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ne Welt/타이완 이야기

15 0602 대만에서

행복나무 Glücksbaum 2015. 6. 3. 20:49

샬롬!

 

무더위가 시작되었습니다. 이곳 대만은 특히 오랜 가뭄 때문에 걱정입니다. 저수지의 담수율이 30% 안팎인 수준이어서 한 때는 지역에 따라 제한 급수를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두 주쯤 전부터 장마철이 시작되어 비가 내린 덕분에 담수율이 조금 오르긴 했지만, 흡족할 만큼 비가 오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벌써 장마철은 끝이 나고 있는 듯합니다. 이제 기댈 곳은 태풍뿐이지 않은가 싶습니다. 물 부족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제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 주보의 공동기도제목에도 가뭄 해소가 매주 들어가 있을 정도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절대적으로 물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물 부족은 심각한 생존의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물은 모든 생명체 간에 균등하게 분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존의 기본적인 요소들이 상업주의의 도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식량 부족으로 인해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기는 게 아니라 식량 분배가 상업주의의 통제 아래 들어가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처럼, 물도 점차 상업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지역에 따라 절대적인 물 부족 때문에 생존이 위협받는 곳도 있지만, 물이 대자본에 독점되고 판매의 대상이 되어서 생존을 위협받는 곳도 있습니다. 물이든 식량이든 생산을 늘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분배정의를 구현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오늘은 제가 일하고 있는 창롱대학교의 원주민 학생 동아래 문화행사를 소개할까 합니다. 원주민 동아리는 지난 10년간 매년 5월에 “웬셩나한”(原聲吶喊)이라는 타이틀로 문화행사를 개최해 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전통적 민속춤, 노래 등 단편적인 원주민 예술 작품을 모아 공연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어 왔는데, 금년 19일에는 한 편의 드라마 형식으로 공연이 진행되었습니다.

 

금년 행사의 큰 주제는 “쿨루마하”로 ‘귀가’라는 뜻을 가진 원주민어였습니다. 이는 대만 원주민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괄하는 주제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자기 땅에서 쫓겨난 원주민들은 고향으로의 회귀를 갈구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정확한 문자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그 역사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수천 년, 최소한 천 여 년 전부터 대만 섬에 원주민들이 살아왔습니다. 그들은 동남아 및 남태평양에 있는 여러 섬의 부족들과 혈통적, 문화적으로 유사성을 가지고 있어 같은 부족군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비록 부족 간에 언어도 다르고, 충돌도 끊임없이 있기는 했지만, 비교적 평화로운 시대를 오랫동안 지내왔습니다. 그런 평화는 1622년 네덜란드 군대가 상륙하면서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원주민들은 살해되거나 산으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40년 후인 1662년 명나라 장수인 정청공(鄭成功)이 청나라의 세력에 밀려 많은 한족과 함께 대만에 넘어와 네덜란드를 물리치고 지배권을 장악하면서 근대 대만의 역사인 한족 지배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수적으로 절대 열세였던 원주민 가운데 일부는 한족과 동화되어 새로운 부족(평지족)이 되었지만, 다수 원주민들은 더욱 깊은 산악으로 이동해 자신들의 전통 문화를 지켜나가는 고산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산족의 삶도 세상의 변화와 함께 점차 세상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고, 일본 점령기 동안 통치를 위해 점령지를 샅샅이 조사하는 일본 당국에 의해 완전히 세상에 노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문화적 자주성은 심각하게 위협당하기 시작했는데, 2차 대전 이후 대만을 장악한 장개석 정권에 의해 철저히 파괴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장개석 정권은 원주민들의 이름을 중국식으로 바꾸도록 강요했고, 수렵을 금지하고 원주민들을 산악에서 내몰기 시작했습니다. 전통적인 삶의 터전에서 내몰린 원주민들은 한족이 주류를 이룬 대만사회 속에서 문화적 차이와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이방인처럼 겉돌아야 했습니다. 원주민들은 새로운 삶의 형태에 쉽게 적응할 수 없었고, 개인과 가정의 삶은 피폐되어 갔습니다.

국민당 독재가 끝나고 대만이 민주화된 이후 원주민들은 조금씩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원래 삶의 터전과 문화를 회복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 조상들의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문화적 전통을 회복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주민어 이름을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고, 토지 회복의 목소리도 높여가고 있습니다. 금년 원주민 학생 동아리 행사는 그런 원주민들의 염원과 노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공연은 서막과 마지막 대합창을 포함해 모두 3부 20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제1부에서는 과거 평화롭게 살던 시절의 삶의 모습과 문화를 표현했습니다. 제2부에서는 일제 시대와 국민당 정부 시절, 토지에서 내몰리는 과정과 객지에서 방황하던 시절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제3부에서는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문화와 삶을 회복하고자 하는 염원을 표현했습니다.

이번 공연은 공인된 14개 원주민 부족 가운데 대만 남동부 산악지역에 주로 살고 있는 부농족(布農族)의 문화와 경험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습니다. 10주년을 맞아 장소도 교내에서 가장 큰 실내 공연장소인 콘서트홀에서 거행되었습니다. 무대 좌우 벽면에는 “집으로 가는 길이 왜 이리 먼가?” “원주민 기본법을 실천하라” “토지정의” “수렵장에 자유를!” “우리 토지를 돌려다오” 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걸어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초기 선교사들의 노력의 결과로 원주민들은 대부분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높은 이혼율,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가정의 문제 등 대만 원주민들의 삶은 현실은 밝지 않습니다. 정부에서 원주민들을 돕기 위한 정책들을 펴고 있긴 하지만, 약간의 수혜적 차원에 머물고 있을 뿐, 문제의 근원에 대한 접근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적으로 원주민 인구는 전체 대만 인구의 2%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다수 부족인 한족들의 목소리에 묻힐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작은 신음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창롱대학교는 원주민 학생들에게 특별히 많은 입학의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법 많은 수의 원주민 학생들이 창롱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창롱대학교에서 좋은 교육을 받아 원주민 사회의 발전을 위해 큰 기여를 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봅니다.


한국의 메르스 확산 소식이 매일 이곳 뉴스에 보도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메르스가 확산되지 않고 희생자들이 생기지 않기를 기도드립니다.

 

 

2015년 6월 2일

 

대만에서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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