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älbs/화롯가 이야기들

사뮤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행복나무 Glücksbaum 2007. 6. 24. 09:12

  

막이 오르면 마른나무가 서 있는 황량한 무대, 허름한 잠바를 걸친 에스트라 공이 길가에 앉아 열심히 구두를 벗으려고 애쓴다. 거기에 낡은 연미복을 입고 더럽혀진 검은 넥타이를 맨, 블라디미르가 나타나 기묘한 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두 사람은 '고도'라는 사람을 기다리기 위하여 여기에 왔다.

블라디미르는 어제도 여기에 왔었다고 하고, 에스트라 공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블라디미르가 오늘이 토요일이라고 하자, 에스트라 공은 아니 금요일이다. 어쩌면 목요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여기가 정확히 어디인지, 지금이 며칠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오직 '고도'라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들은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고도를 기다리는지, 고도가 누구인지 조차 그들은 모른다. 밤이 오면 고도를 더 기다리지 않아도 된단다. 그리고 내일 또 기다리면 된다는 사실만 알뿐이다. 그들의 대화 사이에 스며 나오는 절망과 불안과 기대를 참아 가며, 그들은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엉터리 같은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시시껄렁한 장난에 빠져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곧 다시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그 때마다 어두운 기분이 되는 것이다.
제 1 막에서는 목에 밧줄을 메고, 두 손에 무거운 짐을 든 기계 인형과 같은 하인, 럭키를 조종하며 거만한 부자 `포조'가 등장한다. 그러나 제 2 막에서는 오직 하루라는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는데 `럭키'라는 사람이 벙어리가 되었고, 포조는 장님이 되어 등장한다.
언제부터 눈이 멀었느냐? 고 묻자 포조는 "시간 관념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언젠가 그 시각에 장님이 되었을 뿐이다."고 대답한다.
정신차려 보니 죽은 나무에도 잎이 돋아나 있다. 과연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 것일까? 불라디미르와 에스트라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거기에 제 1 막에 나타났던 소년이 다시 등장하여 "오늘도 고도 씨는 오시지 못합니다. 내일 다시 와서 기다려 주십시오."라고 같은 말을 되풀이할 뿐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리면 되는 것일까? 그러나 고도는 언젠가 반드시 올 것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이다. 오지 않을 까닭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확신하면서 불라디미르와 에스트라는 아무튼 하루가 지난 것에 대하여 안도의 숨을 쉬면서 퇴장한다.

"고도"는 영어의 `갓'(God), 즉 `신'을 뜻하기도 하고, 죽음을 상징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또는 어떤사람은 `포조'야말로 바로 `고도' 자신이라는 등 여러 가지 해석이 시도되고 있다. 아무튼 인간으로서 비참성 대하여 무력한 항의를 한다고 나 할까, 아니면, 인간의 냉철한 의식과 고독한 독백을 읽어갈 수 있다고 나 할까.

1953년 가을 바빌론이 극장에서 막이 오르자, 300회의 연속 공연의 기록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이 희곡에서 현대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어서 일까.



지은이

베케트(Samuel Beckett,1908 - )는 이어란트의 더블린에서 태어난 소설가, 극작가. 1938년 이후 파리에 머물러 살며, 1945년부터 프랑스어로 창작 활동에 정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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