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älbs/화롯가 이야기들

황무지 [T.S. 엘리어트 지음]

행복나무 Glücksbaum 2000. 11. 14. 11:13

4월은 잔인한 달,
라일락꽃을 죽은 땅에서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활기 없는 뿌리를 일깨운다.

겨울이 오히려 우리를 따뜻이 해주었다.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고
마른 뿌리로써
작은 생명을 길러주며
여름은 우리를 급습해왔다.
슈타른 벨겔 호를 넘어 소낙비 가져와우리는 회랑에 머물렀다가
햇볕이 난 호프 갈덴으로 가서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이나 이야기했지,

나는 러시아인이 아니고
리투아니아 출신 순수한
독일인이에요.
어릴 적 내가 사촌 대공 집에 머물렀을 때
사촌이 날 썰매에 태워주었는데
나는 겁이 났어요.
마리, 사촌이 소리쳤죠.
마리, 꼭 붙들어, 그리곤 미끄러져 내려갔죠.
산에선 자유로운 느낌이 들어요.
나는 밤에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으로 가요.
이 움켜잡는 뿌리는 무엇이며,
무슨 가지가 이 돌투성이 쓰레기 속에서 자라나는가?
인간의 아들아, 너는 말도 추측도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너는 다만 부서진 우상더미만 알기 때문에
그곳엔 해가 내리 쪼이고,
죽은 나무는 아무런 피난처도,
귀뚜라미는 아무런 위안도 주지 않고,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다
다만, 이 붉은 바위 밑으로 들어오라. 그럼 나는 이 아침에,
너의 등 뒤에 성큼성큼 걸어오는
네 그림자나,
저녁 때 너를 마중 나오는 그림자와도
다른 그 무엇을 보여주리라.
나는 너에게 한 줌의 재속에서
공포를 보여주리라.
바람은 선선히 고향으로부터 부는데 이어란트, 우리 님은 어디 있느뇨?
1년 전 처음으로 당신이 내게 히아신스를 줬기에
사람들이 나를 히아신스 소녀라 불렀어요.

그러나 네가 팔에 꽃을 한 아름 안고, 늦게, 머리칼이 젖은 채,
같이 히아신스 정원에 돌아왔을 때
나는 말할 수도 없고 눈은 안 보여,
나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모르고 다만 빛의 핵심,
정숙을 들여다 보았다.
바다는 황량하고 쓸쓸 하구나.

유명한 천리안 소소스트리스 부인은
심한 감기에 걸렸는데도
그래도 사악한 트럼프 한 벌을 가진
유럽 제일가는 여자 점쟁이로 알려져 있다.
그녀가 말했다.
여기 당신 카드가 있어요.
익사한 페니키아 수부예요.
이건 벨라도나, 참석의 부인,
부정한 여인이에요.
이건 세 막대기를 가진 남자
그리고 이건 바퀴,
이건 애꾸 장사치,
그리고 아무 것도 안 그려진이 카드는
이 상인이 등 위에 젊어진 무엇인데 내가 보면 안 돼요.
그 교살된 남자를 못 찾겠는데요.
익사를 조심하세요.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것이 내게 보여요.
감사해요. 혹시 에퀴른 부인을 만나시거든
천궁도를 내가 직접 가져간다고 말해주세요.
요즘은 무척 조심하지 않으면 안돼요.
유령 같은 도시, 겨울 새벽 갈색 안개 속
런던 브리지 위로 사람들이 흘러갔다.이렇게 많이
이렇게도 많은 사람을 죽음이 파멸시켰으리라.
나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다.

짧은 한숨을 자주 내쉬며
각자 자기 발 앞을 주시하면서,
언덕을 올라가서 킹 윌리엄 가로 내려가
성 매리 올너스 교회가
죽은 소리로 아홉 시의 마지막 종을 울려
시간을 알리는 곳으로,
거기서 나는 친구를 하나 발견하곤
‘스텟슨’ 하고 소리쳐 그를 멈췄다.
‘자네’ 밀라에 해전 때 나하고 같은 배에 타고 있었지!
작년 자네가 정원에 심었던 그 시체가
싹이 트기 시작했나?
올해에는 꽃이 필까?
혹은 갑작스런 서리가 묘상을 해쳤나?
오, 인간에게 친구인 ‘개’를 멀리하게,그렇잖으면 그 놈이 발톱으로 다시 파헤칠 거야!

그대! 위선적 독자여!
나의 동류,
나의 형제여.


시,  T.S. Eliot [‘죽은 자의 매장’ 전문]


[11. April 2000]


....


*
제1차 세계대전의 처절함을 반추하며, 혼란과 절망을 ‘황무지’로 읊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문명사회 안에서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오늘날 현대인의 고뇌의 실체라는 것이다.
시인은 하느님의 거룩한 힘을 외면한 결과로서
인간정체성을 상실해버린 소외된 사람의 실체를
중세기의 성배 전설에 비추어 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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