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구석구석 살펴보기/기행 이야기

그는 누구인가?

행복나무 Glücksbaum 2000. 3. 5. 19:55

 

 
 

예수는 오랫동안 그럭저럭 생존을 유지해오다가 점점 더 심하게 억압을 받게 된 한 피점령지의 농민들 사이에서 살았다. 그 당시, 이것은 구조적인 불평등과 불의의 세계의 한 현상이었다. 그러한 세계에서 그는 대안이 될 만한 새로운 비전(vision)을 제시했고, 또한 그것을 삶으로써 살아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여, 그것을 더불어 나누고자 했다. 그 비전은 무상의 치유와 나눔의 식사가 있는 공동체, 하느님 앎과 서로의 앞에서 평등한 공동체였다.

 

그는 여성과 어린이와 남성, 그리고 나병 환자와 적빈자와 정신질환자들을 똑같이 초대했다. "와서 함께 먹고 고침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경험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어주십시오." 라고 말이다. 이 새로운 공동체가 하느님나라의 모습, 즉 시이저가 아니라 하느님이 이 세상을 직접 다스리시게 될 때의 전체 세계의 모습이다. 그것은 곧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세상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는 좋은 세상을 열망하는 주기도의 의미이다.

 

그러나 "하늘" 은 완전했지만 "땅"은 문제가 있었다. 예수가 단순히 하느님나라에 관해 가르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삶으로써 실천하려고 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것이 예수를 혁명적인 인물 - 군사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사회적인 의미에서 -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하느님나라에 대한 그의 비전 때문에 죽었다.

이 세상의 기초하는 체제에 대한 그의 예리한 도전은 어느 때든지 그를 체포할 수 있는 이유가 되었겠지만, 특별히 성전에 대한 그의 상징적 파괴행위가 유대교와 로마의 고위당국자들로 하여금 그를 즉각 처리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대제사장 가야바가 로마 총독 빌라도와 같은 권력자 치하의 예루살렘에서는 예수같이 힘없는 농부는 당연히 제명 당할 수밖에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아무런 사전준비도 없이 거친 행동을 했다고하는 것은 거의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사건은, 이 문제의 유대인 농부의 죽음이 끝이 아니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예수와 함께 있을 때부터 자신들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능력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그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 그 능력을 경험했다. 이제 그 능력은 더 이상 시간과 공간에 제약되지 않고, 예수 안에서 하느님을 본 사람들에게는 어느 곳에서나 가능하게 되었다.

신중한 중립적 역사가 요세푸스가 1세기말에 다음과 같이 보고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처음에 예수를 사랑하게 되었던 사람들은 그에 대한 자신들의 애정을 포기하지 않았던 … 그리스도의 이름을 따라 붙여진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종종은 오늘날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것이 역사적 예수에 대한 초상화이다. 예수는 무상의 치유와 공동식사를 제공함으로써 기존하는 사회의 교권체제와 가부장 체계에 대해 "아니오" 할 수 있는 공동체를 선언했고 창조했다. 그는 새로운 하느님에 대한 새로운 중개인으로 단순히 해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계속 유랑했고, 어느 곳에도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중보자(mediator)이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사람들 사이에나 사람과 하느님 사이에는 어떠한 중보자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한 사람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는 중보자나 중개자 없는 하느님나라(brokerless kingdom of God)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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