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ne Welt/타이완 이야기

2013100 대만에서

행복나무 Glücksbaum 2013. 10. 10. 23:50

샬롬!

어제는 한국이 한글날로 공휴일이었고, 오늘은 대만이 쌍십절로 공휴일입니다. 그래서 쌍십절 기념행사 중계 소리를 들으며 이 소식을 전합니다.

쌍십절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난 것을 기념하는 날로, 중화민국과 국민당의 시발점이 되는 날입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대만 섬이 당시 국제사회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인물로 간주되었던 장개석에게 넘겨진 이후 손문에 이어 국민당의 지도자가 된 장개석은 쌍십절을 국가 건립 기념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공산당과의 경쟁에서 밀려 대만에 온 장개석이 대만에 먼저 와서 살고 있던 사람들을 탄압하면서 독재를 하자 많은 선이주 대만인들이 국민당에 대한 반감을 품었고, 그로 인해 국민당에 의해 제정된 국가 건립 기념일에 대해서도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대만에서는 년도를 표시할 때도 2013년이라는 서력을 쓰기보다는 중화민국 102년이라는 식으로 국가 건립 연호를 사용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국민당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 역시 그리 탐탁한 년도 표시 방식이 아닙니다.

어제 퇴근을 하면서 교목실 직원들에게 "國慶日愉快!"(건국 기념일 즐겁게 보내세요)라고 말했더니 모든 직원이 일제히 정색을 하며 '건국 기념일'이 아니라 '그냥 공휴일'일 뿐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공휴일 즐겁게 보내세요"라고 고쳐 말하고 나와야 했습니다.

그러면 쌍십절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건국 기념일은 언제일까요? 공통된 대답은 아직 없어 보입니다. 비록 쌍십절을 건국기념일로 지키는 데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해도 현재의 건국 기념일을 폐지하고 새로 제정하자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단계까지 여론이 모아진 상황은 아니고, 그래서 현 건국기념일을 다른 날로 바꾸는 문제가 공개적으로 논의된 적은 없습니다. 중화민국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만에서는 아직 나라가 제대로 건설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국가의 정체성 문제에 있어서 대만은 아직 혼란 상태에 있습니다.

건국 102주년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지만, 마잉쥬 씨가 이끄는 국민당은 아주 불편한 기념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타이베이 시 다른 한편에서 마잉쥬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는 대규모 시위가 준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5년 전 대통령 선거에서 마잉쥬 씨는 천수이볜 대통령의 지지도가 10%대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부정부패 문제로 천 대통령의 지지도는 바닥을 치고 있었습니다. 결국 마 대통령이 당선이 되었고, 오랜 민주화 운동 끝에 힘들게 첫 야당으로 창당되어 집권한 민진당은 8년만에 정권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야당이 강력한 지도력을 배출하지 못한 가운데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마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재집권 1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지지도는 최근 9.2%까지 떨어졌고, 외국 언론에서도 그가 대만의 대통력 가운데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야당에서는 과거 그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천 대통령보다 더 지지도가 낮은 그는 당연히 자발적으로 불러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최근 국민당을 곤경에 몰아넣는 또 다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지난 9월 초 국민당이 국회의장의 당원자격을 박탈해 국회의장 직을 잃게 만들었던 사건입니다. 당원자격 박탈의 구실은 그가 청탁을 받아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현 국회의장 왕진핑 씨는 국민당 소속이지만 야당 세가 강한 남부지역 출신입니다. 따라서 남부 지역 출신 야당 정치 지도자들과도 인관관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한 남부지역 야당 지도자가 몇 년 전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1심과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검찰에서는 다시 상고를 했습니다. 이에 그 야당 지도자는 연분이 있고 현 집권당의 지도자이기도 한 국회의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더 이상 귀찮지 않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전화를 받은 국회의장도 힘을 써 보겠다고 대답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전화 내용을 법무부에서 알게 되었고,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대통령은 청렴을 내세웠던 자신의 공약에 위배되는 행동이라며 격분했고, 당 대회를 통해 국회의장의 제명을 처리했습니다. 이로 인해 국회의장은 당적을 잃어 국회의장의 자격도 잃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단 며칠 사이에 마치준비하며 기다렸다는 듯이 일사천리로 처리되었습니다.

이에 국회의장은 이의를 신청하며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아직 국회의장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경축행사에서도 기념식 주석으로서 치사를 하고 있습니다.

사건이 터진 후 이는 차기 대통령 후보를 노리는 사람들이 경쟁자인 국회의장을 제거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벌인 권력 다툼의 산물이라는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 사건의 진위를 따지는 과정에서 법무부 장관이 어떻게 통화 내용을 알게 되었느냐는 점이 부각되었고, 도청 및 감시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당연히 법무부에서 도청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야당에서는 법무부 장관 퇴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마 대통령에게 까지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자칫 이 사건이 '대만 게이트'가 되어서 마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나게 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오늘 국회의장직을 빼앗으려고 했던 대통령과 그에 맞서 자기 자리를 고수하려고 하는 국회의장이 영부인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어색한 기념식을 치르고 있습니다.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고 마 대통령은 주장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가 중국에 대해 너무 저자세를 취해 대만의 격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경제면에서도 세계 평균 성장률 이상의 경제성장을 이룩했고, 아시아 네 마리 용 가운데서도 2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국민들은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임금은 제자리걸음을 해서 살기가 힘들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마 정권은 집권 제2기 초반부터 곤경에 몰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검찰총장 문제를 놓고 청와대의 개입 여부에 관심이 몰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아무튼 어느 나라,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정치 세계, 권력 다툼의 세계에는 늘 살벌한 기운이 감돌고 있는 듯합니다.

새 학년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신청자가 적어 걱정을 했던 영어성경 강독 강좌는 영어교육 강화를 내세우는 학교의 배려로 개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학기부터는 24시간 진행되는 학교 방송에서 설교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아침 시간에 방송되는 15분 프로그램으로, 그 동안은 교목실의 다른 목사님들만 참여하고 있었는데, 영어 설교도 시도해 보자는 의견이 있어 제가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영어 실력에 방송으로 나가는 것이라 부담이 되지만, 저 자신에게도 하나의 도전이라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동의를 해서 첫 달치 5회분 녹음을 마쳤습니다. 이제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게 점점 쉽지 않아지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마음의 젊음을 잃고 부단히 노력할 수 있도록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한국은 이제 가을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고 있겠죠? 일 년 내내 푸른색만 감도는 곳에 살다보니 아름답게 단풍이 든 한국의 산하가 그리워집니다. 늘 건강하시고,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2013년 10월 10일

 

대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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