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i-Di/하느님 뜻 받들기

때를 알아야

행복나무 Glücksbaum 2010. 7. 8.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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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서 12, 49- 59 
찬송
 
기독교는 종말신앙과 더불어 시작했습니다. “때가 찾고 하느님나라가 가까이 왔다.”(막1:15) 사탄이 통치하는 낡은 과거의 시대가 끝나고 이제는 산고 끝에 하느님께서 통치하시는 새 시대가 도래 해오고 있습니다.
예수의 기쁜 소식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병자를 치유하면서, 귀신을 축출하면서 예수께서는 종말적이 삶의 전환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하느님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눅17:21)
선교를 위하여 이스라엘 짐의 잃은 양들에게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면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 동네들에 다니지 못해서 인자가 올 것이다.”(마10:23) 선교의 시작, 복음전파의 시작은 이러합니다.
 
1. 복음을 전파해야 할 때
 제자들이 고대하던 종말은 그들 생전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초대교회 교인들은 곧바로 올바른 종말신앙을 정립했습니다. 종말은 반드시 오는데 지금이 그 때가 아니라 마지막 때가 곧 오리라는 희망을 믿음으로 가졌습니다. 그들은 교회 공동체에 모여 하느님나라가 이루어질 그날을 고대하며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야한다고 굳게 믿고 그분의 말씀을 세상 끝 날까지 전파할 것을 다짐 하며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 온 힘을 다 모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 자체를 마지막 때의 사건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이 오기가지에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심은 ‘평화를 주러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종말적 사건으로서 예수님의 오심과 성령의 사건은 사람들 사이에 분열을 가져오게 한다는 비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를 기다리던 예루살렘 성전의 살던 경건한 제사장 시므온은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성전에 들어서자,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가로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은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하려 함이라.”(눅2:34-35)
 
예수를 따르는 삶은 때로는 갈등과 분열을 일으킵니다. “죽은 사람의 장례는 죽은 사람이 치르게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나라를 전파하여라.”(눅9:60) “누구든지 내게로 오는 사람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형제나 자매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눅14:26)
   
2. 이 시대를 분별해야 할 때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오던 당시, 가족들에게 오해와 핍박을 받게 되고 기독교인이란 지탄의 대상이 되어 정치적인 핍박을 받았습니다. 조상을 업신여기고 제사도 지내지 않는 상놈이라고 오해를 받아 가문에서 내쫓김을 받고 정치적으로는 나라를 팔아먹는 나쁜 놈으로 순교를 당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처음교인들은 복음을 사수하기 위해 생명까지 주님께 바치는 순교자적 자세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예수 믿음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살았습니다. 이것이 종말적인 삶의 자세라고 하겠습니다.
 
농사짓는 사람은 자연현상에 민감하기 마련입니다. 날씨, 가뭄과 홍수, 때를 분별 하여 바로 대처하지 않으면 한 해의 농사를 망칩니다. 그러나 자연의 기후변화에 민감하면서도 그보다도 더 중요한 시대의 징조에 대해선 둔감한 농부와 같이 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 하십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별할 술 알면서도 어찌 이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느냐?” 책망 하십니다.
 
오늘날 나와 내 가족을 잘 보살피면서도 우리가 사는 사회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둔감한 신앙인들이 있습니다. 아니, 세속의 분위기에 따라 복음의 내용을 바르게 실천하려는 생활에 대해서는 처세로 일관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엄청나게 변화하는 이 사회 속에서, 급변하는 세계화 속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사탄에게 마음과 혼을 빼앗기는 의 죽음의 낭떠러지로 뒷걸음질 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회를 건전하게 이끌어야 할 사람들이 조그마한 이익을 위해 양심을 팔고 신앙을 팔아넘기는 가룟 유다가 얼마나 많습니까? 뉴스마다 교인들이 저지르는 죄상이 보도 되어 한국교회의 쉬상이 땅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남보다도 더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더 많은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드리면 하느님나라에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에게 미치는 손해와 걱정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 자유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복음보다 앞세워져 한국교회가 사탄에게 무릎을 꿇고 복속되어 버렸습니까?
 
오늘날 한국교회가 복음을 외면한 채 자본주의 사회는 경쟁사회이기에 경쟁에서는 일등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장은 필수요, 풍요는 우리가 바라는 꿈이라고 가르칩니다. 세종시가 마치 하느님 나라처럼 여겨지고, 4대 강을 정비하는 것이 마치 하느님의 재창조의 사업인 것처럼 신교의 목사 장로들이 세속정치질서에 머리를 조아리고 좋다고 주문처럼 외치고 있으니 누가 진정한 예수의 제자입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람과의 경쟁에서 꼭 이겨야 하고 일등으로 달려야 하느님나라 국적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사탄의 주구들이 누구 입니까?
지구촌 생태계의 생명이 병들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매 7초마다 어린이들이 먹지 못해 죽어가고 있습니다. 강이 죽어가고, 산이 병들어 가고, 땅 오염되고, 오존층이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물과 땅과 공기가 오염되어 병들어가니 거기에서 나오는 농작물 역시 건강할 리 없습니다. 한국 노인층이 보약으로 소비하는 돈이 일 년에 수조 원에 이른다는 조사입니다. 소와 돼지가 광우병에 병들어 가고 그것을 먹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한다고 의학자들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3. 이러한 종말의 때에 그리스도인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1)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하여 내 의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한 자연의 일부로 생태계 안에서 더불어 사는 개체인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자연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위탁해주신 정원지기 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 자연을 잘 관리하고, 깨끗하게 아껴 쓰고,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최근 지방선거를 마치고 불거지 여러 가지 정치현안을 놓고 정운찬 국무총리가 총리직을 사임하면서 세종시 수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후손에게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분의 신앙은 주님의 편이 아니라 세속의 이념에 종노릇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성장과 개발이라는 이데올로기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성장가치가 아니라 생명가치입니다. 내가 남보다 얼마나 잘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더불어 공생공존 할 수 있느냐를 물어야 합니다. 인간과 인간뿐만 아니라 인간과 하느님이 어떻게 공생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관건입니다.
 
2) 상생하는 삶이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요새 똥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인간에게 섭취된 것 자연으로 되돌리고, 그 똥을 비료로 다시 사용하여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친환경적인 삶, 사람들이 이런 먹을거리에서 생명을 공급받는 일, 이렇게 자연과 더불어 상생 하는 삶이 절실한 때입니다. 그러므로 생태계를 위한 자원 낭비나 소비지상주의에서 근검절약의 긍정적 신앙을 길러가야 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의 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의 공생애의 총 주제는 “생명선교” 이었습니다. 인간과 자연을 돌봄, 생태계를 보전하고 치유하자는 일들은 모두 생명을 살리자는 운동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행한 복음전파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는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깨워준 생명을 살리는 하느님의 재창조의 역사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여러분, 이 종말의 때에 생명의 살림꾼이 되어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선교에 동참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우주적 신앙을 가지고,
삼라만상 안에 서식하는 모든 생명들을 살리는 일,
그 생명들을 보전하는 일,
 
생명 살림의 맨 앞줄에서 그분과 함께, 그분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제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10-07-07]
 
 
 
기도 : 주님, 기상의 변화에는 민감하면서도 시대의 징조에는 둔감한 저희들의 신앙의 자세를 용서하옵소서.
파괴되어 가는 이 세계를 살펴, 피조물의 신음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저희들의 귀를 열어주옵소서. 그 동안 저희는 성장과 발전이라는 세속의 이념에 마음을 빼앗겨 더욱 많이 소유하고, 더욱 풍족한 삶을 누리기 위하여 자연을 착취하고, 파괴하는 일을 거침없이 해왔음을 뉘우칩니다. 저희들로 하여금 내 욕심 때문에 사람뿐만 아니라 온 지구 생명계의 종말이 당겨지고 있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이제 저희의 잘못된 생활습관을 고쳐 생명의 주이신 주님이 바라시는 생명을 살리고 보전하는 일에 앞장서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