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좀처럼 기세가 꺾일 줄 모르던 더위가 갑자기 고개를 숙였습니다. 북쪽 지역에서는 멀리 있는 태풍의 영향으로 여러 차례 비가 내려서 기온이 떨어졌고, 제가 사는 남쪽 지역에서는 강풍이 불면서 기온이 떨어졌습니다. 대륙과 대만 사이로 바람이 흐르면서 일종의 계곡풍 현상이 일어나서 바람이 강해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무튼 북쪽에서는 최저기온이 20도 아래로 뚝 떨어졌고, 남쪽에서도 거의 20도까지 기온이 떨어졌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아직 더운 날씨지만, 갑자기 기온이 떨어진 탓인지 이곳에서는 등교하는 어린 학생들의 경우 털모자, 털목도리에 털장갑까지 끼는 등 소란을 피웠습니다. 그러나 어제부터 다시 기온이 올라서 예년 수준으로 돌아갔습니다.
요즘 대만의 주요 이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 문제입니다. 한 달 여 전부터 이미 논란이 되어 오던 문제입니다만, 지난 2일 행정원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을 공식 발표함으로써 논쟁은 더욱 가열되었습니다. 이로써 미국산 뼈 있는 쇠고기가 11월 중순쯤 대만 시장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위생서장은 엄격한 행정적 검역 절차를 통해 내장이나 분쇄육의 진입을 막겠으며 특히 뇌, 척수, 눈, 머리뼈의 개방은 불가하다고 밝혔지만, 반대 여론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경우 대만 국내산 소의 경우 50마리에 한 마리 꼴로 검역을 하지만, 수입소의 경우 거의 1만 마리에 한 마리 꼴로 검역을 하고 있기 때문에 검역의 엄격성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소비자단체들은 국민투표 서명운동을 벌이면서 정부의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고, 소비자들에게 먹지도 사지도 말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야당인 민진당도 '재협상, 국회심사, 당분간 수입 금지, 법 개정을 통한 수입 제한' 등의 요구를 하고 있고, 집권당인 국민당 내에서도 반대하는 의원들이 많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이야기할 때면 꼭 한국을 예로 든다는 점입니다. 자기들은 한국 정부의 경우보다 훨씬 엄격한 조건 아래 수입 개방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이든 대만이든 개방하는 것은 마찬가지고, 문제는 미국의 압력에 있다기보다 고기를 많이 먹는 국민들 자신에게 있습니다. 일 년에 몇 차례 명절 같은 때나 별식으로 고기를 먹는 생활이 아니라 아무 때나 원하는 때면 고기를 먹을 수 있어야 하는 생활을 고집하는 한, 싼 가격에 대량으로 밀려드는 시장의 물결을 막을 길은 없습니다. 정말 이런 기회에 고기를 너무 많이 먹는 식생활에 대해 진지한 반성이 있었으면 합니다만, 그런 근본적인 반성 없이 유독 미국산 쇠고기 수입만 반대하는 것은 조삼모사와 같은 일이 아닌가 합니다.
하나님도 결국 육식을 허락하셔야 했을 만큼 사람들은 고기 먹기를 좋아합니다. 따라서 고기를 일체 먹지 말고 채소만 먹으라고 말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는 대안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절제는 필요합니다. 고기, 그 가운데서도 문제가 되는 쇠고기는 너무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건강 면에서 보면 쇠고기의 지방은 응고성을 가진 것이어서 돼지고기나 닭고기보다 혈압 관계 질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고, 상업적 쇠고기 생산은 환경 및 생태 면에서 너무 큰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환경운동가들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은 자동차도, 공장도 아니고 상업적 가축 생산(Livestock Farming), 그 가운데서도 쇠고기 생산이라고 말합니다. 농장 부지 마련과 사료 생산을 위해 자연 순환의 숨통과 같은 열대 우림과 산림을 마구잡이고 파괴하고 있고(아마존 열대우림의 70%가 이미 사료생산을 위한 농지로 개간되었고, 전세계 농토의 70%가 사료 생산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쇠고기 사료로 쓰기 위해 광대한 농토를 옥수수와 같은 단일 품종 생산 지역으로 바꿈으로써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고(전세계 콩 생산량의 90%가 동물 사료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엄청난 물을 사용함으로써 수질 오염의 주범이 되고 있고(쇠고기 1파운드, 곧 450그램 생산에 사용되는 물이면 6개월간 샤워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끼 채식 식사를 위해 채소를 생산하는 데 소비되는 물의 양이 371리터인 반면, 한 끼 육식을 위해 고기를 생산하는 데 소비되는 물의 양은 그 12배가 훨씬 넘는 4664리터라고 합니다.), 생산과 운송을 위해 많은 석유를 소비함으로써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 반대 못지않게, 어쩌면 그보다 더 열심히 벌여야 할 운동은 고기 덜 먹기 운동, 특히 쇠고기 덜 먹기 운동이 아닐까 합니다. 아무튼 이곳의 한 젊은 박사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느니 대만산 소의 똥을 먹는 게 더 안전하다며 직접 농장에 가서 쇠똥을 가져다가 샌드위치에 넣어 먹는 비디오를 찍기도 했습니다. 쇠똥 샌드위치를 먹고 나서 역겨워서 구역질을 해가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주장하는 그의 모습은 눈물겹도록 결연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미국산 쇠고기는 곧 대만 시장에 퍼질 것이고, 우리는 다 함께 그 후에 해야 할 좀 더 근본적인 대처 방안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최근 들어 지진이 발생하는 빈도가 높아졌습니다. 며칠 전에 제법 강한 지진이 있었는데, 방송에서는 자연재해 면에서 대만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 가운데 하나라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2005년 세계은행이 발표한 “주요 자연재해 지역(Natural Disaster Hotspots—A Global Risk Analysis)” 보고서에 의하면 대만 사람의 73%가 태풍, 지진, 산사태 등 3개 자연재해에 노출되어 있어서 대만은 자연 재해 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산세가 험하고, 그래서 접근하기 어렵기는 해도 자연이 아름답다고만 생각했지 위험하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고 지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진의 진원은 주로 동쪽 해안이나 중부 지역이어서 제가 사는 타이난은 비교적 강도가 약하게 느껴지기는 합니다만, 집이 흔들리는 걸 느낀 것도 여러 차례였고, 운전 중에 갑자기 차가 흔들려서 차에 무슨 이상이 생겼나 했더니 그 때 지진이 있었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며칠 전 지진은 10년 전 921 대지진 때 가장 피해가 컸던 난토우 지역이 진원이었는데, 놀란 그 지역 주민들 가운데는 밤에 집안에서 잠을 자지 못하고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찌하겠습니까?
새 학년이 시작되고서 다소 분주했고, 그래서 마음의 여유도 없었습니다만, 반 학기쯤 지나고 나니 이제는 거의 일상의 수준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직도 블로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새 자료를 올려놓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곧 블로그도 정기적으로 손질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2009년 11월 7일
대만에서 구창완 올립니다.
88태풍 때 많은 나무들이 하천변과 해안에 떠내려 와 골칫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원주민 교회와의 연합예배에서. 원주민 교회 가운데는 예배순서 담당자들이 화관을 쓰는 곳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