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윤증의 효와 노강서원
명재 윤증은 인조 14년(1636) 12월 만주족이 쳐들어와 병자호란이 발생했을때 선생 급히 강화도로 피난하였다 한다.한 달 뒤 만주족이 강화도까지 들어왔다고 하니 일찍이 피난을 떠났다는 이야기, . 그러자 그의 어머니 이씨 부인은 결심한 바가 있어 부군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적의 손에 죽느니 자결하는 편이 떳떳할 것입니다. 이렇게 뵙고 영결하려는 것입니다.” 부군이 외출하자 부인은 하인들에게 뒷일을 부탁하고는 스스로 목을 매었다. 소년 윤증의 나이 겨우 9세요, 손위의 누나도 10세에 불과하였다. 윤증은 하인을 데리고 모친의 시신을 거두어 임시로 묻었다. 8개의 돌을 가져다 사방에 묻고 또, 숯가루를 뿌려 표시해 두었다. 어린아이로서 이처럼 차분하게 상주의 도리를 다했다고 한다. 강화도를 점령한 만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