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älbs/말과 말들...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행복나무 Glücksbaum 2015. 7. 16. 06:46




http://www.seelotus.com/gojeon/hyeon-dae/si/si-new/ta-eun-mok-ma.htm





타는 목마름으로

 

신 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내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시, 김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