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ne Welt 348

토마스 뮨쳐의 사상

1850년에 엥겔스는, "Der deutsche Bauern Krieg(독일 농민전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종교는 봉기에서 아무런 역할도 못했다. 모든 농민은 경제적 요소에 의해 봉기했다.", "기독교의 외투를 걸친 무신론자에 불과하다.","최초의 영웅적인 공산주의자이나, 동시에 비극의 영웅이다. 아직 부르죠와 혁명이 막 시작되려는 시대에 공산주의사상을 가진 사람이었으므로"라고 말한 바 있다. 엥겔스가 언급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토마스 뮨쩌이다. 독일농민전쟁의 지도자 토마스 뮨쩌는 재세례파(태어나자마자 받는 세례 부정, 내면적 계시주장)의 지도자였다. 그가 직접적 사회개혁을 처음부터 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종교적 개혁이었으나, 후에 정치개혁을 하게 된다 종교를 매개로 근대화운동을 펼친 것이다..

농민전쟁과 토마스 뮨처

농민전쟁은 1524년-1525년까지 진행되었은데,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익과 좌익, 그리고 중도적 해석이다. 우익은 정치적 해석이 주가 되는 것으로 농민봉기의 원인을 연방군주권력과 농민공동체권력간의 정치적 대립에서 찾고 있다. 농민은 관습법(공동체적 성격이 강하다)에 연연하는 데 비해, 영주계급은 로마법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복음을 새롭게 해석한 농민들이 법적 관계를 둘러싸고 영주계급과 충돌을 빚은 것이 1525년 농민봉기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좌익적 해석은 Marxism적 해석이다. 그들은 1525년 독일농민전쟁을 초기 부르죠와 혁명으로 파악한다. 당시 독일은 아직 부르죠와 혁명이 수행될만한 생산력은 발전하지 못한 상태였다. 부르죠와가 아직 미성숙하므로 농민층의 힘을 빌어 부르죠와 ..