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해인 1918년 11월 9일을 기해 빌헬름 2세가 발표한 황제 하야 성명과 오스트리아의 칼 1세의 통치권 포기(11월 11일), 헝가리의 독립선언 10월 17일 등 국내외 정세 변동은 독일에도 의회정치가 중심이 되는 바이마르 공화국이 1919년 8월 11일에 새로 출범하게 되었단다. 그러나 이 전쟁으로 독일은 180만 명의 전사자와 420만 명의 부상자가 발생, 국토는 황폐하고 국민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또한 영토의 할양, 공장 철거, 과도한 전쟁 배상금 등 14개항에 달하는 종전협정을 지켜야 하는 신생 바이마르 공화국으로서는 막중한 정치적, 경제적인 부담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화폐가치의 폭락과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에서는 과학사상 특기할만한 발명도 많았다.
한편 경제적인 측면으로는 가내공업 구조에서 기계공업체제로 전환하는 시기인 1929년 30년대의 세계공황은 패전국인 독일에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에 발생한 집단적인 실업자 사태는 독재정치가 다시 살아나는 온상을 만들어주었다.
1893년에 수상에 오른 아돌프 히틀러는 국가적인 비상사태를 이용, 독재적인 국가통수권을 모두 장악한 후 즉시 제국의회를 해산하고 정당활동을 금지시켰으며, 이에 반발하는 지식인들과 당원들을 구속했다. 또 잇달아 자신의 독재체제에 맞지 않는 모든 장애물은 가차없이 제거하였는데 그 첫 대상은 지식인 탄압과 유태인 처우 문제였다.
독일민족의 통일과 독일어가 통용하는 지역을 독일 제3제국에 통합시키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히틀러의 대담한 세력 확장정책은 가혹한 인종차별 정책으로 표면화되었고 더불어 유럽 전 지역을 제 2차 세계대전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이 전쟁은 국력을 모두 쏟아 부은 만큼 철저한 파멸로 끝났으며 또 다시 독일민족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일대혼란과 쓰라린 굴욕을 동시에 맛보아야 했다.
이후 제 3제국의 영토는 승전 연합국에 의해서 4개 지구로 크게 분할되었고, 옛 프로이센 제국은 오늘날 세계 지도 속에서 그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
'Eine Welt > 독일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일의 분단 (0) | 2002.02.24 |
---|---|
전후 복구의지와 세계냉전(冷戰)체제로 인한 분단 (0) | 2002.02.21 |
제2의 독일제국 탄생 (0) | 2002.01.23 |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0) | 2002.01.22 |
30년 전쟁과 그 결과 (0) | 2002.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