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ne Welt/미얀마 이야기 41

민정 이양 하겠다는 미얀마 군사정부의 약속에 의문을 품다.

* 2008.3,31 (DVB)-<전국민주동맹>(NLD)는 국군의 날 연설에서 2010년 선거 이후 정권을 이양하겠다는 탄 쉐 장군의 약속을 믿지 않는다고 발표하였다. 이 미얀마 군사정권의 수뇌는 3월 27일 신헌법의 완성은 군사정권의 이양의 과정의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게다가, 신 헌법의 초안은 이미 작성되어 있..

미얀마 軍政 민생은 뒷전…영구집권만 `골몰`

국민투표 10일 강행 방침…결과 조작 우려 미얀마 군사정부가 사이클론으로 수많은 인명 및 재산피해가 발생했음에도 불구, 민생은 뒷전으로 미룬 채 영구집권을 위한 국민투표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미얀마 군정은 야권의 반대와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오는 10일 ..

미얀마와 태국 간의 전쟁

16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약 300년간에 걸쳐 미얀마와 타이가 싸운 단속적(斷續的)인 전쟁. 타이의 아유티아 왕조(1350∼1767)와 미얀마의 퉁구 왕조(1531∼1752)·알라웅파야왕조(1752∼1883) 사이에 서로 공격과 반격을 되풀이 하면서 계속된 민족전쟁이다. 전쟁의 원인은 타이의 북부 치앙마이에 대한 미얀마의 욕망과 미얀마 남부의 타라인 족 지역에 대한 타이의 세력부식으로 빚어진 충돌이었다. 결국 두 나라의 쇠퇴를 가져왔으며 영국의 미얀마 점령으로 종결되었다. [2002]

미얀마 - 영국 간의 전쟁<Burmese Wars>

영국과 미얀마가 전후 3회에 걸쳐 벌인 식민지 전쟁을 말하는데, 1. 제1차 전(1824∼26)】 19세기에 접어들자 미얀마의 알라웅파야왕조는 마니푸르·아삼 등지까지 세력을 뻗쳐, 아라칸(Arakan) 방면에서 국경을 둘러싸고 영국과 충돌하였다. 1824년 3월 영국이 선전포고를 하고 양곤에 상륙하여 수도 아바에 접근하자 바지도왕(재위 1819∼37)은 굴복하였다. 26년 2월 얀다부 조약을 맺고, 100만 파운드의 배상금 지불, 테나세림·아라칸의 할양(割讓), 아삼·마니푸르 등에서의 권리포기 등을 인정하였다. 2. 제2차 전(1852)】 미얀마는 이 조약을 굴욕적인 것으로 보고 이행하지 않았다. 1851년 11월 양곤에 입항(入港)한 영국 상선(商船)을 가혹하게 취급한 데 대한 항의와, 배상금 지불을 ..

역사, 미얀마

미얀마는 중국의 문헌에 예로부터 탄(:후한대)·표(驃:당대)·포감(蒲甘:송대)·면(緬:원대)·면전(緬甸:명·청대) 등의 이름으로 나타나 있다. 이 나라의 역사는 현재 전국의 산야에 정주해 있는 여러 종족의 이동의 역사이다. 서력기원의 시초에는 몬족이 시탕강 하류 지방에 정착하고, 인도로부터 농업기술과 힌두교·불교가 전해졌다고 한다. 미얀마 최초의 강력한 왕조는 8세기에 이라와디 강 하류의 프롬을 수도로 정했던 표족(驃族) 왕조로, 9세기에 멸망하고, 표족도 사라졌다. 11세기가 되면서 이라와디 강 중류 유역에 버마족의 파간 왕조가 일어나, 남쪽의 몬족 지대, 샨 고원까지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왕조는 1287년 몽골군의 침공을 받아 멸망하였다. 그 후 미얀마는 타이계의 여러 종족(샨족·타이족)의 침..

언어,미얀마

[ 양곤, 아웅산 재래시장 통 ] 미얀마의 국어. 좁게는 이라와디 강(江) 유역의 평야에 사는 미얀마인의 언어로서 미얀마 연방의 공용어이며 연방 내 여러 민족이 사용한다. 방언의 차는 많지 않으나 수도 양곤의 지식계급의 방언이 표준으로 되어 있다. 넓게는 아라칸 해안지방의 아라칸 방언, 테나세림 지방의 타보이·멜귀 방언, 샨주(州) 남서부의 타운요·인다·다누 방언, 북부 미얀마의 요 방언을 포함한다. 계통적으로는 미얀마 북부로부터 중국에 걸쳐서 분포하는 말·라시·아치·폰·아찬 제어(諸語)와 J군(群)을 이루고 미얀마·인도 국경지방의 나가·친 제어, 카친주의 카친어, 윈난성(중국)과 그 주변에 분포하는 롤로어·티베트어 등과 티베트버마어족을 형성하고, 다시 카렌주의 카렌어·중국어·타이 제어와 중국티베트어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