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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시오-코르테스의 선거 운동 방식

행복나무 Glücksbaum 2024. 4. 4. 15:11


보스턴 대학교 졸업 후 뉴욕 브롱크스에서 가난한 집안을 돕겠다고 식당 종업원과 바텐더로 일하던 ‘초짜 정치인’인 1989년생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가 28세 때, 10선 경력의 같은 민주당 하원의원을 예비선거에서 꺾고 본선에서는 78% 득표로 공화당 후보를 제치고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사상 최연소 미 하원 여성 의원이 된 오카시오-코르테스의 선거 운동 방식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미국 뉴욕주 브롱크스에서 푸에르토리코 출신 모친과 뉴욕주 브롱크스 출신의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 2세 부친 사이에서 태어난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대학교 2학년 때인 2008년 아버지가 폐렴으로 사망하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집이 압류되자 식당 종업원과 바텐더로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다.

대학을 졸업한 2011년부터 의원 경선에 출마하기 전인 2017년까지는 식당 종업원으로 일했고 식당에서 일하는 시기 동안, 독립출판사 Brook Avenue Press를 창업하고, 비영리단체인 National Hispanic Institute에서 자원봉사로 참여하기도 했다. 2016년 대선 때 버니 샌더스 캠프에 참여했다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눈을 떴다.  2018년 뉴욕주 민주당 연방하원의원 14선거구(브롱크스·퀸스) 예비선거에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거물 조 크롤리 의원(56)을 상대로 승리했다. 10선 의원인 크롤리는 낸시 펠로시 의원을 이을 하원 원내대표로 유력시 돼왔다. 반면 오카시오-코르테스의 정치경력은 2016년 대선에서 민주당 버니 샌더스 후보 진영의 자원봉사자로 일했던 것이 전부다. 10선의 크롤리는 그의 지역구에서 예비선거가 열린 게 14년 만에 벌어질 정도로 민주당 당내에서 그를 대적할 경쟁자가 없었다. 그런 그를 초선에 출마한 28살 오카시오-코르테스가 57%를 득표하며 꺾었고, 11월 치러진 하원의원을 뽑는 중간선거에서 앤서니 패퍼스 공화당 후보까지 물리쳤다. 미 하원 역사상 최연소 의원이 된 것이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하원의원으로 2019년 10월 미 하원 한국전쟁 종전선언 결의안을 지지하고 확산시킨 의원으로 한국과 인연이 시작된다. 당시 한국은 야당인 현재의 국힘당이 반대하고 2020년 4월 이후 180석 집권 민주당 의원들조차 미적거리던 한국 전쟁 휴전 상태를 종전선언으로 바꾸자는 미 하원 의결 추진에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앞장섰던 것이다.

그녀가 하원의원이 되겠다고 결심을 하고 뉴욕주 후보로 나왔을 때 퀸스와 브롱크스 지역구에 유권자를 만나러 다녔다. 민주당 내 경선부터 시작이었다. 상대는 10선의 백인 남성 현역 의원 ‘조 크롤리’와 맞붙은 오카시오-코르테즈는 뉴욕의 퀸스와 브롱크스 가게와 노점상까지 일일이 찾아다니며 ‘무엇이 문제인가' 지역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무명의 젊은 여성이 가게에 들어와 자신이 하원의원 후보로 민주당 경선에 나온 누구라고 인사를 하고는, 자기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얘기를 듣는 것에 집중했다. 10선의 관록 있는 현역 의원과는 누가 봐도 상대가 안됐다.

그녀는 선거 캠페인에서 기업의 후원을 절대 받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이었다. 자기가 나올 선거구에는 있지도 않은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을 이유란 없었고 무엇보다도 어떤 기업으로부터도 자신이 묶이는 걸 원하지 않았다.

“거대 기업에서 정치자금을 받는 정치인은 우리 동네에 살지도 않고, 그들은 자녀를 우리 동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보내지도 않는다. 우리가 마시는 물, 우리가 마시는 공기도 그들은 같이하지 않는다. 이제는 기업의 후원을 받는 자들을 의원으로 뽑아서는 안 된다. 우리 중 평범한 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 우리 처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뽑아야 할 때다”

진지하고 성실하게 지역구 사람들을 만났다. 결과는 10선 의원을 이겼다. 기적이라고 사람들은 이야기 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다녔어요. 그 사람들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너무 부족 했어요”

공약이 구체적이었다. 뉴욕주의 최저임금 10.4달러를 15달러로 올리도록 협상에 나서겠다, 65세 이상 노년층 의료보험 지원 제도를 확대하겠다, 이민세관 집행국(ICE) 철폐, 국공립대학교 등록금 전면 폐지, 총기 규제, 연방정부 일자리 확대 등이다. 2016년 대통령 민주당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 선거본부에서 활동하면서 배운 것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태도가 ‘유권자의 얘기를 먼저 듣는다.’였다.

"센터로 돌진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권자를 확대하고 정치에 대해 냉소적이고 그것도 야멸차게 세상 현실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다가가 천천히 간단하게 말하면서 유권자의 얘기를 먼저 경청하는 겁니다. 그리고 천천히 분명하게 말합니다. 제가 당신을 위해 같이 싸우고 있다고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버니 샌더스는 오카시오-코르테스의 승리는 "진보 풀뿌리 정치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라고 했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선거운동 방식


2019년에 하원의원이 되고 3선에 성공한 오카시오-코르테스는 2022년 7월 낙태권리를 부정한 연방대법원 토머스 대법관을 쫓아내야 한다고 앞장섰다. 1973년 연방대법원이 내린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여성의 낙태할 권리를 폭넓게 인정했다. 이는 낙태권이 헌법상 기본적 권리라는 점을 사법부가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반면 낙태권리 부정을 판결한 대법원 판결은 “여성의 낙태권은 헌법상 권리가 아니며, 따라서 미국을 구성하는 50개주(州)는 저마다 낙태를 제한할 법률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보수 절대우위의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권은 헌법상 권리가 아니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은 뒤 미국 사회가 두 쪽으로 갈라져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가운데  토머스 대법관 하원 탄핵을 오카시오-코르테스가 주장한 것이다.

"만약 우리가 연방대법원 대법관 후보자들이 선서를 하고 최고 법원에 평생 임명되도록 허용한  법으로 이들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민주주의 제도를 적대적으로 인수하는 것이라면 이는 재고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것이 그대로 유지되도록 허용하는 것은 앞으로도 이런 부당한 배반이 일어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그것을 특히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이 대법원의 인준과 대법관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이제 정식으로 선출된 미 상원 의원들에게 거짓말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요란한 신호를 모든 미래의 법관 후보자들에게 보낸다는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성폭행을 당한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임신 테스트 중에 생각했던 것을 회상했다. 성폭행을 당한 후 낙태를 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뉴욕 시티 유니언 스퀘어 파크에서 한 군중에게 "나도 22~23세 때 여기 뉴욕에 살면서 강간을 당했다"고 말했다. "나는 완전히 혼자였다. 나는 완전히 혼자였다. 사실 나는 너무 외로워서 맨해튼 미드타운에 있는 공중 화장실에서 임신 테스트를 해야 했다."
그녀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거기 앉아서 기다렸을 때, 내가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적어도 선택권이 있다는 것에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뿐이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적어도 내 운명을 선택할 자유를 가질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한다. 이것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이것은 여성의 권리 문제만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


글, 김상수


[02. April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