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의 선제후에 의해 황제가 선출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3인의 성직자와 4명의 세속제후로 구성되어 있었단다. 이들에 의해 황제가 선출되었는데, 황제는 점점 자신의 권력을 잃어가고 있었지.
12세기에 이르러서는 인구 10만이 넘는 도시가 나타났는데, 파리와 베니스 등, 2, 3개뿐이었어. 자치도시의 중심에서는 도시귀족들이 행정을 장악하고 있었단다.(예를 들면 플로렌스의 메디치가). 흥미로운 것은 자치도시가 고도로 발달한 이태리와 독일은 자본주의로 발전이 오히려 늦었다는 점이지. 상업의 발달이 자본주의로 이행을 가져왔다는 학설과는 전혀 맞지 않는 역사적 사실이란 것을 잊지 말아라. 독일 자치도시의 강력함은 한자동맹으로 대표될 것이다. 12세기말에 이르러서는 영방제후들이 조세권을 도시에 넘겨주기에 이르게 되었단다.
14세기에 룩셈부르크왕조가 이웃나라를 빈번하게 침략(對폴란드, 對헝가리)하는 전쟁을 하다가 황제권의 약화를 가져왔단다. 같은 시기에 영국에서는 중앙집권화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어. 14세기 이래로 제국황제의 대립은 심화되었고, 15세기에는 연방국가가 형성되었단다. 급료를 받는 직업관리와 법률가가 등장하여 각 개별 영방 국가는 권한이 점점 더 강화되었지. 그러나, 제국 자체는 그렇지 못했어. 1413년에 Brandenburgmark의 Hohenzollen가에서 기사반란을 진압하면서 지역을 통합하기 시작했단다. 1442년에는 베를린과 쾰른을 장악하여 버린 거지.
1437년에는 룩셈부르크 왕가가 Hapsburg왕조로 넘어갔단다(알브레히트2세). 합스부르크 왕조는 1806년까지 이 종이호랑이를 차지하고 있었어.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한자동맹은 귀족에 저항하면서 도시를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였지. 13세기말 한자동맹은 상인 한자에서 출발했다가, 도시동맹으로 발전했단다.
한자동맹의 핵심은 뤼벡 지역으로 노르웨이를 상대로 무역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강한 나라였어. 봉건성으로부터 독립을 추구하며, 다른 한편으로 플라등르에서 이미 발달한 면공업과 일정한 연관을 맺으며 발달하였단다. 자본주의적 관계발전에 진보적 역할을 했다고나 할까. 이 당시 영국에는 아직 상인계급이 없었단다. 한자동맹의 발전은 강력한 경쟁자가 없었기에 가능했던 거야. 한자동맹의 진보적 성격은 14세기까지만 이어졌단다.
독일의 한자동맹은 왜 자본주의 이행에 실패했을까? 한자동맹은 북유럽 상업을 독점(상업적 이익)했으나, 이를 생산으로 전화하지 않고 직접생산자에 대한 착취를 더욱 강화하였어. 소수의 도시귀족이 도시자치회의를 장악하여 중소상인을 희생시킨 결과를 가져오게 된 거야. 이러한 도시귀족들의 전횡(독점적 권력의 행사)은 도시 시민(부르죠아)의 성장을 방해했지. 이들은 보수화의 길을 걷게 되었고, 벨기에 네덜란드 지역의 무역발달로 점차 침체되기 시작했단다. 영국, 네덜란드 상인과 경쟁이 시작된 것이야. 게다가 Hohenzollen家가 베를린과 쾰른을 통합하면서 한자동맹으로부터 탈퇴를 강요했고, 이들이 탈퇴하면서 한자동맹은 더욱 쇠약해져갔단다.
1494년 러시아가 통일되었어. 러시아는 북해연안의 상업권을 잠식하기 시작한 것도 한자의 쇠퇴에 영향을 미쳤단다. 1669년, 결국 한자동맹은 허망하게 해산하게 된단다. 농민전쟁 실패 후, 농노제강화도 한 이유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 이름이 아직도 독일 하늘을 빛내고 있어. 독일을 대표하는 항공사인 '루프트한자'가 바로 그것 아니겠니....
......
이제, 그곳에도 성큼 다가오는 짧은 가을을 맞이하겠구나.
독일의 문화, 정치, 경제의 깊이를 살피고
IT산업의 동향을 넓게 살피며 생활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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