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태풍 모라꼿이 대만에 반세기만에 최악의 피해를 입혀 ‘88수재(水災)’라는 말을 만들어내고 지나간 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그 후로 큰 비가 없어서 또 다시 재해를 당하거나 재해 복구에 어려움을 겪는 일은 없었습니다만, 재해 복구는 여전히 답보 상태에 있는 듯합니다. 특히 침수 지역에는 엄청나게 많은 토사가 쌓여서 어떻게 손을 써야 좋을지 모를 상태이고, 시신 발굴도 거의 포기 상태에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아직도 만족할 만한 복구 지원이나 보상 대책 같은 걸 내 놓지 않고 있어서 수재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8월 27일 현재로 공식적인 사망자 수는 543명이고(마을 하나가 통째로 매몰되어서 더욱 사망자 수가 많아졌습니다. 그 지역에 있던 초등학교는 학생수가 3분의 1로 줄었다고 합니다), 농림축산어업 피해액은 145억6천만 대만 달러(5530억 원) 정도로 집계되었습니다. 초기에 정부는 50억 달러 정도의 피해가 났다고 발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피해 규모가 커져서 결과적으로 그 3배 규모가 되고 말았습니다. 도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인명 피해는 주로 산악 서부의 중남부 지역에서 났지만, 농경 피해는 거의 전국에 걸쳐 발생했습니다. (왼쪽 도표가 인명피해, 오른쪽 도표가 농어민 피해 통계입니다. 보라색이 가장 피해가 큰 지역입니다.)
빨리 피해복구를 마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 많은 수재민들이 임시 대피소에서 단체 생활을 하고 있고, 생활환경이 좋지 않기 아니기 때문에 재해 지역에서는 전염병이 돌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H1N1 인플루엔저가 확산되고 있던 터라 더욱 방역 문제가 큰 걱정거리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만에서는 그 동안 1천여 명의 신종 플루 환자가 발생했고, 현재 백 여명이 입원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6명이 사망했습니다. 발병 상황은 한국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아무튼 한국도 마찬가지겠습니다만, 대만도 개학과 함께 신종 플루에 대한 경계를 한층 더하고 있습니다. 대만 정부는 '325 휴교 건의 표준안'이라는 걸 발표했는데, 내용인 즉, 고등학교 이하 학교의 동일 학급에서 3일 이내 2번 이상의 발병 사례가 발생하면 해당 학급은 5일간 수업을 금하고 환자는 회복 후 24시간이 지나야 수업에 복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재해를 당한 사람들 가운데 불교 신자들이 많아서 민진당에서는 달라이라마를 초청해서 사망자들과 수재민들을 위로하기 위한 법회와 강연회를 열었습니다. 달라이라마는 중국과의 외교문제가 걸려 있는 인물이라 그를 초청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있었지만, 국민당 정부는 일단 그의 입국을 허락했습니다. 태풍에 대한 늑장 대처로 지지도가 떨어진 마잉주 정부가 민심을 달래기 위해 달라이라마의 방문을 허락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달라이라마는 대만이 지금처럼 중국과 밀착하려고 하지 않던 시절에 두 번 대만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한 번은 마잉주 대통령이 타이베이 시장이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만 방문을 승인하기는 했지만, 정부는 중국의 반발을 고려해서 그에게 정치적 행보를 자제할 것을 요구했고, 달라이라마도 자신은 순수하게 종교적 목적에서 방문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국제 기자회견 일정을 취소하는 등 나름대로 대만 정부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의 방문이 정부와 무관함을 나타내기 위해 정부는 대통령과의 면담 시간을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달라이라마 측이나 대만 정부 측이나 모두 나름대로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달라이라마를 중국 분열을 획책하는 인물이라고 비판하면서 그의 대만 방문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고, 그 불만의 표시로 중국은 하얼빈, 지난, 칭다오, 항저우 등의 큰 도시에서 가질 예정이던 직항 정기 노선 개항식을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달라이라마는 지난 8월 30일 저녁에 도착해서 어제 대만을 떠났습니다. 그가 대만에 머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가 방문해서 자신들을 정신적으로 위로해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시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에나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중국과의 통일을 주장하는 단체 등 일부에서는 그의 대만 방문이 대만과 중국의 통일과 관계 개선에 악영향을 끼치는 정치적 행보라며 그의 방문에 항의하는 시위를 했습니다. 항의 시위대 가운데는 지금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피해 복구라고 주장하는 피해 지역의 몇몇 기독교인들도 있었습니다만, 종교적 대립을 하는 것 같아 그리 적절한 행동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비록 종교가 다르다 하더라도 영적, 정신적 지지를 가볍게 생각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스스로 신앙의 토대를 부인하는 자가당착적인 행동일 수 있기 때문에 보기에 조심스러웠습니다.
아무튼 이번 태풍 피해 복구는 최대 3년을 내다볼 만큼 장기간에 걸친 작업이 될 전망입니다. 따라서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 준다고 하는 것은 힘들지만 중요한 일임에 분명합니다. 사랑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인내와 한결같음을 필요로 합니다.
학교는 내일 기숙사를 개방하고 새 학년을 준비합니다. 정식 수업은 14일부터 시작하지만, 이번 월요일 신입생 시업식을 시작으로 2009학년(여기에서는 1911년 건국을 기준으로 98학년이라 부릅니다)의 새 학년을 시작합니다. 저는 이번 학기에도 한국어 두 강좌와 신입생 필수과목인 “창롱정신”(지난 학기까지 “인생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던 과목인데 학교의 기독교정신을 조금 더 강조하기 위해 개편을 했습니다) 두 강좌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영어성경강독 과목을 신청했습니다만, 아직까지 기본 수강신청 학생수에 미달해서 지난 학기처럼 또 다시 폐강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학생들과 성경을 함께 읽으며 기독교 신앙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가지려고 합니다만, 학생들의 참여가 적어 좀처럼 성사되질 않고 있습니다. 성경이나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적어서라기보다는 역시 ‘영어’라는 언어 문제가 걸림돌이 아닌가 싶습니다. 학생들이 용기를 내서 강의에 관심을 가지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아직 최저기온이 27도 아래로 내려가질 않고 낮 최고 기온은 여전히 34도를 오르내리지만, 그래도 가을의 문턱입니다. 금년에는 더 이상 태풍이 지나가지 않고 기온도 빨리 떨어져서 피해 복구하는 사람들이 조금은 덜 힘이 들길 바랍니다. 또 한국에서도 즐거운 소식들이 들려오길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변함없는 관심과 지원을 보내주시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2009년 9월 4일
대만에서 구창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