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ne Welt/한국 이야기

"한반도 분단의 실상"

행복나무 Glücksbaum 2000. 11. 15. 10:41

 

[BMW, 독일 베를린선교부가 작성한 지도]

 

 

한반도의 남북 분단은 현대 세계의 정치구조와 이념체제가 낳은 죄의 열매이다. 세계 초강대국들의 군사적. 이념적 대결과 상호분쟁 속에서 한국민족은 속죄양의 고난을 당하여 왔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대한민국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노예상태로부터 해방되었으나 남북 분단이라는 또 다른 굴레가 민족을 속박하기 시작하였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군대의 무장을 해제시킨다는 명목 하에 설정된 남북 분단선은 소련과 미국의 냉전체제에 의하여 고착화되었고, 남북한에는 각자 서로 다른 정부가 수립되어 한반도에서는 지난 40여 년 간 군사적, 정치적, 이념적 갈등과 분쟁이 심화되어 왔다.

 

1950년 6월 25일에 일어난 한국전쟁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낳았으며, 국제적 갈등은 극대화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유럽 전 지역에 투하된 폭탄보다 더 많은 양의 폭탄이 투하되어 한반도는 초토화되었다. 이 전쟁에서 남한군 22만 명, 북한군 60여만 명, 중공군 1백만 명, 미군 14만 명, 유엔군 1만 6천여 명의 사상자가 났으며 전쟁 중에 병으로 사망한 숫자를 포함하여 2백 50만 명이나 되는 군인들이 희생되었다.

남한 50만과 북한 3백만의 민간인의 민간인 사망자를 합치면 6백만의 피가 이 땅에 쏟아진 것이다.(브리태니카 백과사전 1970년도판 통계임). 그리고 3백만 명의 피난민과 1천만 명의 이산가족이 생겼다.

 

6. 25를 전후하여 북한 공산정권과 대립했던 북한의 그리스도인들은 수단과 죽음을 겪어야 했으며, 수십만의 북한 그리스도인들이 고향과 교회를 버리고 남한으로 내려와 피난 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한국전쟁 동안 적지 않은 남한의 그리스도 인이 납치되었고 참혹하게 처형되기도 했다. 한편 공산주의 동조자들은 이념전쟁의 제물이 되기도 되었고 `부역자'라는 명목으로 사회에서 매장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전쟁으로 초토화된 한반도는 계속해서 동서 냉전체제의 국제 정치적 갈등과 반목에 휘말렸으며, 이에 따라 남․북한 간의 군비경쟁과 상호불신, 상호비방과 적대 감정도 점차로 증가되어 왔다. 한반도의 평화는 파괴되었다. 민족의 화해도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1953년 휴전 이후 일시적으로 여겨졌던 `휴전선'이 영구불변의 `분단선'처럼 되면서 남북 분단의 벽은 높아져 갔고 남북한의 두 체제는 단절과 대결 속에서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관계를 지속시켜 왔다.

남북한의 군비경쟁은 가속화되었고 북한 병력 84만과 남한 병력 60만을 합하여 근 1백 50만 군대가 무장 대치하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으며 한반도에 배치되었거나 겨냥되고 있는 핵무기는 이 땅을 없애버리고도 남을 정도의 가공할 파괴력을 보유하기에 이르렀다.

민족의 분단이 장기화되면서 양 체제에서 모두 안보와 이데올로기의 이름 아래 인권은 유린되어 왔으며, 언론과 출판, 집회와 결사의 자유는 억압되어 왔다. 그리고 서신 왕래도 방문도 통신도 두절된 양쪽은 한 땅덩어리 위에서 가장 멀고 가장 이질적인 나라가 되었다. 남북한의 교육과 선전은 상호비방 일색이며, 상대방을 상호 체제 경쟁을 통하여 약화시키고 없애야 할 철천지원수로 인식하게 하고 있다. 따라서 남북한 국민들은 동족의 생활과 문화에 대하여 서로 무지할 뿐만 아니라 서로 알아서는 안 되는 관계로까지 길들여져 왔다. 양 체제는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을 가장 무서운 원수로 인식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 대화의 길은 1972년 이른 바 7.4공동성명이 계기가 되어 트이기 시작하여 대화와 협력과 교류에 희망을 갖게 하였다. 1985년에는 남북적십자 회담이 재개되고 이산가족 고향방문이 이루어졌으나 그 수는 극히 한정되었으며 대화와 협상은 끝없이 공전되고 있는 실정이다.

 

남한 그리스도인은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북한에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있는지 조차 확인할 수 없었고, 분단이 고착화되는 과정에서 북한 공산정권에 대하여 깊고 오랜 불신과 뼈에 사무치는 적개심을 그대로 지닌 채 반공이데올로기에 맹목적으로 집착해왔다.

 

 

 

[25 Mai.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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