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중앙 아시아 지방에서 중국을 점령한 후 그 여세를 몰아 유럽 지방까지 원정 온 훈족들은 AD 375년경에 게르만 민족의 일부인 동부 고텐 족과 발칸 족을 제일 먼저 섬멸시킨 다음 계속 각지 역에서 게르만 민족을 괴롭혔단다.
훈 제국에게 패한 동부 고텐 족들은 이때 쫓겨서 지금의 유고지방에서부터 이태리 지방을 거쳐 멀리 스페인까지 이동했어. 그러나 약 70년이 지난 AD 451-455 년경까지 훈 제국과 약 5년간을 끄는 전쟁 끝에 프랑켄 족은 득세하므로 이 부족은 처음으로 게르만 민족의 강력한 지도적 위치를 확보하게 됐단다.
이 부족은 '자유' 또는 '용감한 종족' 이란 칭호를 받던 서부 게르만족의 하나로 로마 제국의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지금의 쾰른 지방인 리푸아리어 일대에다 작은 국가를 세우고 지금의 헷센 중부일대를 국토로 삼고 있었단다.
프랑켄 족으로부터 패한 로마제국이 독일 땅에 세력을 완전히 잃은 때는 약 476년경이었다. 로마군대가 철수하자 그들이 차지했던 영토들에 대해 당시 큰 부족들이 서부 고텐 족이나 브르군더 족, 동부 고텐 족들이 이 땅을 서로 차지하려는 다툼 때문에 오히려 그 세력이 차츰 약화되었단다.
특히 동부 고텐 족의 테오더리히(Theoderich)가 게르만 종족을 하나로 묶으면 노력도 수포로 돌아갔는데 하라인과 갈리엔 지방을 먼저 통합시킨 크로드빅 1세는 로마교회를 흡수하는 한편 498년에는 스스로 왕위에 올랐어.
그러나 이 메로딩거 왕조는 이때로부터 약 200년이 지나도록 게르만 민족을 하나로 통합시키는데 성공하지 못했단다. 이와 같이 직접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는 독일 각 지방의 성주들을 대신하여 로마교황청은 쾰른 - 마인츠, 트리어의 대주교들을 일방적으로 선 제후로 임명하는 한편 당시 국왕을 뽑는 선거에도 직접 간섭하므로 봉건 왕국 정치사에 상당한 압력과 영향력을 주었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프랑켄 족을 이끌고 있던 장군 칼마아텔은 국력을 키운 732 - 737년까지 사이에 오늘의 아랍지방에서부터 서부 고텐 족이 왕국을 이루고 있었던 스페인까지 통합하고, 또 남쪽으로는 부르군디 왕조도 흡수시키는 등 종전의 고대 로마제국보다 더 넓은 영토를 확장하는 놀라운 침략을 보였다.
이 때 칼의 아들인 피핀이 로마교황청인 짜카리아스로부터 황제 칭호와 국왕의 상징을 사용할 수 있도록 윤허를 받아내는데 성공, 황제로 등극하므로 명실상부한 통일제국을 건국할 수 있었단다.
통치 중심지를 오늘날의 아헨(Aachen)지방에 두었던 프랑켄의 지배적 3대 종족(Sachsen, Sailer, Hohenstaufen)은 종교세력과 세계적 정치세력을 같이 통합함으로써 평화와 권리를 보장하는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단다. 그러나 교황과 황제간의 맹약은 오래가지 못했어.
814년 카알 대제가 운명한 후, 두 아들 루드비히 1세와 로타르 간에는 상속문제에 따른 견해 차이로 서로 갈라지면서 일으킨 전쟁은 통일 프랑켄제국의 분리를 다시 잉태시켰단다.
이때부터 시작한 전쟁은 843년에는 로타르가 이끄는 로타링 왕국(로마에서 아헨까지, 또 옛 프랑켄 족의 영지 모젤 강 일대와 부르군더 지방)과 루드비히 2세가 이끌던 동 프랑켄(현 독일지방), 칼 2세가 이끄는 서 프랑켄(지금의 프랑스 일대)으로 영토가 분리되는 결과를 안겨주었단다.
이와 같이 국토 분리는 후일 독일계통의 독립투쟁과 귀족들의 통치 욕망으로 더욱 세분화하는 난립시대를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로마교회와의 끈질긴 권력투쟁으로 인한 황제의 중앙분권적 통치와 범세계적인 제국포기를 초래하게 됐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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