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ne Welt/독일 이야기

유럽 시민의 격변, '시민혁명'

행복나무 Glücksbaum 2001. 12. 24. 19:01


서유럽은 17-18세기에 시민혁명이란 몸서리치는 대 난리(?)를 겪었단다. 독일도 이 흐름에서 예외적인 존재는 아니었어. 19세기에 들어와 독일도 도시 시민층(부르죠와) 혁명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독일에서도 부르죠와들이 그 세력을 뻗치기 시작했지. 산업화의 덕분으로 독일 역시 산업 부르죠와들이 성장해가기 시작했단다.

 

시민(부르죠와) 혁명은 의회주의와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길인데, 독일에서는 실패로 돌아갔단다. 독일의 부르죠와 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데는 국가의 역할이 매우 강했기 때문이라고 할까. 산업화가 위로부터 국가에 의해 진행되었고, 보수적이고 봉건적 성격이 강했어. 반면에 프랑스나 영국에 비해 독일의 부르죠와는 힘이 약했지. 독일의 특성은 뭐든지 좀 느릿한데 있는 것 같애. 민족국가 형성이 또한 늦었으며 이 과업은 후에 비스마르크에 의해 1871년에 달성된단다.

 

민족국가의 형성은 자본주의 발달에 매우 중요하다. 단일한 시장권의 통합이 가능해지는 것인데 독일은 1834년에 프로이센의 주도로 관세동맹을 맺어 이를 해결했고, 민족국가형성과 자본주의 추구를 위해 의회주의와 민주주의를 포기한 나라라고 할까. 이는 독일의 부르죠와지의 힘이 약했기 때문이란다. 영국과 프랑스는 혁명이후 국가와 시민사회가 분리되었으나, 독일은 혁명이 실패한 탓에 국가와 시민사회가 분리되지 않았어. 보수 세력(Junker를 중심으로 한)은 부르죠와와 프롤레타리아를 동시에 억눌렀기 때문이란다. 독일에서 노동운동이 급격하게 다른 나라들보다 빨리 성장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란다.

 

독일의 산업노동자(프롤레타리아)는 독일의 부르죠와지들이 이루지 못한 과업까지 한꺼번에 수행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독일의 노동운동이 가장 빨리 성장했고, 다른 나라와 다른 관심의 초점이 되었단다. 산업화가 위로부터 시작되면서, 자본의 대규모 집중이 이루어졌단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이런 점에서 독일과 매우 흡사하지. 이것도 다음 기회에 자세히 언급하게 될 것 같다.



[19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