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낱같이 잘디잔 버드나무가
지붕 위 산 밑으로 보이는 객사(客舍)에서
등잔을 등에 지고 누우니 무엇을 또 생각하여야 할 것이냐
나이는 늙을수록 생각만이 쌓이는 듯
그렇지 않으면 며칠 만에 한가한 시간을
얻은 것이 고마워서 그러는지 나는 조울히 드러누워
하나 원시적인 일로 흘러가는 마음을 자찬하고 싶다
불같은 세상이라고 하지만
이 밤만은 그러한 소리가 귀에 젖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불이 있다면 아니 저 등불이라도 마시라면
마시고 싶은 마음이다
혹은 버드나무 아래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올지 모른다고
잠도 자지 않고 깨어 있는 이 집 둘째아들처럼
‘돈은 암만 벌어도 만족하여 지지 않는다.’
는 상인을 업수이 여기는 나의 마음도
사실은 오지 않을 기적을 기다리는 영원의 상인(商人)
만나야 할 사람도 만나지 못하고 가야 할 곳도 가지 못하고
나의 천직도 이제는 아주 잊어버렸다
이렇게 불빛을 등지고 한방의 친객(親客)들조차
무시하고 홀로 생각 아닌 생각에 젖어 있으면
언덕을 넘어오다 무의미하게 보고 온
눈 위로 나오고 눈 속에 파묻힌 도장나무 많이 심은 공원까지
생각이 나서 내 자신이 원시적인 사람처럼
원시적인 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설움을 어떻게 발산할 것인가도
자연히 알아지는 것인가 보다
그러니까 내 앞에 누운 나의 그림자조차
저렇게 금방 가늘어졌다 굵어졌다
제 마음대로 나종에는 채색까지 하고 있지 않는가 보아라
만나야 할 사람도 만나지 못하고 가야 할 곳도 가지 못하고
이제는 나의 천직도 잊어버리고
날만 새면 차디찬 곳을 찾아 차디찬 곳을 돌아다닌다
그러하니까 밤이 되면 객사를 찾아
등잔을 등에 지고 드러누워 있어야 할 게 아니랴
그러하니까 재미있는 생각이
굶주린 마음에서 유수(流水)같이 유수같이
쏟아져 나올 게 아닐까보랴
그것을 위하여는 일부러 바보라도 되어보고 싶구나.
시, 김수영, 『연합신문』, 1953년 10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