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0년에 엥겔스는, "Der deutsche Bauern Krieg(독일 농민전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종교는 봉기에서 아무런 역할도 못했다. 모든 농민은 경제적 요소에 의해 봉기했다.", "기독교의 외투를 걸친 무신론자에 불과하다.","최초의 영웅적인 공산주의자이나, 동시에 비극의 영웅이다. 아직 부르죠와 혁명이 막 시작되려는 시대에 공산주의사상을 가진 사람이었으므로"라고 말한 바 있다.
엥겔스가 언급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토마스 뮨쩌이다. 독일농민전쟁의 지도자 토마스 뮨쩌는 재세례파(태어나자마자 받는 세례 부정, 내면적 계시주장)의 지도자였다. 그가 직접적 사회개혁을 처음부터 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종교적 개혁이었으나, 후에 정치개혁을 하게 된다 종교를 매개로 근대화운동을 펼친 것이다. Luther는 이를 "난동" 으로, 농민들을 "폭도" 로 매도한 이후 Luther와 뮨쩌는 결정적으로 갈라서게 되었다.
뮨쩌는 "무식해서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성서를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순수한 영혼을 가진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나타난다.", "죽은 글자가 아닌 순수한 사고" 를 주장했다. 성서는 외부적인 것이고 교육적인 가치를 가진 오랜 역사의 기록일 뿐이라는 것이다(실제로 구약성서는 유대인의 역사서 임).
성령은 복잡한 이성에 왜곡 받지 않는 순수한 사고에 나타난다. 성령이 나타나면 인간은 성령의 내적 고민을 통해 '고난'을 겪게 된다. 성령->공포/ 혼란(고난의 단계)->자기 포기역사의 종말론적 단계에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참 신자는 무력을 사용하고 불신자를 제거, 참 신자로 이루어진 동맹(선민동맹)이 무력사용으로 불신자를 처벌하며 하나님 나라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그는 루터의 사상을 "문자주의 신앙"이라 비판했고, 민중을 역사의 객체(신의 은총을 받기만 하는 사람)로 본다고 비판했다. 뮨쩌는 민중을 행동의 주체로, 농노제를 부정하고, 교황제를 부정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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