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아들 장가가는 데 꼭 와서 주례사를 해 달라는 큰 처형의 부탁 때문에 예정에 없이 한국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정에 없던 방문이라 일정을 넉넉히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 공식적인 휴가를 얻어 고국을 방문할 만큼 대만에서 오래 사역하지도 않았고, 공적인 일도 아니고 사적인 일로 휴가를 내서 해야 하는 방문이었기 때문입니다. 닷새 일정이었지만, 대만이 아무리 가까운 나라라 해도 외국인지라 이래저래 가는 길, 오는 길에 이틀을 버리게 되고, 실질적인 체류 기간은 3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하루는 대만으로 가져가야 할 물건들 사는 데 쓰고, 겨우 이틀 사람들 만나 인사하는 게 가능하다보니 제대로 시간 약속을 해서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와 지원 덕분에 잘 지내고 있다는 걸 몸으로 보여드리고 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뵙지 못하고 온 분들께 죄송스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대만에서 출발할 때는 이제 대만 생활에 어지간히 적응이 되었으니까 한국에 머무는 시간이 더 어색하고 낯설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한국에 도착해 보니 사람들 사는 모습은 한국을 떠날 때와 다를 바 없어서 1년 넘게 떠나 있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시 대만행 비행기를 타고 타이베이 공항에 내려 여전히 거의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어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대만어가 뒤섞인 사람들의 말소리를 듣는 순간, ‘아, 내가 낯선 땅에 다시 발을 디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외로움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의 느낌이었고, 이제는 다시 대만에서의 일상생활로 돌아와 있습니다.
지금 창롱대학은 방학 중입니다. 그러나 제 책상이 있는 교목실은 행정부서여서 다른 행정부서와 마찬가지로 출근을 합니다. 행정부서들은 방학 중에 신입생 모집하고 새 학년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바쁜 편입니다. 교목실은 그런 일과는 관련이 없지만, 행정부서로 되어 있는지라 함께 출근을 합니다. 그러나 정상 근무를 하는 건 아니고 오전 근무만 합니다. 그러나 일단 학교에 나와야 하고, 휴가도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서로 일정을 조정한 후 학교에 보고를 하고 가야 합니다. 저는 교목실 사무실에서 일하기는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어문중심(Language Center) 소속 강사여서 굳이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교목실 다른 목사님들이나 직원들에게 위화감을 줄까 해서 함께 출근을 합니다.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 있으면 자칫 생활이 느슨해져서 오전 시간을 허비하기 쉬운 것도 출근을 하는 한 가지 이유입니다. 새 학기에 시작할 새로운 강의들 준비를 하려면 어차피 내 책상 앞에 앉아야 하고, 집에는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자료를 검색하려고 해도 학교에 와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 나오는 것이 이래저래 유용합니다.
이전에 살던 집보다는 훨씬 시원하기도 하고 여름에는 전기 요금도 더 비싸고 해서 아직 에어컨을 켜지 않고 지내기는 하지만, 기온이 최저 28도, 최고 34도 이렇게 되다보니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아내는 견디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함께 시원한 학교 도서관에 와서 각자 중국어 공부를 합니다. 학교 건물들은 방학 중에는 근무를 하는 오전에만 냉방이 됩니다. 오후에도 냉방이 되는 곳은 도서관뿐입니다. 그나마 방학 중에는 도서관도 5시에 문을 닫기 때문에 두세 시간밖에는 머물 수 없지만, 아내에게는 기분 전환의 기회도 되고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기회도 되어서 저는 평상시처럼 오전, 오후로 하루 두 차례씩 학교를 오가고 있습니다.
이런 무더위에도 대만에서는 세계적인 체육대회가 열립니다. 바로 월드 게임(세계운동회)입니다. 월드 게임은 주로 속도와 체력을 겨루는 본격적인 체육 대회인 올림픽과 달리 여가와 친선 중심의 체육 대회입니다. 1980년 비 올림픽 경기 종목들로 시작된 월드 게임은 올림픽이 개최된 다음 해에 열리는데, 이번 대회는 대만의 제2 도시인 가오슝에서 열리게 되었고, 그래서 대회 이름이 "2009 가오슝 세계 운동회(2009高雄世界運動會. The World Games, 2009 Kaohsiung)"로 되어 있습니다. 이번 대회에는 32개 종목에 걸쳐 경기가 진행됩니다. 경기 종목을 보면 수상 구조, 수상 스키, 카누 폴로, 핀 수영, 용 보트 경기, 당구, 볼링, 가라데, 플라잉 디스크, 바디 빌딩, 스쿼시, 댄스 스포츠, 롤러 스케이트 하키, 암벽 등반, 스쿼시, 소프트 볼, 비치 배구, 무술. 행글라이더 등 다양합니다. 코르프 볼, 피스트 볼초우크 볼 등 저에게는 생소한 종목도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5천여 명의 선수들이 참가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 대회에 대한 관심이 비교적 적은 편이지만, 그래도 롤러 스케이트, 스쿼시, 댄스 스포츠, 수상 스키, 보디 빌딩, 당구 등에 50여명의 대표단을 보낸다고 들었습니다. 아무튼 무더위가 시작되는 시기라 선수들이 상당히 고생을 하리라 생각되고, 아무리 운동으로 다져진 선수들이라 해도 야외 경기들의 경우 쓰러지는 선수들도 속출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올림픽 대회 주최국들은 장애인 올림픽 대회도 개최해야 하는데, 월드 게임도 그런 원칙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9월 5-15일에는 타이베이에서 청각장애인 올림픽 대회(2009臺北聽障奧運)가 열립니다. 9월은 조금 덜 덥지만 태풍이 염려되고, 7월은 더위가 염려됩니다. 그래도 세계적인 체육 행사를 유치했으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만이 중국의 방해를 받지 않고 국제 무대에서 활동을 할 수 있었다면 아시아에서 우리나라보다 먼저 올림픽 대회를 유치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한국도 무더위와 장마의 계절입니다. 모두들 건강하게 지내시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쉼과 재충전의 시간도 가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쁘게 걷던 발걸음을 멈추고, 나는 무엇을 위해서, 무엇에서 삶의 보람과 즐거움을 찾으며 사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은가 합니다. 그것이 시행착오도 줄이고 자신의 삶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2009년 7월 13일,
대만에서 구창완 올립니다.
* 가오슝 월드게임 주 경기장 사진입니다. 고정좌석 4만개, 임시좌석 1만5천개로, 모양은 용의 형상이고, 지붕 전체를 태양전지로 설계해서 경기장에 전력을 공급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