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구석구석 살펴보기 1174

히에라볼리 (Hierapolis)

이곳은 주변에 양을 치는 목축업이 번성하여 예로부터 직조업이 크게 발전했다. 옛 전통은 그대로 계승되어 지금도 많은 카펫상점들이 줄지어 있다. 히에라폴리스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온천들이 깊숙한 동굴 속에서 발원한다. 그래서 인지 고대부터 거룩한 장소로 여겨져 ‘거룩한 도시’라는 히에라볼리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신약시대에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근처에는 두 도시가 더 있었다. 골로새와 라오디게아이다. 이들 세 도시에는 일찍부터 복음이 전파되어 초대교회가 세워졌다. 별로 알려지지 않는 전도자 ‘에바브로’가 헌신적으로 선교한 노력의 결과였다. 우리가 이곳을 찾는 것은 온천에서 피로를 푸는 일만 아니다. 이곳에 히에라볼리라는 초대 교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당시 히에라볼리 교회는 훌륭한 지..

라오디게아 (Laodicea)

히에라폴리스에서 7km 쯤 떨어진 지점에 라오디게아가 있다. 요한 계시록에 등장하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의 하나였던 라아디게아 교회가 있던 곳이다. 이 지역을 장악했던 그리스의 통치자 안티오커스 왕은 도시를 건설한 뒤(주후 3세기) 왕비 라오디게의 이름을 따 라오디게아(Laodicea)라고 명명했다. 고대 라오디게아에서 사용한 물은 히에라볼리의 온천수였다. 온천수를 이곳까지 끌어온 돌로 만든 수로가 지금도 일부 남아있다. 히에라볼리의 온천수는 7km에 달하는 수로를 통과하는 동안 식을 수밖에 없어 라오디게아에 오면 미지근해진다. 요한 계시록에 보면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믿음이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미지근하다“고 책망하는 말씀이 있다. 신앙의 열도를 그곳에 공급되는 미지근한 물에 비교한 것이다 고대 ..

에베소 (Efes, Ephesos)

이즈미르에서 남쪽으로 5-60km 내려가면 셀즈크가 나타난다. 현재의 셀주크는 에베소 유적을 보러 들르는 도시다. 에베소는 셀주크(Selcuk)라는 지역의 폐허 속에 감추어졌던 도시이다. 지금은 거대한 석상의 잔해로 남아 과거의 영화만을 보여주고 있다. 번성기였던 로마시대에 아시아를 향해 출발한 배는 에게 해를 가로질러 에베소 항에 첫발을 내디디게 된다. 대리석으로 포장된 폭이 21m나 되는 대리석 길에 압도 당한다. 길 양편에 화려한 고린도 식의 돌기둥이 줄지어 서 있고, 밤에는 가로의 횃불이 휘황찬란하게 빛났다고 한다. 일직선으로 뻗은 길이 550m에 이르는 이 길은 에베소의 야외 원형극장으로 이어진다. 3단 형태의 구조로 각 단은 22계단으로 되어 있으며, 2만 명 이상의 관객을 수용하는 거대한 반..

빌라델피아 교회 (현재명, Alasehir)

사데를 출발, 약 45km를 달리면 알라세힐(Alasehir)이라는 도시가 나타난다. 신약성서의 빌라델피아교회(묵 3:7-13)가 있던 곳이다. ‘형제애’라는 의미의 필라델피아는 땅 속에 묻혀 있어 고고학자의 발굴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 이곳에 있는 유일한 교회는 비잔틴 시대에 지어졌던 교회의 두 기둥뿐이다. 약 15m 높이의 육중한 두 기둥만이 당시의 교회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다.

사데 (현재명, sart)

서머나에서 앙카라 쪽으로 이어지는 국도를 70km 달려 ‘사르트’(Sart)라는 작은 마을에 이르렀다. 오늘날 사르트 마을이 고대 사데의 유적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옛날 서부지역을 제패했던 리디아 왕국의 수도가 사데였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와 함께 요한 계시록에 기록된 소아시아의 일곱 초대교회 중의 하나인 사데 교회가 있던 곳이다. 1) 성터 사르트의 트몰루스(Tmolus)산등성이에 리디아 왕국의 궁전과 성터가 남아 있다. 황금으로 가득했다는 궁전은 간 곳이 없고, 궁전을 지키는 성벽만이 일부 남아 있다. 일찍이 희랍의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가 사데의 자나간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사데를 끼고 흐르는 작은 시내는 황금 천이었다. 크로우수스 왕은 트몰로수 산만큼이나 분량의 사금을 ..

서머나 (현재명, Izmir)

오늘날도 서머나(이즈미르)를 찾아가는 길은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채 되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에게 해안의 항구도시 이즈미르(Izmir)는 육로로 간다면 600km이상 되는 거리이다. 인구 200만이 넘는 이즈미르(Izmir)! 이스탄불과 앙카라에 이어서 터키의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세계 1차 대전으로 오스만 터키가 몰락하고 공화정이 들어서면서 서머나(Smyma)에서 이즈미르로 바뀐 것이다. 이 도시의 첫 인상은 터키의 어느 도시보다 더 서구적인 풍취가 물씬 느껴지는 곳이다. 가로수가 줄지어 서 있는 대로(Straße)가 사방으로 뻗어있고, 길가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카페들이 즐비하다. 유럽 대 도시다운 풍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모습은 600여 년 간 터키를 지배해 오던 오스만 터키제국..

두아디라 (현재명, Akhisar)

성서의 지명으로 나오는 이곳은 현재 어디 있는지 형체조차 찾을 수 없는 버려진 교회 두아디라(묵 2:18-29), 신앙을 계승하지 못하고 변화를 거부하고 주기자신에 함몰되어 버렸던 잃어버린 신앙,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두아디라 교회가 지표 위에서 살아진 이유를 찾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요한은 두아디라 교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

두아디라 (현재명, Akhisar)

성서의 지명으로 나오는 이곳은 현재 어디 있는지 형체조차 찾을 수 없는 버려진 교회 두아디라(묵 2:18-29), 믿음을 계승하지 못하고 변화를 거부하고 자신에 함몰되어 버렸던 잃어버린 신앙, 요한은 두아디라 교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 우리는 이번 기행에서 두아디라 교회가 지표 위에서 사라진 이유를 찾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1998]

버가모 (현재명, Bergama)

이즈미르에서 정 북쪽 방향으로 100km쯤 올라가면 소도시 버가모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이 일곱 교회 중 버가모 교회이다.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 도시의 이름도 베르가마(Bergama)로 변했다. 오늘날 인구 6만 명 정도의 농업 집산지에 불과하지만 이곳에 돌무더기처럼 널려 있는 엄청난 양의 역사의 유적들은 버가모의 과거에 융성했던 대 도시였음을 잘 보여준다. 버가모의 전성기는 기원전 3-1세기 사이의 그리스 시대였다. 이곳은 버가모 왕국의 수도로서 주변지역에 군림하던 큰 도시였다. 버가모의 산 위에 세워졌던 아크로폴리스의 왕궁과 신전들의 유적은 한 때 번성했던 버가모 왕국의 권세와 영광을 증언해 주고 있다. 이곳에서 제우스 신전의 제단 초석을 발견한 사람은 고속도로를 건설하던 독일의 한 토목 기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