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ne Welt/한국 이야기

한민족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행복나무 Glücksbaum 2001. 10. 12. 09:38


얘들아,
너희들이 독일에 살면서 내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살아 왔을까 궁금할 때가 많을 것 같아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단다.
그것이 모여 내 나라 역사가 되었어.


1.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1만 년 전부터였다고 해. 실제로 간도 연해주 남만주 산둥반도에서 상하이 일원까지 라고 하면  욕심이라고 하겠지?
구석기 시대의 동굴 터나 암각화와 패총 등 신석기 시대의 움막터동굴터 그리고 청동기 시대의 비파형 청동검과 창 등 유골의 분석은 여러 종류의 두개골이 발견되는데
선주민들이 다양하게 살았던 흔적들로 여러 루트로 한반도에 들어 온 사람들이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우리 민족의 조상일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7,000 v. Chr.에 나타났을 것으로 봐.
그들은 동부 아프리카를 떠나 동쪽으로 이동해 오던 사람들일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을 거야.  새로운 고고학 발굴은 5천년 역사보다도 더 앞선 7천년- 1만1천년까지 더 올라간 선주민에 대한 역사를 고고학적을 연구하고 있단다. 전설, 신화, 구전, 설화 고고학적 발굴은 역사적 진실로 밝혀주고 있어. 한 무리가 나누어져 중앙아시아에서 시베리아 극동 아시아로 이동한 무리와 인도남부 해안을 따라 동남아시아로 그리고 동남아시아로 분리 이동하여 갔고, 또 다른 무리는 중앙아시아의 유목인으로서 알타이 산맥을 넘어 동쪽 방향을도 들어 요서, 만주, 한반도를 남몽골로, 아니면 인도네시아로 해서 한반도 의 중남부로 이동해 왔을 수도 있겠지. 그리고 또 한무리는 분리 이동하여 중국 동쪽 해안을 타고 황하, 요하로 해서 압록강을 넘어 한반도 서해안으로 남하애 왔을 수도 있겠지 않았겠니?
아니면 한 무리는 연해주로 해서 블라디보스토크로 두망강을 건너 한반도 동해안 쪽으로 해서 동해안이나 택백산맥을 타고 내려 밷두대간의 끝 경상도나 소백산맥을 타고 한반도 남부로 이주해 갔을 수도 있겠지.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중앙 아시아에서 몽골을 거쳐 동북 아시아 전역에 넓게 퍼져 살았다고 생각하고 있어.
비파형 청동검과 창, 청동거울 등, 그리고 토기(빛살무늬 토기)를 만들어 생활하고 요서지역의 고인돌 장례 등 방식, 구들난방 형식으로 보아 한 민족일 가능성이 크다는 구나.


1.2. 동이족
최초 나라 형태를 갖춘 사람들은 동쪽 뜨는 태양을 찾아나선 사람들이라는데 동이 족이 아닐까 하는 논의가 크게 일고 있어.
아시아 대륙의 각기 무리나 집단이 형성되어 그들의 언어로 전승되어 내려온 것을 각기 다른 문자로 기록하고 편집되었을 테니까 지역이름도 나라 이름도 제각각이어서 고대언어와 집대성 설화를 정리하고 편집하여 기록한 사람들이 다르니 유사로 사기로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은 작업이란다. 한민족이라고 정리하는 일은 같은 언어로 소통하는 사람들이 부족을 만들고 서로 모여 국가를 형성했을 테니 실타래를 풀거나 천으로 엮는 일은 많은 수고가와 노력이 필ㅇ요할 거야.
최초의 한민족의 구성원이 되는 사람들이 세운 나라를 환국, 단국, 선비국, 배달국, 그후 고조선이라 상정하였다,
각 국가는 오랜 세월 대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수세기 후에 그 나라를 이어 고조선을 세운 사람을 환웅의 아들인 단군 왕검이었다고 한다.
단군이 나라를 세운 이야기는『삼국유사에 이렇게 실려 있다.
그 나라를 단국이라 부르며 단군의 아들을 왕검이라 부르는 데
단군의 아들들은 한 국가의 지도자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학계의 논의도 거세다.

1.2.1 단군은 어떤 사람인가?
설화는 신화적으로 전승되며 민담으로 이야기거리로 입에 입으로 전승된다, 구전으로 전해져 온 것이라는 말, 입소문 같은 것.
하늘 나라의 왕, 환인에게는 아들이 있었다.
아들의 이름은 환웅이었다.
환웅은 사람들이 사는 땅에 내려가 사람들을 다스리며 살고 싶었다.
그래서 환웅은 여러 차례 자신의 소원을 아버지께 말씀드렸고, 마침내 아버지의 허락을 받았다.
그래서 환웅은 바람, 비, 구름을 다스리는 신들과 3,000여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다.
환웅은 이곳을 신시(神市)라고 불렀다.
환웅은 이곳에서 농사에 관한 일, 형벌, 사람의 목숨, 질병, 선악에 관한 일을 주관하며 사람들을 가르쳤다.
이때 환웅에게 곰과 호랑이가 나타났다. 그들은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환웅은 그들에게 마늘과 쑥을 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곰과 호랑이는 굴속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그들은 환웅이 시키는 대로했다.
그러다가 참을성이 없는 호랑이는 도중에 굴을 뛰쳐나가 버렸다. 그러나 곰은 꼬박 100일을 채웠다.
곰은 결국 소원대로 사람이, 여자가 되었다. 이 여성의 이름이 웅녀 이다.
환웅은 이 웅녀와 결혼했고 아들을 낳았다. 이 아들이 바로 단군 왕검이다.
단군은 자라서 평양성에 나라를 세웠고,
그 이름을 조선이라 하였다(2333 v. Chr.).
고조선에서 오늘날 사용하는 대통령의 칭호는 단군이라고 하는가?

1.2.2 이 이야기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단군은 제정 일치의 지배자로서 고조선의 성장과 더불어 주변의 부족을 통합하고 지배하기 위해 자신들의 조상을 하늘에 연결시켰다. 즉, 각 부족 고유의 신앙 체계를 총괄하면서 주변 부족을 지배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또 이 이야기는 계급의 분화와 함께 지배자가 등장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사회 질서가 성립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이야기에 들어 있는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사람 [홍익인간(弘益人間)]”는 것도 새로운 질서의 성립을 의미한다.

1.2.3 고조선은?
고조선은 사회, 경제의 발전을 기반으로 중앙 정치조직을 갖춘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우세한 무력을 바탕으로 활발한 정복 사업을 전개하여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였다.
또한 지리적인 이점을 이용하여, 예(濊)나 남방의 진(辰)이 중국 한(漢)나라와 직접 교역하는 것을 막고, 중계무역의 이득을 독점하려 하였다. 이러한 경제적․군사적 발전을 기반으로 고조선은 한과 대립하게 되었다.
이에 불안을 느낀 한 무제는 대규모의 무력 침략을 감행하였다.
고조선은 제1차의 접전에서 대승을 거두었고, 이후 약 1년에 걸쳐 한의 군대에 완강하게 대항하였으나,
마침내 왕검성이 함락되어 고조선은 멸망했다고 한다.(108 v. Chr.)

1.3 고조선 외에는 어떤 나라들이 있었는가?

1.3.1 부여
부여는 만주 송화강 유역의 평야 지대를 중심으로 성장하였다.
농경과 목축을 주로 하였고, 특산물로는 말, 주옥, 모피 등이 유명하였다.
부여는 이미 서기 1세기 초에 왕호를 사용하였고, 주변나라와 관계를 맺는 등
국가의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3세기 말 선비족의 침략을 받아 크게 쇠퇴하였고,
결국은 고구려에 편입되었다.(494).

1.3.2 고구려
고구려는 부여로부터 남하한 주몽에 의하여 건국되었다고 한다(37 v. Chr.). 주몽은 부여의 지배계급 내의 분열, 대립과정에서 박해를 피해 남하하여 독자적으로 고구려를 건국하였다. 고구려는 압록강의 지류인 동가 강 유역의 졸본 지방에 자리를 잡았다.

1.3.3 옥저와 동예
함경도 및 강원도 북부의 동해안 지방에 위치한 옥저와 동예는 선진문화의 수용이 늦었으며, 일찍부터 고구려의 압박과 수탈로 인해 크게 성장하지 못하였다.

1.3.4 삼한
한강이남 지역에는 일찍부터 진(辰)이 성장하고 있었다. 진은 고조선 사회의 변동에 따라 대거 남하해 오는 유이민에 의해 새로운 문화가 보급되면서, 마한, 진한, 변한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마한은 대전, 익산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경기, 충청, 전라도 지방에서 발전하였다. 진한은 대구, 경주 지역에서, 변한은 김해, 마산 지역에서 발전하였다.


1. Der Beginn der koreanischen Geschichte

1.1 Wer sind die Urahnen des koreanischen Volks?
Die frühesten Spuren der Besiedlung Koreas haben ein Alter von 700.000 Jahren. Das ist mit den bisher entdeckten archäologischen Funden auf der Halbinsel belegt. Ob die damaligen Menschen die Urahnen des koreanischen Volks sind, ist aber ungewiß.
Man vermutet, daß die Urahnen Koreas um das Jahr 10.000 v. Chr. im weiträumigen Gebiet gesiedelt haben, das sich vom Fluß 요 über Manschurei bis zur Halbinsel erstreckt. Sie lebten vom Ackerbau und bewahrten in Keramik auf. Außerdem lebten sie in Stämmen, und bis dahin gab es noch keinen Staat.

1.2 Was ist der erste Staat in der koreanischen Geschichte?
Dieser Staat hieß 고조선. Der Begründer dieses Staates war 단군 왕검. Die Geschichte der Staatsgründung steht im alten koreanischen Geschichtsbuch 삼국유사.

1.2.1 Wer ist 단군?
Der König des Himmels hatte einen Sohn namens 환웅, der unter den Menschen auf der Erde zu leben begehrte. 환웅 stieg mit 3.000 Getreuen zum Berg 태백 hinab und nahm den Titel „Himmlischer König‟ an. An der Spitze seiner Minister unterwies er das Volk in 369 nützlichen Künsten wie Landwirtschaft und Heilkunde, lehrte es die Grundsätze der Moral und verkündete das Gesetz.
Zu jener Zeit lebten in einer Höhle eine Bärin und eine Tigerin. Sie baten den König, er möge sie in Menschen verwandeln. Der König gab den beiden Tieren Beifuß und Knoblauch mit der Belehrung, sie sollten diese heilige Nahrung zu sich nehmen und hundert Tage lang das Sonnenlicht meiden. Die Bärin folgte den Anweisungen und verwandelte sich in eine Frau. Die Tigerin aber, die den königlichen Rat nicht befolgt hatte, blieb, was sie war.
Der König heiratete die Bärin-Frau, und sie gab ihm einen Sohn, der den Namen 단군 erhielt. Nachher begründete 단군 in 평양 einen Staat mit dem Namen 고조선(2333 v. Chr.).

1.2.2 Was bedeutet diese Geschichte?
Aus ihr könnte man einige Bedeutungen erschließen: 단군 ist sowohl der religiöse als auch der politische Oberherr. Die Behauptung, ihr Vorvater komme vom Himmel herab, führte unter den Stammesangehörigen geistigen Stolz herbei und gab ihnen Kräfte zur Besiegung und Beherrschung anderer Stämme.

1.2.3 Warum ging 고조선 unter?
Auf den Grundlagen der sozialen und wirtschaftlichen Entwicklung ist 고조선 zum mächtigen Zentralstaat geworden. Und mit der überwältigenden Heereskraft hatte er größte Ausdehnung, und versuchte den direkten Handel zwischen den Ländern im Norden und Süden Chinas zu verhindern und durch den Vermittlungshandel allein Profit zu haben. Das Ergebnis: Konfrontation mit dem chinesischen Han-Reich.
Um diese anhaltende Drohung beizulegen, drang das Han-Reich in 고조선 ein, und im Jahr 108 v. Chr. geriet 고조선 vollends unter chinesische Herrschaft.

1.3 Welche Stammesverbände bilden sich zu jener Zeit?

1.3.1 부여
Der Stamm 부여, der die fruchtbaren Ebenen entlang des Flusses 송화 in der nördlichen Manschurei bewohnte, konnte offensichtlich freundschaftliche Beziehung zum chinesischen Han-Reich etablieren, unter dessen Einfluß er im ersten Jahrhundert n. Chr. seine Blütezeit erlebte.

1.3.2 고구려
고구려 ist von 주몽 begründet, der aus 부여 stammt(37 v. Chr.). 고구려-Stämme, die als erste die Bronze- und Metallkultur von China übernahmen und sich dadurch einen waffentechnischen Vorteil verschufen, waren zur Sicherung ihrer Lebensgrundlagen immer wieder auf Eroberungsfeldzüge gegen 부여 im Norden und 옥저 und 동예 im Süden angewiesen.

1.3.3 옥저와 동예
An der Ostküste Koreas herrschten zu dieser Zeit die beiden Stammesverbände 옥저 und 동예. Anders als 고구려 waren aber beide Stämme von kulturellen Neuerungen ziemlich abgeschnitten, weshalb es 고구려 aufgrund ihrer überlegenen Waffen nicht fiel, 옥저 und 동예 zu werfen.
1.3.4 삼한
Von lange her existierte ein Stamm im Süden des Flusses 한강. Er übernahm neue Metallkulturen durch die Einwanderer, die von 고조선 aussiedelten, und sind in drei Stammesverbände; 마한, 진한 und 변한 unterteilt gewesen.

'Eine Welt > 한국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시대 후기(17세기 후반-1910)와 실학  (0) 2001.10.22
조선시대 전기와 훈민정음  (0) 2001.10.22
고려 시대(918-1392)  (0) 2001.10.22
삼국 시대  (0) 2001.10.22
"한반도 분단의 실상"   (0) 2000.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