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옛날부터 마을 입구나 마을의 중앙지에 자연스럽게 각기 집에서 사용하고 남은 농산물들이나 수공업 제품들이 모여져 자연스런 시장을 형성하게 되었단다. 우리나라도 5일장이니, 7일장이니 하는 소규모의 장이 지금까지도 농촌의 정겨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는 것을 너희들과 함께 여행 중 찾아보기도 해서 낯설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농산물이나 공산품들이 조그마한 개나리 봇짐에서부터 크게는 우마차에 대량으로 동네 공터에 모여들면서 시골장의 풍경은 참으로 아름답기만 하다. 이런 시장은 인류가 생겨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물물교환 형태로 자리잡아 온 것이란다.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런 모습을 유지하다가 로마제국에 의해 계획도시의 중요한 도시건축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단다. 그것이 '아고라' 라고 하는 시장 터의 건설이야. 요새로 말하면 전문시장, 전문 백화점의 원조 정도는 된다고 말해야 하겠지? 어떻게 보면 그리스의 도시국가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알렉산더에 의해 그리스 문화의 동화정책에 따라 이런 계획도시는 더욱 더 지중해 연안에 건설되기 시작하였지.
독일에서의 시장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처럼 동네 한복판의 광장에서 수공업 제품의 물물교환이나 간단한 판매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야. 시장이 형성되면서 수공업이 조금씩 발전하기 시작했단다.
카롤링거 시대의 교역장소는 고작 60~70여 개였으나, 11세기 초에는 라인강과 엘베강 근처에 200~300여 개로 늘어나게 되었지. 도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 왕과 귀족사이에는 항구적인 갈등이 존재하고 있었으므로, 도시가 제3의 세력으로서 중요해졌단다. 이들은 도시 공동체 commune을 형성하였단다.
시장은 단순한 물물교환의 장이었으며, 원거리 무역 때에 잠시 쉬어 가는 곳에 불과했지. 이러한 지역은 강 하류에 발달했고, 영주들에 장악되어 있었어. 도시들이 생겼단다. 이는 도시가 조성되면서 농토를 중심으로 해서 봉건적 종속이 약화되어지고 이농과 더불어 도시 시민 층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어 시민적 도시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단다. 농촌에서의 농노는 줄어드는 대신 새로운 도시민의 수는 급증해 가고 도시 시민층에는 농촌과는 다른 자유로운 삶의 폭이 넓어졌다고 하겠지.
11세기에 봉건적 성(Burg)은 방어시설로서 지배계급의 정치적 안정을 위해 건설된 것이었단다. 성과 성(burg)사이에 전쟁이 자주 일어나게 되었지. 처음에는 단순한 도피처였으나, 점차 방어와 거주가 그 주목적으로 되었고, 성의 재료도 흙과 나무에서 점차 돌로 바뀌어 갔단다. 산과 강을 끼고 건축된 이런 성채들은 그 당시 권력의 상징이었으니까.
....
잘 먹고, 잘 자는 것도 행복한 것이란다.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먹고, 쉬는 것이니 내일의 행복을 오늘 준비하는 것이 되겠지. 안 그러냐?....,
또 연락하자.
'Eine Welt > 독일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방국가의 절대주의(Territorial Staatlicher Absolutismus) (0) | 2002.01.03 |
---|---|
독일 선제후들에 의한 황제 선거 (0) | 2002.01.02 |
유럽 시민의 격변, '시민혁명' (0) | 2001.12.24 |
독일, 국가와 교회간의 서임권 싸움 (0) | 2001.10.04 |
독일 국가형성의 시작 (0) | 2001.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