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älbs 1442

"인사부"(忍死符), [박지원 자음]

"내일 조정에 들어가면 그 사람의 청신을 막아야 합니다." 아들 형제가 의논하는 말을 그 어머니가 들었다. "그 사람은 어떤 일이 있기에 그러느냐?" "과부댁 가정으로 소문이 좋지 못합니다." 어머니가 깜짝 놀라며 "남의 집, 규방의 일을 어떻게 알았느냐?" "들리는 소문입니다." "들리는 소문?,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만져지지도 않고, 코로 맡아지지도 않으면서 퍼지고 퍼지는 풍문, 풍문을 듣고 남을 평해?, 더구나 너희들은 과부의 자식이 아니더냐? 과부의 자식으로 과부를 탓해? 게 있거라, 네게 보여줄 것이 있다." 품속에 싸두었던 물건 하나를 꺼낸다. 한 겹 두 겹, 소중하게 싼 것을 풀더니, 동전 한 잎을 꺼냈다. "이 동전에 글자가 있나 봐라." "다 달아서 없습니다." "테두리가 있느냐?" ..

저녁 종소리 [정채봉 지음]

그분은 양말을 깁고 있었다. 전구를 양말 속에 넣어서 볼록 나오게 한 다음에 뒤꿈치를 바늘로 뜨고 있는데 전화 벨이 울렸다. 그분이 송수화기를 들자 푸른 강물에 조약돌 떨어지는 소리 같은 맑은 아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엄마야?" 그분은 웃음을 참고 대답하였다. "전화를 잘못 건 모양이구나." "죄송합니다." 그분이 송수화기를 놓고 다시 양말과 바늘을 집어 들었는데 전화 벨이 또 울렸다. 송수화기를 들자 조금 전의 그 목소리였다. "엄마야?" "아니라는데 그러는구나." "아닌데…, 엄마가 거기에 꼭 계시다고 했어요." "너희 엄마가 누구신데?" "울 엄마는…." 말을 이을 것 같더니 전화가 끊어졌다. 그런데 다시 전화 벨이 울렸다. 이번에는 그분 편에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송수화기를 들고서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