 인사들이 참가해서 학생 대표들의 발을 씻겨 줍니다.

다음은 내외빈 소개, 그리고 이사장의 치사, 총동창회장의 치사입니다. (이사장께서는 연세를 좀 드신 분이라 그런지 언제나 말씀이 길어서 금년에도 20분쯤 이야기하셨습니다. 긴 말의 대명사인 설교보다도 더 긴 치사였지만, 이 역시 자유로운 졸업식 분위기의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다음은 교무국장의 졸업생 현황 보고, 박사 학위 수여, 석.학사 과정 대표들에 대한 학위 수여, 각계 축전 소개, 각종 시상 등으로 이어집니다. 금년에는 제가 소속한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이 신설되어 제가 총회를 대신해서 두 학생에게 시상을 했습니다.

다음은 졸업생 대표가 기념품을 학교에 기증하는 순서였는데, 오전의 학생 대표는 특별한 풍선 장식을 하고 단 위에 올라 분위기를 더 밝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면 졸업생들의 아이디어에 따른 특별 순서가 이어집니다. 오전 예식에서는 학생 대표의 회고담에 이어 졸업생들이 제작한 재미있는 학교생활 회고 비디오가 상영되었고, 재학생 대표의 축하 노래 순서가 있었습니다.

오후 예식에서는 자신들을 뒷바라지해 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발을 씻겨 드리는 또 다른 세족례가 있었습니다. 졸업생 가운데 자원한 사람들이 자기 부모님이나 형님, 혹은 언니를 모셔 와서 감사의 표시로 발을 씻겨 드렸습니다. 중단했던 학업을 50세 넘어 마치고 졸업을 하는 한 학생은 백발이 되신 연로하신 아버님의 발을 씻겨 드렸습니다. 이날 세족례에서는 학교 설립자 가운데 한 분이 미술학과 석사 과정을 졸업하면서 총장의 발을 씻겨서 플래시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오후 예식에서는 세족례에 이어 학생 대표의 회고담과 자기 학과 은사님들에 대한 감사의 순서가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마련한 이런 순서들이 끝나면 다 함께 교가를 부르는 것으로 졸업식이 끝납니다. 졸업식은 거의 두 시간 이어지지만, 학생이나 가족이나 모두가 끝까지 자리를 잘 지킵니다.

 

한국의 각종 예식들은 대체로 엄숙하고 형식적인 편인데 비해, 대만의 예식은 보다 덜 형식적이고 자유롭고 가볍지 않나 싶습니다. 창롱대의 졸업식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문화나 사고방식, 혹은 가치관의 차이를 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합니다.

 

무더운 여름이지만, 늘 상쾌한 마음으로 활기 있게 생활하실 수 있기를 기도드리며,

 

 

 

2012년 7월 3일,

 

 

대만에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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