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3, 5. 요한1서 5, 4- 12
찬송 89, 429장
시편 23편 가운데서 오늘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부분은 "원수들 보라는 듯 상을 차려 주시고" 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장면이 새로 바뀝니다.
여기서 다윗은 양이 아니고 손님으로, 하느님은 목자가 아니고 주인으로 비유가 되고 있습니다.
주인은 손님을 귀빈으로 대접하고 있습니다.
근동지방에서는 자기를 죽이려는 원수에게 쫓기게 되면 자기가 보호를 받고 싶은 사람의 천막에들어가기만 하면
그 주인의 보호와 환대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못하므로 원수들도 천막 문 밖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집주인으로 원수에게 쫓기던 사람을 맞아들일 뿐 아니라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향연을 베풀고 머리에 기름을 부어 환영의 예를 행한 후 잔이 넘치도록 술을 따르는 것입니다.
강력한 권세를 가진 주인의 보호를 받은 이 사람은 더 이상 원수에게 쫓길 필요가 없게 됩니다.
주인은 "이 사람은 내 친구"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대조된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원수들이 있다는 사실과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 원수들로부터 보호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까지는 사울 왕에게 쫓겨 다녀야만 했습니다. 왕이 된 후에는 항상 수많은 적들과 대치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경우에 하느님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음을 늘 경험하였습니다. 그는 항상 적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지만 하느님이 그에게 베풀어 주신 은총들로 인하여 그의 삶은 형통하였습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힘있다 뻐기는 자들
오늘 우리가 바르게 살려고 할 때 수많은 폭력배들이 우리를 둘러싸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힘있다고, 돈 있다고 뻐기는 자란 우리를 공격하여 파멸시키려는 모든 세력을 말합니다.
그들은 힘있다고 으슥되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세력들은 때로는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지고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부드럽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에덴동산의 하와를 유혹하던 뱀처럼 그럴듯한 유혹으로 우리를 파멸로 이끌기도 하고, 히브리인들을 철저하게 탄압하였던 이집트의 파라오처럼 강력한 권력으로 우리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오늘은 마침 종교개혁 즉 교회와 신앙개혁주일입니다.
마틴 루터가 1517년 10월에 개혁의 기치를 들었을 당시에 교황청의 세력은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아주 막강한 것이었습니다.
교황은 한낱 수도사에 불과한 루터 같은 사람은 수 천 명도 파멸시킬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존재는 마치 거센 바람 앞에 하늘거리는 촛불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누구도 그 촛불이 온전하리라고는 보지 않았습니다.
보름스 의회 앞에서 그가 심문 당할 때 그는 으르렁거리는 이리떼들 속에 서있는 어린양과 같았습니다.
아무도 그가 거기서 살아 나오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하물며 그가 주장하는 종교개혁, 즉교회와 신앙 개혁이 성취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루터에게 있어서 교황청은 아주 무서운 힘이 있다고 빠기는 집단의 조직이었습니다.
그가 하느님의 말씀을 깨닫기 전까지는 교황청은 그에게 아무 위협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진리를 깨우치고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95개조 항의문을 내건 다음부터
교황청은무서운 원수로 변하여 버린 것입니다.
그가 진리를 몰랐을 때는 원수가 없었으나 진리를 깨달으면서 원수가 생겨난 것입니다.
바울은 전도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적대적 세력들을 만났습니다. 특히 어디가나 유대인들이 그를괴롭혔습니다.
그가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유대인들은 모두 그의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만난 이후 열심을 다하는 예수쟁아 세상을 뒤집는 복음전도자가 되자 유대인들은 원수로 변했습니다. 마침내그는 유대인들에게 고소되어 로마로 압송되기까지 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셨을 때 수많은 원수들에 둘러싸여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가 고난당하신 것은 그가 진리 그 자체이신 하느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런 모든 예들을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의롭게 바르게 살려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원수들이 있게 마련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 풍조를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핍박과 환난이 없으나
그것을 거슬려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고난이 있게 마련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신 대로 우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일찍이 경고를 하였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5:8).
오늘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려할 때 우리를 공격하려는 적들을 예상해야 하며,
그들에 의한 고난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므로 내적 평화를 누리지만 외적으로는 오히려 그 평화를 깨뜨리려는 세력들에의해 고난을 당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 때문에 고난당하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였다고 했습니다.(행5:41)
예수님 때문에 전에는 친구였던 사람들이 이제는 원수가 되고 전에는 무관하던 사람들이 적들로변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내적 평화를 파괴시키려는 원수가 생겼다면 우리도 기뻐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그만큼 성숙하여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긴 원수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런 적이 많이 생길수록 여러분의 믿음은 활동하고 있는 것이며,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게 밥상을 차려주시는 하느님
이와 같이 믿음의 원수들이 나를 둘러싼다고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하느님께서 강력한 주인이 되셔서 나를 영접하여 보호하실 뿐만 아니라 내게 상을 베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상을 베푼다는 것은, 손님을 대접하여 잔치를 베푼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은 원수들에게 쫓겨 그에게 피하여 온 지친 영혼들에게 힘을 돋구어주고 그의 원기를 회복시켜주기 위해 잔치 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하느님의 잔치 상의 메뉴는 무엇일까요?
무엇이 우리의 지친 영혼에 새로운 힘을 돋구어 줄까요?
무엇이 우리의 약해진 믿음을 강하게 해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약속이 담긴 말씀입니다.
야곱이 하란으로 도망가면서 벧엘에서 들은 하느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그는 20년 동안 이주노동자생활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그가 다시 피곤하여 지쳤을 때 얍복 강가에서 하느님의 약속을 다시 들으므로 용기를 얻어 형 에서와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가나안을 담대하게 점령할 수 있었던 것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무서울 것 없어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 5, 8)
오늘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려할 때 우리를 공격하려는 적들을 예상해야 하며,
그들에 의한 고난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므로 내적 평화를 누리지만 외적으로는 오히려 그 평화를 깨뜨리려는 세력들에의해 고난을 당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 때문에 고난당하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였다고 했습니다.(행 5, 41)
예수님 때문에 전에는 친구였던 사람들이 이제는 원수가 되고 전에는 무관하던 사람들이 적들로변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내적 평화를 파괴시키려는 원수가 생겼다면 우리도 기뻐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그만큼 성숙하여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긴 원수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런 적이 많이 생길수록 여러분의 믿음은 활동하고 있는 것이며,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게 밥상을 차려주시는 하느님
이와 같이 믿음의 원수들이 나를 둘러싼다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하느님께서 강력한 주인이 되셔서 나를 영접하여 보호하실 뿐만 아니라 내게 상을 베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상을 베푼다는 것은, 손님을 대접하여 잔치를 베푼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은 원수들에게 쫓겨 그에게 피하여 온 지친 영혼들에게 힘을 돋구어주고
그의 원기를 회복시켜주기 위해 잔치 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하느님의 잔치 상의 메뉴는 무엇일까요?
무엇이 우리의 지친 영혼에 새로운 힘을 돋구어 줄까요?
무엇이 우리의 약해진 믿음을 강하게 해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약속이 담긴 말씀입니다.
야곱이 하란으로 도망가면서 벧엘에서 들은 하느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그는 20년 동안 이주노동자생활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그가 다시 피곤하여 지쳤을 때 얍복 강가에서 하느님의 약속을 다시 들으므로 용기를 얻어 형 에서와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가나안을 담대하게 점령할 수 있었던 것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무서울 것 없어라.”
는다는 것은 곧 하느님께서 그를 버리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이 사울 왕에게서 잔치 상을 거두어 버리신 것입니다.
말씀을 듣지 못한다는 것은 하느님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정말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피곤해진 영혼에 새 힘을 주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야훼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한다."(시19:7)고 하였고,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다."(19,10)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먹으면 우리의 눈이 밝아지고 우리의 머리가 명석해지고 지혜로워집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하고 한대로
말씀은 우리의 눈을 밝혀 하느님의 역사를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른 길로 행하여 나갈 수 있습니다.
또한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시편 119, 99- 100) 한대로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명철함과 지혜를 주어 바르게 판단하며 지혜롭게 행동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우리가 외로울 때 하느님의 말씀을 펼치면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들으면서
무한한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됩니다.
상은 영적 생명을 공급 받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성찬은 이 땅에 육신이 되어 오신 말씀을 우리가 구체적으로 받는 일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모든 구원의 은총을 집약시켜 놓은 잔치 상입니다.
우리는 이 성찬 상에서 하느님의 모든 약속을 기억하게 되며,
진리와 정의가 승리하고 모든 악은 격퇴될 수밖에 없다는 확신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성찬 상에서 이 땅의 민주화와 통일이 하느님의 뜻임을 확신하게 되며,
이를 위하여 헌신할 수 있도록 우리 속에 능력과 용기를 더하여 주시는 성령과 만나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 세상에 가득 찬 악의 세력과 맞서 싸우도록 부름 받은 ‘십자가 전사’들입니다.
주님은 여러분들로 하여금 이 악과 싸워 이길 수 있도록 말씀을 공급하시고 마침내는 독생자 예수그리스도의 몸까지 주셨습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으므로 여러분은 누구도 넘어뜨릴 수 없는 강한 능력의 소유자가 됐습니다.
그러므로 원수가 아무리 거대하고 무서워 보여도 두려워하지 말고 나가 싸우기를 바랍니다.
골리앗이 나가 넘어지듯 말씀으로 무장하고 나가 맞설 때 힘있다 뻐기는 자는 의외로 쉽게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요한1서에 "대저 하느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5:4)고 하신 말씀대로
하느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영의 양식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의를 위해 투쟁하다가 낙심될 때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는 말씀에서
다시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피곤한 나그네 앞에 차려진
잔치 상 위에 올려 진 가장 좋은 음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섭취하여 새 힘을 얻으면 어떤 대적도 우리와 맞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은 영의 양식일 뿐만 아니라 적과 맞서 싸울 때는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 원수들이 들끓는 세상에서 우리가 승리하려면
항상 말씀을 섭취하여 힘을 얻어야 하며,
원수들이 설치한 미혹된 길을 피하여 바른 길로 나가기 위해서는
지혜와 명철을 얻어야 합니다.
이제 날마다 하느님 말씀을 섭취하므로
우리 모두의 영혼이 늘 강건하기를 바랍니다.
한 가지 더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 앞에 차리신 잔치 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전하여 주신
성찬 상이기도 하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나누어주시므로 죽어가던 우리의 영혼을 살리시고 새 생명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시는 현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이 피곤할 때 그리스도의 성찬 상에 모여 앉아 그분이 주시는 떡과 잔을 받아먹으면
우리 속에 새로운 생명의 힘이 솟아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찬을 받는 우리는 이제,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늘 영적 생명을 보전 해야 하겠습니다.
[신교가 펼친 종교개혁 기억날 / 31. Oktober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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