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ne Welt/타이완 이야기

09-08-10

행복나무 Glücksbaum 2009. 8. 10. 23:45

샬롬!

 

작년 봄 저희가 대만에 도착했을 때, 저희 부부에게 대만의 매운 맛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날씨가 무척 더웠습니다. 아직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없는 상황이어서 땡볕에 걸어 다니고, 바깥보다 더 더운 단층 슬라브 집에서 지내느라 고생을 많이 했는데, 나중에 들으니 다른 해보다 유독 더운 봄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금년도 지난 해 못지않게 더웠습니다. 이유는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사는 타이난 지역은 특히 가뭄이 심해서 지난 가을부터 거의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방송에서는 100년 만에 최저 강수량을 기록했다고 했고,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10월쯤에는 식수난을 겪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며칠 전에 드디어 태풍이 하나 상륙했습니다. 그 동안 태풍이 대만 외곽으로 비껴가기만 하더니 제8호 태풍 모라꼿(莫拉克) 호가 드디어 대만 섬을 관통하고 지나간 것입니다. 애초에 기상청에서는 이번 태풍은 강도 ‘중’, 크기 ‘중형’ 태풍이라고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대만에 가까워지면서 강도가 ‘강’으로 높아졌고, 크기도 ‘대형’ 수준으로 커졌습니다. 무엇보다 속도가 느려져서 대만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강풍에 가로수가 뽑혀 쓰러지고 건축 가설물들이 떨어져 나가더니 폭우로 곳곳에서 가옥이 침수되고 도로가 물에 잠겨 통행이 불가능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태풍으로 3일동안 타이난에서는 2000밀리의 비가 내렸고, 조금 남쪽의 핑동 지역에서는 2600밀리, 조금 북쪽의 아리산에서는 2700밀리 이상의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한국의 연평균 강수량이 1245밀리인 걸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렸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태풍이 빠져나간 뒤로 남서풍이 비구름을 몰고 와서 아직도 날이 흐리고 간간이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통계가 다 나오지 않아 피해 규모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단 기간에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린 것은 50년 전 8월 7일 이래로 최대라 합니다. 태풍이 가장 위력을 떨친 날이 8월 8일이었기 때문에 50년 전 87사태 이래로 이번에는 88사태를 맞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 달 동안 가뭄 때문에 농업용수 공급 중단을 이야기하던 저수지들은 이제 물이 넘쳐나고, 집이 떠내려간 사람들, 아직도 집이 물에 잠겨 있는 사람들은 넋을 잃고 있습니다. 태풍이 막 상륙했을 때 이미 농작물 25%가 피해를 입었다고 했는데, 농민들의 피해는 더 커질 것 같습니다.

 

태풍 때문에 지난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전국 거의 대부분의 지역이 휴무, 휴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월요일에도 여러 지역이 휴무를 하고 있습니다. 태풍 때문에 8월 8일 '아버지 날'(父親節)은 경황없이 지나갔습니다. [중국어로 아버지는 '빠빠(爸爸)'이고, 숫자 8은 '빠(八)'입니다. 그래서 대만에서는 8월 8일을 '아버지 날'로 지킵니다.]

 

태풍은 물론 많은 피해를 남깁니다. 강변에 세워진 온천 호텔이 쓰러지고 가옥들이 떠내려가는 장면이 계속 TV화면에 비쳐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대만에서 태풍은 필요악 같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태풍이 몇 개 지나가 주어야 무더위를 가라앉히고 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끔찍한 기억이 될 것입니다.

 

저는 아직 방학 중이어서 학교, 도서관을 오가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방학 중에 중국어 공부에 집중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지만, 더위도 더위려니와 나이 탓에 오래 집중해서 공부하게 되지를 않습니다. 아내는 짜증이 날 때면 '젊을 때도 하기 싫어서 안 하던 공부를 해야 하다니, 이 나이에 웬 고생이람...'하며 투덜대곤 합니다. 그래도 저보다 더 열심히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나 어학공부란 게 원래 그렇듯이 좀처럼 실력이 는다는 생각이 들질 않아 답답합니다. 실제로 말이 들리질 않고 입에서 말이 나오질 않습니다. 그리고 방금 사전에서 찾았던 글자를 다시 찾는 일이 허다합니다. 그래서 중국어 교재에서는 '느린 것을 걱정 말고 멈추는 것을 걱정하라(不怕慢就怕站)'는 속담을 소개하면서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제가 있는 타이난은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古都)입니다. 그러나 타이난에는 국제공항이 없어서 오기가 쉽지 않지 않습니다. 타이베이에서 오려면 타오위안 국제공항에서 고속철도를 타고 두 시간 가까이 와야 하고, 가오슝 국제공항에서 내리면 고속철도로 한 시간 이내에 오지만 한국에서 오는 비행기 편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 여행사들의 대만 관광 상품은 북쪽의 타이베이 지역과 북동쪽의 해안과 절경이라 할 수 있는 화롄의 협곡을 둘러보는 것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물론 가장 오래된 도시라는 타이난의 고작 350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매력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남부 지역은 북부 지역과는 자연 경관 자체가 다릅니다. 그리고 남쪽 끝에는 컨딩(墾丁)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해변지역이 있습니다. 그래서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관광 상품도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한국 여행사들의 생각이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듯합니다.

 

창롱대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한국 대학들이 있어서 손님들이 오시면 저도 관광을 할 수 있게 하려고 학교의 배려를 해 주어서 몇 차례 함께 타이난 시내를 관광했지만, 타이난이 관광지로 꼽는 공자 사당(孔子廟), 군 사령부 건물이었던 츠칸로우(赤嵌樓), 안핑 요새(安平古堡), 네덜란드 사람들이 세운 포대(億載金城) 등은 규모도 크지 않고 사실 역사도 길지 않아 큰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그런 곳보다는 치메이 박물관이 저에게는 더 큰 감동을 주었고, 타이난에 오시는 분이 있다면 꼭 그곳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치메이 박물관은 대만의 큰 기업 가운데 하나인 치메이(奇美) 그룹이 세운 박물관입니다. 치메이 공장들이 있는 부지 가운데 세워져 있어서 주변 환경은 좋지 않지만, 박물관의 내용물은 기대 이상입니다. 음악과 미술에 관심이 많은 회장과 가족들의 개인적인 취향에서 수집이 시작되었다가 나중에서 기업 차원에서 체계적이고 집중적으로 수집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내용물은 대만 것이 아니라 서구를 중심으로 한 해외 것이지만, 방대한 양의 박제품들, 무기, 악기, 화석, 공예품, 가구, 조각, 그림 등등 정말 다양한 영역에 걸쳐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을 둘러 본 아내는 타이베이의 고궁박물관은 물론 전시품의 역사적 가치나 소장품의 양으로 보아 세계적인 박물관임에 분명하지만, 다 중국 유물들이어서 구경하기에 단조로운 편이지만, 이곳은 전 세계의 다양한 것들을 볼 수 있어 보는 재미가 고궁박물관보다 나은 것 같다고 평을 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치메이 기업은 이 좋은 박물관을 예약제로 무료 개방하고 있었습니다. 삼성 기업이 기업의 사회 기여를 내세우며 미술관을 운영하면서 비싼 입장료를 받는 것을 보고 화가 났던 저에게 치메이 박물관의 무료입장은 신선한 제도로 받아들여졌습니다.

 

 

2009년 8월 10일,

 

대만에서 구창완 내외가 올립니다.

 

 

           

 

   

치메이 박물관 내부는 사진 촬영 금지구역이어서 소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입구의 마당에는 여러 유명 조각품들의 복제품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기념촬영도 할 수 있는데, 이태리에 가서 실물을 보지 못한 저에게는 그 가운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예수의 시신을 안고 슬퍼하는 마리아)상과 다윗상이 역시 압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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