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노동절인 5월 1일은 베를린 크로이츠벡 같은 거리는 투석전으로 온 거리가 보도 블록들이 나뒹군다. 프랑스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독일의 노동운동은 전체적으로 급진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단다.
독일의 노동운동의 특색은 사회주의+자본주의적 요소가 결합되어 있었다는 점에 유의하기 바란다.초기부터 Bebel의 지도하에 Marxism을 채택했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란다. 독일은 사회민주당세력이 강했고, 영국과 미국처럼 노동조합주의로 빠지지도 않았다. 초기의 급진주의가 수정주의로 흘러갔는데, 이것은 사회민주당의 내부상황과 외부상황, 즉, 비스마르크의 "당근(사탕)과 채찍" 정책에 기인하는 거야. 비스마르크는 사회민주당을 탄압하면서도 SPD의 의회진출을 허용했고, 또한 일찍 사회복지제도를 실시하여, 노동자들과 노동운동 세력과 분리시키려 노력했던 것 같아.
1880년-90년대에 들어서면 민족주의가 매우 강조되었다. 민족주의도 서구형과 동구형이 다르다. 동구형의 대표자는 독일이다. 동구형은 민족이란, 하나의 민족은 혈통에 의해 타고 난 것이고, 공통의 언어, 문화, 역사를 공유한다고 믿는다. 서구형은 프랑스 혁명이후 등장하는데, 천부인권설에서 출발하여 개인의 일반의지를 강조하며, 국가란 사회의 계약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이 민족국가이고 대의제국가의 기초가 되었단다. 독일의 민족주의는 문화를 타고난 민족이라고 믿었고, 세계민족에 문화전파의 사명을 가졌다고 믿었다. 이것이 훗날 히틀러의 과대망상의 씨앗이 된 것이란다.
이 민족주의는 SPD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1차 세계대전에서 공채발행 승인문제로 당이 두 쪽이 났단다. 물론 처음에는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흐트 뿐이었으나, 점차 이들은 동조자를 규합하여 SPD를 탈퇴하고 만다. 아무튼 독일의 노동자들은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이중적 사고를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당시 독일노동자의 가정에 비스마르크와 마르크스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준단다. 믿어지니?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독일의 산업발전은 눈부신 것이었다. 당시 미국은 이미 세계적인 공업국이 있었는데, 미국의 자원보유고와 인구증가를 고려한다면, 그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 중요한 것은 독일이란다. 독일의 산업발전이 영국과 프랑스를 추월한 것이다. 신산업혁명, 즉 전기산업과 화학산업에서 새로운 기술발명은 독일을 유럽 제1의 산업국가로 올려놓았어.
독일은 지금도 유럽 제1의 산업국가가 아니니?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은 일시적으로 독일을 파멸로 몰아넣었단다. 특히 제2차 대전은 독일을 분단시키기까지 했지. 제1차대전이 SPD만 분열시킨 것에 비해, 제2차 대전은 독일이란 국가와 독일민족을 이념에 따라 둘로 쪼개어 놓은 거야. 지금은 다시 통일이 되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