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다산포럼의 싸이트에서 가져온 남기정 교수의 칼럼 전문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러일전쟁" (일본에서는 "일러전역")이라고 하지만, 처음부터 그 본질은 대한제국의 영토와 주권에 대한 러, 일 양 열강의 침탈이었습니다. 러시아도 대한제국 정부의 허가 없이 그 영토에서 전쟁 행위를 수행했지만 머지 않아 일본에 패배해 만주로 쫓겨났으며, 일제는 러일 전쟁 때에 감행한 한반도의 사실상의 군사 점령을 그 뒤에는 1945년8월까지 풀지 않았습니다. 일제의 대한제국 국권 침탈 행위는 그 당시의 국제법 ("만국공법")으로도 명백히 "불법"이었기에 고종이 해아 (海牙)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해 열강에 항의한 것이죠. 한데 지금의 한국 "정부"는 일제의 불법 국권 침탈을 마치 합법이었던 것처럼 보는 것이죠. 언어도단입니다. 할 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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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왜란 120년의 새해 단상
남 기 정(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갑진년 새해가 밝았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갑진왜란’ 120년이다. 연말까지 밀렸던 큰 숙제들을 마무리하고 숙제 때문에 읽다가 만 책을 새해 아침에 다시 집어들다가 깨우친 일이다. 황태연 동국대 명예교수의 『갑진왜란과 국민전쟁』(2017)이라는 책이다.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러일전쟁이 실은 러일 개전 3일 전에 대한제국에 대한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시작되었다고 하여 이 전쟁을 갑진왜란으로 부를 것을 주장하고 있다. 전쟁 이후 승리자의 역사서술에 익숙해진 나머지 국내외 대부분의 사가들에게 잊혀진, 또는 무시된 사실이다.
국뽕 사관이라고? 아니다! 러시아사의 세계적 석학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가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두 권으로 나온 『러일전쟁: 기원과 개전』이란 책에서다. 한국에는 이웅현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의 집념의 번역 끝에 2019년에 소개되었다. 그 장대한 책의 결론 부분에서 저자는 일본의 진해만 점령과 부산 및 마산의 전신국 제압이 ‘러일전쟁이라 불리는 전쟁’에서 최초로 수행된 군사행동이었으며, 이것이 한국의 주권과 영토에 대한 침략행위였다고 규정했다.
와다 교수의 책은 개전 상황을 묘사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를 이어 황태연 교수는 ‘갑진왜란’ 개전 후 대한제국 국군과 민군(의병)의 연합군이 일본의 침략전쟁에 맞서 전개한 ‘국민전쟁’의 양상을 재현하고 있다. 그것은 국권상실 후 항일독립투쟁으로 이어져 카이로선언을 쟁취해 냈고, 그로부터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으로 부활했다. 갑진왜란에 대한 국민전쟁이 대한제국과 대한민국 사이에서 역사적 연속성을 보증하고 있다.
갑진왜란 120년의 새해, 한반도 주변 정세는 다시 당시를 방불케 할 혼돈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세계는 우크라이나와 가자에서 두 개의 전쟁을 수행 중이다. 대만 총통선거, 미국과 러시아의 대통령 선거, 한국의 총선이 지역질서에 큰 지각변동을 가져올 것이 예상된다. 지지율 하락에 시달리는 일본 기시다 내각이 해산 총선거를 치른다면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또 다른 리스크요인이 된다. 게다가 북한이 남북관계를 동족관계가 아니라 ‘적대적 교전국가’로 재규정한 것이 지역질서에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그 변화가 어디로 향할지 모르지만 2024년은 세계사적 대전환의 결절점이 될 것이 확실하다. 공교롭게도 이는 갑진왜란 120년의 해를 맞이한 가운데 벌어진 일이다. 과연 우리는 두 번의 육십갑자를 지내고 얻은 성찰 위에서 2024년을 준비하고 있는가. 그에 대한 대답을 찾다가 우리 외교안보를 책임질 면면을 확인해 보고 우울해진다.
조태열 외교장관 후보자가 강제동원 피해 배상 관련 대법원 판결을 바라보는 입장이나 조태용 국정원장 후보자가 일제 강점기에 대해 보여주는 역사인식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들이 애써 판결금의 처리나 일본의 사과와 관련한 기술적 문제로 격하하려는 강제동원 피해 문제의 핵심은 ‘일제에 의한 한반도의 불법적 강제점령’ 문제다. 이와 관련하여 이들과 이들을 두둔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여주는 인식은 일본 정부가 그 불법성을 부인하며 일관해서 주장하는 것들과 닿아 있다.
그런데 ‘대한 국민’이 일본의 침략과 불법 강점에 맞서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의 건립과 재건에 이르기까지 부단한 국민전쟁을 치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정하는 역사인식에 서면, ‘국제법’을 거론하며 으르렁대는 일본의 논리는 지리멸렬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우리 외교안보를 책임지겠다는 사람들이 이에 대해 분명히 그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그들의 논리로 우리의 원칙을 폄훼하고 있다. 이런 언동을 보게 되면 갑진왜란 때, 일본의 승전에 환호하는 개화지식인들을 다시 보는 듯하여 암울하다. 그때야 메이지유신 이래 날로 강성해지는 일본이 눈부셔 보였다고 치자. 그런데 지금은 왜?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다시 갑진년 새해가 어떻게 열렸는지 세계를 둘러보고, 우리를 돌아보니 체증이 난다. 남의 논리로 머리가 가득한 사람들에게 이런 혼돈의 시대에 우리 역사를 맡길 수 없다. 국민의 대표가 그런 사람들이라면, 국민들이 다시 ‘국민전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16.Januar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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