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있음을 깊이 우려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에 대해 우리 국민이 그토록 깊은 애도와 슬픔을 보였던 것은 정치적 입장을 떠나 그의 죽음에서 지난 수 십년 동안 우리 사회가 피땀흘려 이룩한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공직자 비리 수사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성역없이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은 정당한 법집행이라 보기에는 정치적 동기를 의심하기에 충분한 것이었고 절차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다수 국민의 눈에 검찰수사는 표적수사 논란을 일으킬 정도로 노 대통령과 그의 측근, 가족, 친천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전방위 수사, 확정되지 않은 사실을 언론에 유포함으로써 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인격 모독적 수사로 비쳐졌다. 이는 검찰 스스로 밝힌 "절제와 품격 있는 수사"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언론 역시 확정되지 않는 사실을 여과 없이 중계함으로써 전직 대통령에게 견딜 수 없는 모욕과 수치를 안기는데 일조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시계를 되돌리고 있는 현 정부의 권위주의적 통치행태와 권력남용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본다. 작년 '촛불집회'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헌법에 보장된 시민 기본권인 언론, 집회, 표현, 결사의 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경찰에 구금되고,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위한 시민들의 집회가 불법으로 규정되며, 정부 입장과 다른 의견을 인터넷에 올린 사람이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집회를 열 수 있는 국민의 자유는 철저히 봉쇄되고, 공익에 헌신해온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불법시위단체로 분류되어 탄압받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국민 여론의 충분한 수렴 절차나 여야 합의 없이 6월 국회에서 미디어 관련 법안을 강행처리하려 함으로써 언론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현직 대법관의 촛불집회 재판 개입사건에서 보듯이 재판의 독립은 무너지고 있으며, 국세청, 경찰, 검찰 등 공안권력을 정권유지 목적에 동원하는 구시대적 행태가 부활하고 있다. 낡은 냉전적 인식에 기초한 대북정책은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켜 민족화해와 평화공영의 기조를 무너뜨리고 있다. 용산 철거민 농성에 대한 과격 진압이 초래한 참사는 정부와 정국 운영이 사회적 약자를 고려하는 진정한 포용과 화해의 방식이 아니라 일부 특권 집단의 이익만을 중시하는 편향적인 방식으로 흐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쟁력 제일주의의 정책기조는 우리 사회에 약육강식의 살벌한 양극화를 초래했고 사회적 약자들의 최소한의 생존권마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고 헌법을 수호하며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일은 정부의 위중한 책임이자 의무이다. 우리는 현 정부의 권위주의적 통치방식과 위헌적 권력남용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가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인권과 시민 기본권을 존중하고 사회의 다양한 집단들과 소통하는 열린 정치, 관용과 포용의 정치,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나아가기를 희망하며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전직 대통령 관련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공식 사과해야 하며,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는 전면적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1. 현 정부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언론, 집회, 출판, 결사,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고 보장해야 하며, 이를 위협하는 일체의 권력남용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1.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강압과 배척의 정치를 지양하고, 권위주의적 국정운영 기조를 쇄신하여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진정한 소통과 통합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경희대 2009년 6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