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ne Welt/타이완 이야기

2013/05/02

행복나무 Glücksbaum 2013. 5. 4. 07:57

샬롬!

지난 4월은 아마도 해외에 거주하는 모든 한국인들에게 아주 괴로운 달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세계 언론들이 연일 북한의 “불바다” 이야기를 한국 소식으로 전했기 때문입니다. 4월 초에는 정말 한국에서 곧 전쟁이 다시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더욱 괴로운 것은 외국인들은 한국의 전쟁을 재미거리처럼 생각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국제 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고, 따라서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작 한국에 사는 한국인들이 전쟁에 대해 조금은 불감증을 가지고 있듯이, 외국인들은 한국 전쟁이 자신들에게 미칠 악영향에 대해 별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고, 그래서 한국 전쟁을 은근히 기다리는 듯한 느낌마저 주었습니다. 한국인으로서의 피해의식이었을까요?

 

아무튼 4월초 열흘 가까이 대만 방송들은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확신하고 생중계를 대비하는 자세로 한국소식을 전했습니다. 한국 소식의 제목은 노골적으로 “한국전쟁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다”였고, “한국 전쟁 개봉 박두”라는 태세로 한국의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남북 대치 상황에서 별별 위기상황을 다 겪어본 한국인으로서는 이번 사태도 북한의 내부 상황을 정리하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이고, 저러다 말 것이라는, 조금은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사태를 바라볼 수 있었지만, 외국인들의 경우에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전쟁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심리를 가지고 한국 사태를 바라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은 한 동안 개입한 전쟁이 없어서 그 동안 개발해 놓은 무기들의 성능을 획인해 볼 시험장이 필요한 상황일 뿐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도 자국 본토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므로 북한이 도발하기를 기대하고 있을 수 있고, 한국을 경쟁상대로 의식하는 나라들에서는 전쟁을 통해 한국이 침몰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전쟁 발발을 기대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국 인삼과 관련해서, 한국에서 전쟁이 터지면 수급에 차질이 생길 뿐 아니라, 토지가 오염되어서 적어도 6년 동안은 인삼 생산이 불가능할 것이므로 한국 인삼 값이 금방 5배는 오를 것이라면서 한국 전쟁이 대만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언급한 방송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대만의 방송들은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은 별로 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전쟁이 나기를 기대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우리 자신에게는 큰 수치요, 다른 나라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줄 이런 어리석은 대결을 왜 우리는 끝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정말 답답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나치 정권보다 더 철저한 통제사회인 탓에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는 북한의 상황은 남한 사람들의 부끄러움이기도 합니다. 외국인들은 남한 사람이든 북한 사람이든 다 한국인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위기 상황이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진정되어서 사람들의 관심도 다소 누그러든 것이 그나마 위로가 됩니다.

더 이상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으려면, 강국들의 이권다툼의 희생제물이 되어서 국토의 일부를 잃어버리거나 주권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남과 북 사이에 슬기로운 문제해법의 길을 찾아야 하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21세기에 존재해서는 안 될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북한 체제는 물론이려니와 아직도 냉전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남한의 많은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보면 통일은 아직 요원하고, 당분간은 이뤄져서도 안 된다는 생각조차 들곤 합니다. 남북이 통일된 후 사람들이 60년 한을 곱씹으며 복수의 칼을 휘둘러 무수한 생명을 희생시키고, 그를 통해 새로운 한을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천년의 역사를 무시하고 이 천년 전의 상태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무수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처럼 남하한 많은 사람들이 수십 년 전의 권리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시스템을 혼란에 빠뜨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런가 하면 통일 이후 지게 될 여러 가지 부담 때문에 통일은 뭐 하러 하느냐고 주장하며 분열로 인해 야기된 많은 부작용의 현실을 외면하고, 불안정한 것일 지라도 그저 지금 누리고 있는 부유함이나 유지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 모로 우리는 통일에 대해 너무도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게 하느님께서 아직 통일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조금 잠잠해졌지만,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한반도에 사랑과 정의에 기초한 참된 평화가 깃들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민족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를 하느님께 간구합니다. 그러나 지금 상태로는 우리에게 그런 지혜나 능력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일제에서 해방될 때 그랬듯이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하느님의 개입밖에는 길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조금은 절망적인 생각도 듭니다. 하느님께서 다시 한 번 그런 은혜를 우리 민족에게 베풀어 주실까? 그저 주님의 은혜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한국 상황에 대해 사람들이 물어오면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었던 한 달이었습니다. 전쟁 날 것 같던데 너 한국에 안 돌아갔느냐고 말하면 울분이 치솟았던 한 달이었습니다.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떳떳하지 못하면 선교는 불가능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는 한 달이었습니다.

 

 

2013년 5월 2일

 

대만에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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