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은 양말을 깁고 있었다. 전구를 양말 속에 넣어서 볼록 나오게 한 다음에 뒤꿈치를 바늘로 뜨고 있는데 전화 벨이 울렸다. 그분이 송수화기를 들자 푸른 강물에 조약돌 떨어지는 소리 같은 맑은 아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엄마야?"
그분은 웃음을 참고 대답하였다.
"전화를 잘못 건 모양이구나."
"죄송합니다."
그분이 송수화기를 놓고 다시 양말과 바늘을 집어 들었는데 전화 벨이 또 울렸다. 송수화기를 들자 조금 전의 그 목소리였다.
"엄마야?"
"아니라는데 그러는구나."
"아닌데…, 엄마가 거기에 꼭 계시다고 했어요."
"너희 엄마가 누구신데?"
"울 엄마는…."
말을 이을 것 같더니 전화가 끊어졌다. 그런데 다시 전화 벨이 울렸다. 이번에는 그분 편에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송수화기를 들고서 저쪽의 말만 들었다.
"엄마야? 엄마, 우리가 이사 가서 살고 있는 집이 어디인 줄 알아요? 작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값싼 간이 집들이 꼬불꼬불 줄지어 있는 달동네예요."
그분이 말을 하려는데 열어 둔 창으로 노래가 한 소절 넘어 들어와 송수화기로 흘러가 모양이었다.
저쪽 아이가 말하였다.
"그 노래는 엄마도 좋아하는 노래지요? 나도 좋아해요. 아빠도 좋아하고요. 참, 아빠는 지금도 누워 계세요. 벌써 3년째네요. 저는 며칠 전 오래 된 엄마의 가계부에서 엄마가 쓴 짧은 글을 읽었어요. 엄마는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고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셨더군요. 욕실로 달려가 세탁기를 돌려 놓고 선 채로 울다가 저한테 들켰다고도 했어요. 저는 기억에 없는데, 저는 엄마의 하얗게 깎은, 계란 같던 머리만이 생각나요. 병원이었겠지요. 엄마는 나를 꼭 껴안아주셨어요. 아, 엄마의 옷에서 나던 소독약 냄새가 지금 막 생각났어요.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와 벙어리 저금통을 깨뜨려서 엄마의 가발을 준비했어요.그러나 엄마는 끝내 집으로 돌아오시지 않으셨지요."
그분은 점점 아이의 이야기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아이의 말이 잠시 중단되어 있는데 창 너머에서 이번에는 소쩍새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의 말이 다시 시작되었다.
"엄마가 가 있는 동네에도 소쩍새가 사나 보죠. 소쩍새 울음소리를 들으면 슬퍼져요. 참, 엄마의 짧은 글 중에는 이런 대목도 있었어요. 사람들은 불행을 알면 행복도 알게 된다고. 하지만 나는 불행도 행복도 정지시키고이대로만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고요. 이대로 살아 있음 자체도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고 하였어요. 엄마, 그러나 아빠는 간혹 죽어버리고 싶다고 말씀하세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물을라치면 나한테 짐 지우는 것이 괴로워서 그런다고 대답해요. 아빠는 엄마가 떠나신 지 1년도 채 안되어서 사고를 당하셨어요.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 오시다가 차에 치인 거예요. 차는 그대로 도망가고 말았어요. 아빠의 병원비 때문에 집까지 다 팔았지만 척추를 다치신 아빠는 누운 채 퇴원을 하셔야 했어요. 할 수 없이 달동네로 이사를 했지요. 그리고 내가 나서서 돈을 벌어야 했어요. 매달 마련해야 할 방세도, 아버지의 약값도, 생활비도 있어야 하니까요."
그분은 손수건을 꺼내서 눈 밑을 눌렀다. 저쪽 아이의 말은 다시 계속되었다.
"저는 날마다 머리맡에 놓아 둔 사발 시계가 시끄럽게 새벽 네 시를 알리면 졸린 눈을 뜨고 일어나요. 주섬주섬 옷을 입고 집을 나서면 거리에는 아무도 없어요. 노란 가로등 불빛만이 야윈 호박꽃처럼 시들고 있어요. 한참 걸어가면 옹기점이 있는 골목에서 청소부 아저씨가 나와요. 연탄 가게가 있는 골목에서는 우유 배달 아주머니가 나오고요. 이 분들은 때로 내가 거꾸로 입고 나온 옷도 바로 입혀주시곤 해요. 버스 정류장 옆에 있는 신문 보급소에서 신문을 받아들고 나오면서부터 저의 발걸음은 빨라져요. 점점 날이 밝아지고, 거리에 사람들과 차들이 많아지면 저는 아예 뛰어야 해요. 학교를 가야 하니까요. 신문을 모두, 배달하고 집에 오면 아빠가 기다리고 계셔요. 우선 고무 호스로 소변을 보게 하고 세수를 시켜 드려요. 그리고는 전날 저녁에 해놓은 밥을 퍼서 아버지와 함께 먹고 학교로 가요."
그분은 창틀의 커튼 자락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바다에 밀물이 들고 있는지 바람에 소소히 파도소리가 묻어왔다.
"저한테 가장 아늑한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일요일 성당 미사 시간이어요. 성모님이 안아 주시고 있다고 생각되어서인지 세상 편해요. 그래서 그런지 마구 졸음이 와요. 어떤 날은 코를 골고 졸기도 해서 다른 아이들로부터 코골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어요. 그러나 코골이라고 놀려도 좋아요. 예수님도 계시고, 성모님도 계시고, 신부님도 계시고, 수녀님도 계시는데 그런 놀림 받는다고 내 쉬는 것이 줄어드는가요, 뭐. 그런데 어떤 아이들은 나더러 바보라고 하기도 해요. 선생님이 꾸중을 하고,개구쟁이들이놀려 대도 히히 바보처럼 웃기만 해서 그런가 봐요. 정말 나는 속이 없나 봐요. 누가 뭐래도 매듭이 생기지 않는걸요. 모두가 좋기만 해요. 지금 내리고 있는 햇빛도 좋고, 지나가는 구름도 좋고, 바람도 좋아요. 저기 저 달구지를 끌고 가며 누는 황소의 똥도 좋아요."
그분은 손바닥으로 송수화기를 막고 콜록콜록 기침을 하였다.
아이가 물었다.
"엄마, 기침을 참고 계신가요?"
그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문득 혼자 웃었다. 저쪽에서는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이가 돌돌돌 말을 이었다.
"엄마, 행복한 생각을 해보아요. 그러면 기침이 가라앉을 거예요. 엄마가 가계부 일기에 그렇게 써 놓았잖아요. 좁은 쪽마루 위에 무청이랑 토란대랑 고구마대랑 그리고 또 표고버섯이랑 꾀꼬리버섯이랑을 다듬어 널어놓고 보니 부자가 된 기분이 들어 기침이 멎는다구요. 저한테 있어 행복한 시간은 아빠와 함께 저녁밥을 먹을 때예요. 비록 콩나물국과 단무지 한 가지를 밥상 위에 올려놓고 먹을지언정 맛있어요. 아빠한테 그날 하루 밖에서 있었던 일을 도란도란 들려드리면서 먹는 저녁밥 시간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저는 언제나 저녁 밥상을 차려놓고 이렇게 기도해요. '하느님, 저에게 이만큼의 행복을 오늘도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 꼭 잊지 않겠습니다' 하고요. 엄마, 이만큼의 행복은 이래요. 아빠의 밥숟가락 위에 단무지를 올려 놓을 수 있는 행복, 설거지를 하면서 노래부를 수 있는 행복, 물을 데워서 머리를 감을 수 있는 행복, 그리고 반신 불수지만 살아계신 아빠 곁에 나의 잠자리를 펼 수 있는 행복, 또 잠자다 보면 아버지는 성한 팔로 나의 팔베개가 되어주시곤 하지요. 그것도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어요? 이만큼, 양팔을 벌려도 벌려도 넘쳐나는 행복이지요."
아이가 숨이 찬지 말을 쉬었다.
주위가 그렇게 고요할 수가 없었다.
유리창에서 되비친 저녁 햇살이 그분이 붙들고 있는 송수화기를 반쯤 익어 가고 있는 고추처럼 발그레 물들이고 있었다.
아이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지난 달부터는 아빠한테도 일감을 얻어다 드리고 있어요. 그동안 아빠는 일이 없어 혼자 누워 계시다 보니 생각이 만들어낸 귀신들한테 휩싸여 지내신 것 같았어요. 어떤 날은 혼자서 머리를 쥐어뜯기고 하고 어떤 날은 까닭 없이 화를 내시면서 성한 손에 집히는 것은 모두 집어 던지시곤 했어요. 나는 그러는 아빠를 보면 눈물이 나왔지만 입술을 꼭꼭 깨물면서 참아냈지요. 병원 의사 선생님한테 아빠의 이런 행동을 말씀드렸더니 아빠의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런다고 일감을 드려보라 하셨거든요. 마침 제가 신문을 넣는 신발 공장에서 신발 밑창오리는 일거리를 주셨어요. 그런 일은 아빠가 엎드린 채로도 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아빠는 이내 그 일에 빠져서 신경질을 내지 않게 되었어요. 얼마 전에는 아빠가 그 일을 해서 번 돈으로 고물상에 가서 중고 휠체어를 하나 샀어요. 이제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아빠를 거기에 태우고 가까운 빈터에 나가서 시원한 바람을 쐬어 드려요. 앞으로 돈이 좀 더 모이면 아빠가 나 없이도 혼자 휠체어를 굴려 바깥에 나다닐 수 있도록 문턱을 없애는 공사도 하겠어요."
그분은 송수화기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무릎을 꿇었다.
"주여, 이 기도를 들어주소서."
그러자 저쪽의 아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녜요, 엄마. 우리 하느님을 너무 괴롭히지 말아요. 이 세상에는 언제나 달라고 기도하는 어른들뿐이어요. 위로하려는 분들은 적고요. 저만이라도 하느님께 달라고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정말이어요. 기쁨을 드리고 싶어요. 내가 어려움 속에서 찾은 이만큼의 내 행복이 우리 하느님께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
저녁 종소리가 들려왔다. 종소리는 물 위에 번지는 바람결처럼 은은하게 일렁거렸다.
아이의 목소리가 종소리 너머로 들려왔다.
"엄마, 그곳에도 지금 저녁 종소리가 울리네요. 나는 엄마가 죽어서 가 계시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 몰라요. 저녁놀도 붉게 피는가요? 오늘 여기 내가 있는 곳에는 노을이 참 아름답게 들고 있어요. 이 시간에 엄마를 만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저 노을 속 방죽길을 엄마의 손을 잡고 걷고 싶어요. 엄마, 정말은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혼자 몰래 운 적이 많아요…." 그리고는 송수화기를 통하여 들려오는 소리는 점점 여려지는 종 울림이었다.
그분은 송수화기를 놓고 서편 창가로 다가갔다. 방죽 너머 바다 멀리 빨갛게 펼쳐진 노을 속에는 창살에 어려 있는 그림자처럼 아이 하나가 오롯이 스며들어 있었다. (글. 정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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