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ne Welt/타이완 이야기

2013/03/05

행복나무 Glücksbaum 2013. 3. 5. 11:41

 

샬롬!

음력 정월도 벌써 막바지에 들어서고 있습니다만, 다시 한 번 설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민속에는 여러 가지 금기 사항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만, 특히 새해맞이와 관련해서는 많은 금기사항들이 전해집니다. 그건 새해를 잘 맞이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나라들마다 새해맞이와 관련한 금기들이 있겠습니다만, 대만은 그런 금기들이 유독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요즘 그런 걸 엄격하게 지키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유념할 만한 내용들도 있어서 소개를 하며 한 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금기에는 외연(外延. denotation)과 내포(內包. connotation)가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 규정과 그 규정의 이면에 깔려 있는 속뜻이 있는 것이지요. 그런 걸 살펴보며 대만의 새해맞이 금기사항들을 소개해 봅니다.

 

<정월 초하루~초이틀>

1. 출가한 여자는 친정을 가지 않는다. 초하루에 출가한 여자가 친정에 가는 경우 친정이 가난해진다. 친정에 가고자 할 때는 초이틀이나 초사흘에 가야 한다. (내포: 초하루는 가족들이 모이고 손님들도 오는 바쁜 날입니다. 이런 날 손님 접대를 해야 할 여자들이 자리를 비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금기가 아닐까 합니다.)

2. 초하루 아침에 목욕을 하거나 머리를 감거나 빨래를 하지 않는다. 집안의 복이 달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내포: 새해 초부터 부산을 떨지 말고, 미리미리 준비해서 차분하게 새해를 맞으라는 뜻일 겁니다.)

3. 초하루 아침에 새로 밥을 짓지 않는다. 연말에 음식을 미리 장만하고, 지난해의 음식이 새해까지 남아 있어야 새해가 풍요로워진다. (연초에는 대접하기에도 분주합니다. 이 역시 미리 준비해서 음식을 대접하는 여성들이 너무 바쁘지 않도록 하라는 뜻이라 생각합니다.)

4. 아침에 죽, 고기, 약을 먹지 않는다. 죽은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이다. 따라서 연초에 죽을 먹지 않는다. 또한 연초는 신들의 시간이므로 신들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살생을 하지 않으며, 고기를 먹지 않고 채식을 한다. 그리고 중병에 걸려 약을 먹어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약을 금한다. (소박하게 절제를 하며 한 해를 맞되, 그렇다고 너무 초라하지 않게 한 해를 시작하라는 뜻이 아닐까요?)

5. 이름을 부르며 사람을 깨우지 않는다. 연초에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깨우면, 그 사람이 일 년 내내 다른 사람의 독촉을 받는 일이 생긴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6. 잠자고 있는 사람에게는 신년 인사를 하지 않는다. 누워 있는 사람에게 절을 하면 그 사람이 일 년 내내 병상에 누워 있을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바라는 마음의 표현)

7. 초하루와 초이틀에는 빨래를 하지 않는다. 초하루와 초이틀은 물의 신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연초 분주한 여성들의 짐을 덜기 위한 금기라고 생각되는 군요.)

8. 초이틀이 되어 출가한 여자가 친정을 방문할 때, 혼자 가지 않는다. 홀수는 좋지 않은 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물도 짝수로 준비한다. (역시 여성들에 대한 배려로 보입니다.)

 

<초하루~초닷새>

1. 낮잠을 자지 않는다. 일 년 내내 게으름을 피우게 된다. (새해에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겠다는 결단의 표시일 수도 있고, 찾아오는 손님에 대한 대비와 예의일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2. 오수,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바닥을 쓸지 않는다. 집안의 복이 쓸려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는 새해가 되기 전에 마쳐야 하고, 연초에 쓰레기가 많이 생겨나지 않게 해야 한다. 청소는 초닷새에 하되, 바닥을 쓸 때는 집 밖에서 안쪽으로 해서 복이 들어오게 해야 하고, 모였던 쓰레기를 밖에 버려서 가난을 쫓아버려야 한다. (청결한 가운데 한 해를 맞이하라는 당부인 동시에, 복을 잃지 않고자 하는 마음의 상징적 표현이겠지요.)

3. 다른 사람이 내 호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지 못하게 한다. 일 년 내내 다른 사람에게 재물을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가진 것을 잃지 않고자 하는 마음의 상징적 표현이 아닐까요?)

4. 빚을 독촉하지 않는다. 재수 없는 일을 당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연초에는 다른 사람에게 나쁜 말을 하거나 꾸짖지 말아야 하고, 다투지 말아야 하고, 아이들을 때리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5. 길이가 긴 채소를 먹을 때 자르지 말아야 한다. 장수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수를 바라는 마음의 상징적 표현.)

6. 바늘, 칼, 가위 등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여성에 대한 배려. 이런 물건들은 사용하게 하면 여자들은 더 바빠지게 마련입니다. 음식이나 옷가지 등은 미리 살피고 준비해서 연초에 조리를 하거나 옷을 깁는 일 등이 없도록 하라는 당부일 겁니다.)

7. 떡, 백설탕 같은 흰 색 음식을 금한다. 설탕을 사용할 때는 흑설탕처럼 색이 있는 걸 사용한다. (한국과 달리 대만에서는 흰 색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8. 빨래를 밖에서 말리지 않는다.

9. 떡을 지지지 않는다. 잘못하면 떡이 눌어붙을 수 있는데, 대만어에서‘눌어붙는다’는 말의 발음이 ‘가난하다’는 말의 발음과 같기 때문이다.

 

숨긴 뜻과 배경을 추측할 수 있는 금기도 있고, 그게 분명하지 않은 금기도 있습니다만, 타인에 대한 배려, 여성에 대한 배려 등이 담겨 있는 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칫 내포를 알지 못한 채 외연에만 매달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건 성경에 있는 많은 규례와 율법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든가, 종류가 다른 실로 천을 짓지 말라든가 하는 등의 규례에는 그 이면에 객관적으로 납득할 만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런 이유들(내포)을 이해하지 않고 외적인 규례(외연)만 강조하다보면 우리는 율법주의 혹은 교조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의 비판을 받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겁니다. 외연만 주장하다보면 내포의 선한 의도는 퇴색되고, 외연은 악한 것, 나쁜 것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성경의 규례와 가르침들을 더 진지하고 깊이 있게 묵상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얄팍한 해석으로 그 가르침들을 이해하고, 그걸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그 결과 복음을 거부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리곤 합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창롱대학교에 한국인이 한 사람 늘었습니다. 미국에서 구약학을 전공하신 박혜경 박사께서 신학과 교수로 오신 것입니다. 역시 영어로 강의를 하고, 번역과 학생들이 통역을 하는 식으로 강의를 진행합니다. 한국어로 대화하고 교제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겨서 마음이 더욱 든든해지고 큰 위로가 되는 느낌입니다.

박 교수에게도 제가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선한 이웃을 찾으려 하기보다 네가 선한 이웃이 되어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과연 잘 실천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저희 부부는 이제 이곳에 잘 정착했고, 맡겨진 일들을 잘 감당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더 노력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계속 저희 부부를 위해 기도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사순절이 늘 아름다운 계절에 닿는 게 아쉽습니다만, 절제가 있어야 더 아름다운 부활의 절기를 맞을 수 있는 것이겠죠?

한결같은 사랑과 지원에 감사드리고 주 예수께서 주시는 평강과 기쁨이 삶의 작은 구석까지 늘 충만하길 기도드리며,

 

2013년 3월 5일

 

대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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